가을가뭄
요즘 가을 가뭄이 심하다. 봄에도 가뭄이 심해 모심기며 밭작물에 어려움을 안겨주더니 가을 가뭄 또한 이어져 특히 농민들의 손길을 분주하게 하고 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S할머니도 요즘은 밭에 물주기에 분주하다. 올해도 밭농사 한 번 멋들어지게 지으셨구나 생각했는데, 속살이 제법 부풀어 오른 배추에 하루 한차례씩 물을 주고 있다.
가을 가뭄치고 석 달이나 계속되는 판이어서 산길도 발자국이 선명하게 날 만큼 겉흙이 메말라 있고, 새로 이사를 온 이웃집에서 포클레인으로 흙 한 번 떠도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난다. 전국적으로도 유명해서 나무가 많은 남미륵사는 새로 식재한 나무는 말할 것도 없고 기존에 심어진 특히 철쭉에 물 주느라 밤낮이 없어 보인다. 이른 새벽부터 절식구들이 동원 돼 길게 늘어뜨린 호스를 들어주고 뿌리고 야단법석이다.
가뭄이 심해 배추밭에 물주고 나무에 물주는 정도가 아니라 벼 그루터기만 남은 논바닥에 모심을 때처럼 양수기 물을 대느라 한창이다. 논바닥이 너무 메말라 어느 정도 축축하게 한 다음 논갈이를 해서 보리를 심을 요량인 듯싶다.
60년대 가물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물그릇 네 귀에 끈을 달아 두 사람이 마주 서서 두 줄을 나눠 쥐고 함께 물을 푸는 쌍두레질 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른다. 이럴 때면 두 사람이 그냥 쌍두레질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에 둘이요’ ‘둘에 셋이요’하며 구령에 맞춰 물을 푸는 것이다. 쌍두레에서 쏟아져 나온 물이 논바닥을 적셔갈 때 어깻죽지가 고된 줄도 몰랐으리라.
용두레도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수원(水源)에서 기둥 셋을 엇매겨 작사리를 지어서 묶어세우고 긴 숟가락처럼 된 나무통 중간을 매달아 그 한 끝을 쥐고 밀어서 물을 퍼올리게 된 장치가 용두레이다. 수원이라고 해봐야 기껏 둠벙 수준이고 들샘 수준인데, 필자는 바로 그 둠벙에서 헤엄을 배웠던 기억도 있다.
샘물이 쉼 없이 흘러나오는 곳은 서로 물을 가져가려고 핏발이 선다. 그래서 물꼬를 바꿔 버릴까봐 밤새도록 샘물의 물줄기를 지키는 모습도 보았고, 물꼬 싸움으로 삽날을 번득이며 무섭게 싸우는 모습도 보았으며, 바로 그 물꼬 싸움으로 인해 자진한 사람도 있었으니, 가뭄이 들면 농부들의 인심도 몹시 사나워지고 만다.
어느 핸가는 이태동안 비가 오지 않아 논밭이 타들어가고 있을 때 기우제를 지낸다며 비파산 정상에까지 따라 올라간 적도 있다. 기우제란 가뭄이 들었을 때 비가 내리기를 비는 제사인데, 이러한 비에 대한 관심은 단군신화의 환웅이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하강했다는 기록에서부터 보인다. 농업에는 비가 필요했기 때문에 단군신화에서부터 물에 대한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삼국이 각각 시조묘나 명산대천에서 기우제를 올렸던 기록이 있었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기우제를 자주 지냈다.
그런데 가뭄이 심해 기우제뿐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이 동원되곤 했는데, 특히 명산에 시신을 묻으면 비가 안 내린다는 관념이 있어 가뭄이 들면 누가 암장(暗葬)한 것을 알고 산을 이 잡듯이 뒤져서 묘를 파헤친 다음 아예 드러내놓는 일도 있었다. 이런 일은 전라남도 도서지방과 산간지방에 있어왔는데, 그 묘파기는 부인들이 하는 일이었다니 가뭄이 무섭긴 무서운 일이었다.
이솝 얘기가 떠오른다. 불덩이 같은 해가 매일 쬐고 있을 때 햇님이 장가를 간다고 해서 웅덩이의 개구리들도 일제히 고개를 쳐들고 축가를 불렀다. 이때 늙은 개구리가 소리쳤다. “아 천하에 못난 것들아! 햇님이 장가가는 것이 무에 좋아서 난리란 말이냐? 햇님이 혼자 다녀도 뜨거워 죽겠는데, 이 가뭄에 색시까지 데리고 다니면 웅덩이에 남은 물도 바싹 말라 버려 우리는 모두 죽게 될 거다.”
기우제의 반대말은 기청제(祈晴祭)라고 한다. 고려 시대 때 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이면 제발 비가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청제를 지냈다고 한다.
석 달 이상 계속되는 가을 가뭄. 대지는 바짝 말라서 흙먼지가 일어날 지경이어서 어떤 곳에서는 식수를 공급하는 수원지 걱정을 한다는 보도까지 나오는 형편이다.
역시 사람은 비가 오지 않으면 모든 게 불편하고 힘들어진다. 다음 주에는 비소식이 있다하니 기대가 된다. 제발 비 좀 많이 뿌려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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