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에서 진주로의 가을 여행’
10월, 본격적으로 가을느낌이 나는 달이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로 인해 여행계획을 마음대로 갖지 못했던 그 한을 풀어보라는 듯, 전국 곳곳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더군다나 10월 첫 주말부터 황금연휴이니 집안에만 있기에는 너무도 아까운 날들인 것이다. 시골 농부는 가뜩이나 쌀값 하락으로 마음이 편하지 못하지만 추수의 계절을 맞아 발걸음이 바쁘다. 하지만 들 나락이 노랗게 익듯 산도 단풍으로 물들고 있다. 거기에 사람도 물들지 않을 수 없는 걸까. 나도 어떤 색이든 물들고 와야겠다. 그래서 가을은 집에 있기 힘든 계절인가 보다.
어디로 떠나볼까. 지도를 보다가 우리 강진처럼 작은 지역을 가보기로 했다. 마침 경남 산청군에서 산청 한방약초 축제가 9월 30일부터 열리고 있었다. 축제는 10월 10일까지 11일간이니 꽤 긴 기간 열리는 축제다. 내가 간 날은 10월 1일 이었다. 네이버에서 9월 현재 산청군 인구를 보니 3만4089명이다. 강진군 인구는 3만3,243명이므로 비슷한 인구수이고 행정구역으로는 똑같이 1개 읍 10개 면 이니 비교하기 딱 이다. 현재 똑같이 계속 한 달에 50~100명씩 인구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이대로 인구수가 줄어든다면 1년에 천명은 자연적으로 줄어든다고 봐야 할 것 같다. 지역 마다 인구를 늘릴 수 있는 특단이 없다면 작은 지역들의 합병은 곧 필수가 될 것 같다.
산청군에 들어선 첫 느낌은 ‘참 작은 고을이다.’ 라는 느낌이었다. 읍이라고 하지만 한 바퀴 금방 돌면 다시 그곳이고, 숙소를 잡으려고 하니 느닷없는 여행으로 마땅한 숙소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지리산 자락으로 깊이 들어가야 숙소들이 있을 듯 했다. 그래서 자료를 찾아보니 지리산 자락이 높게 또는 넓게 산청군 주위를 에워싼 분지로 산청군은 산맥이 방어막이다. 산 아래 분지가 형성되어 아늑한 지형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가운데에 남강 상류가 젖줄처럼 흐르고 있다. 그러한 산청군의 지형을 보면서 내가 사는 강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강진은 남해 바다가 마치 사람의 양 다리 사이로 파고 들어와 일명 요니 형국을 이루며 장흥에서 흘러온 탐진만 하류와 만나 강진만을 이루는 아늑한 고을이다. 산청은 높은 산과 큰 강이 만나서 아늑한 고을을 이루고, 강진은 남해바다가 강 하류와 만난 아늑한 고을을 이룬 것, 그러니까 산 아니면 바다가 인접한 자연조건으로 산청군과 강진군은 완전 다른 농촌풍광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산청군은 산약초가 지역의 경제를 이끈다. 그러니까 산이 높아 약초가 발달하였고 큰 강이 있어 민물고기가 밥상에 오른다. 산청 한방약초 축제는 허준의 소설 동의보감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허준이 유의태의 제자로 설정되면서 산청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에서 한약재 축제 등을 시작으로 2001년부터 본격 축제 화 되었다.
산청읍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어서고 있었는데 동의보감촌에 마련된 ‘오늘 산청에 오길 잘했다.’ 라는 축제장 글귀가 마음에 들었다. 산청은 지리산 첩첩산중에 자리 잡은 분지여서 예전엔 정말 먹고 살기 힘든 지역이었을 것이다. 깊은 산중에 들어가서 약초를 캐어 내다 팔아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을 유학 보냈을 것이다. 약초로 돈을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았을 산청 조상들의 노고가 높은 산의 정기에 어른거렸다. 그런데 지금의 한방약초 축제는 참으로 돈이 되는 축제구나 싶었다. 예전에 산에 널려 있던 것 같은 약초들이 지금은 귀한 약재가 되고 있으니 말이다. 지금은 어느 때 보다도 건강에 대한 관심이 많아진 때이고 몸에 좋다는 귀한 한방 약재들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의 방문이 많은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양손에는 한방약재가 들린 모습도 보이고 아이들의 체험거리도 다양해 보였다. 한방진료를 해주는 곳도 있고, 한방병원들의 후원도 눈에 띄는 것이 돈 되는 축제구나 싶고, 부모님 효도선물 또는 자녀들의 건강, 나의 건강, 이웃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산촌의 제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방을 통한 체험부스들로 인기였는데, 약재를 자르는 체험부터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한약재도 정겹고, 한방조욕, 한방건강체험 등 차려놓은 밥상도 모두 약초밥상, 특히,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에 한방약초의 의미를 담아보았다. 또 축제장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약초 차들의 시음이 준비되어 있어서 한 잔의 차로 몸의 피로가 싹 가셨다. 한방약초 축제장을 자전거로 빠르게 이곳저곳을 돌아보는 재미 뒤에 높은 곳에 멋진 옛 건물이 보여 올라갔다. 최근 110년 모습으로 깨끗하게 복원한 곳으로 ‘환아정’이라는 곳이었는데, 옛 선비들의 문화를 상징하는 이곳에서는 산청읍의 사방이 한 눈에 들어왔는데, 높은 산과 강에 비해 읍은 매우 작아보였고 지리산 풍경에 매료되어 있기에는 이미 사위가 어두워지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강진보다도 더 공기가 좋게 느껴지는 산청이지만, 그러나 산청읍에서 하루를 묵기에는 어쩐지 답답한 느낌이 들었다. 어떤 관광을 하기로 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즐기고 싶은 관광은 자전거를 타고 그 지역을 한 바퀴 돌아보고, 저녁에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할 수 없이 산청은 다음기회에 자세히 알아보고 오기로 하고 숙소 때문에 저녁에 40분 거리에 있는 진주시로 넘어가기로 한 것이다.
진주로 넘어가니 남강유등축제 준비가 한창이었다. 10월 10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긴 축제이다. 관광지에 도착하면 철저히 준비된 관광이 아니라 무작정 떠나자 하는 관광이기에 먼저 숙소부터 잡아놓고 주변에서 먹거리를 찾게 된다. 어둠이 짙어진 진주에서 그래도 먼저 찾아갈 수 있는 곳은 논개가 적장을 남강으로 투신한 진주성 촉석루 부근이다. 진주성 부근을 돌아 숙소들의 불이 반짝이는 골목으로 들어가 작은 모텔에 들어섰다. 일단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서 냄새나지 않고 깨끗이 잘 청소가 되어있는지 확인을 하곤 한다. 다행히 나쁘진 않다 생각했는데, 주인 모녀가 어찌나 친절하던지 방보다도 친절에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시한번 느낀 것은 친절은 그 어떤 것 보다 앞선다는 점이다. 그리고 마침 그 앞에 진주의 맛 집 ‘하연옥’이 있었는데, 냉면이 유명한 집인가 보다. 이곳에서 갈비와 냉면 먹거리 관광도 만족스러웠다.
진주 남강유등축제는 ‘역사의 강 평화를 담다’라는 주제였다. 22일간이나 열리는 유등축제는 등 숫자만 해도 계속 늘어난다고 들었다. 다음날 아침이 일요일이어서 칠암동성당을 갔다. 칠암성당은 1961년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분원을 세웠던 것이 시초가 된 오래된 역사를 지닌 성당이었다. 그 옆에는 수도원 건물도 보였는데, 높은 곳에 있는 성당 종탑에서 매우 웅장함이 느껴졌다. 이곳 주일미사에서도 역시 어디가나 느끼는 고령화를 느낄 수 있었다. 젊은 사람이 몇 보이지 않는다. 미사는 수사 복을 입은 신부님이 하셨는데, 신부님의 강론이 1시간을 넘기며 이이어 졌는데도, 하나도 지루함이 없이 약해졌던 신앙심이 가슴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감동을 받았다. 신부님은 강론을 하시면서 제대에서 내려와 앞 신자들 사이로 잠시 걸어 나와 강의하듯이 하셨는데,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꽂히는 듯 했다. 그날이 마침 칠성성당에 계시던 베트남사목 신부님이 8년을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마지막에는 베트남 신부님 송별말씀도 있었는데, 밖에 나와 보니 베트남 옷을 입은 젊은 남녀들이 많이 보였다. 그만큼 우리나라에 베트남의 젊은이들이 많이 와서 정착하여 살고 있는 것인데, 젊은 한국인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진주성 부근에 인사동 골동품거리를 가보았다. 그런데 관광지라고 하기에는 너무 볼품이 없었다. 골동품이라기보다는 석상들과 장독 같은 것만 줄지어 놓여 있고 문 잠긴 곳도 많았으며, 정비가 되어 있지 않아보였다. 20여개의 상점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정비가 되어야 할 듯 보였다.
남강유등축제가 준비 중인 남강 주변을 자전거로 돌아보기 위해 내려갔다. 자전거 도로가 잘 되어 있었고, 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아 보였다. 남강유등축제는 특별한 역사를 담고 있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적군이 강을 건너려고 하자 강물 위에 유등을 띄워서 이를 저지했다고 전해진다. 남강에 둥둥 띄어 놓은 용, 봉황, 거북이, 연꽃 모양 등 다양한 수상이 보였고 여러 회사들의 협찬이 보인다. 특히 유등 축제의 긴 유등 터널은 사람들이 각자의 소원을 유등에다 적고 이름을 써 걸어 놓았다. 그 등 값만 받아도 상당한 경제적 효과가 있을 것이다. 밤에는 다양한 유등의 불빛으로 인해 남강주변이 환하게 밝혀지고 강은 그야말로 오색 빛으로 빛날 것이다. 예전에 한번 와서 보았던 유등이 켜진 밤 기억 속에 그 불빛이 뇌리에 반짝 거렸다. 그러나 나의 여행은 아직 유등축제가 준비 중인 낮이다. 긴 남강을 따라 돌아보는 자전거 여행은 진주의 가을바람을 담아가는 기분이다. 예전보다도 점점 스케일이 커져 있는 남강 유등축제장을 돌아보며 마음속에 예쁜 등 하나에 불을 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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