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암 혜장(兒庵惠藏) 선사를 아는가?
혜장 선사는 백련사에서 배출한 8인 대사 중 여덟 번째이고, 대둔사에서 배출한 12인의 대강사(大講師) 중 맨 마지막으로 들어 있어 그가 얼마나 불교계에서 크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스승은 연담유일(蓮潭有一)은 대둔사 비각 다례축문에 청허휴정(淸虛休靜)과 함께 들어 있을 정도이다.
그래서였을까? 혜장은 여러 강백에게서 경전을 배웠는데 공부를 할 때는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다가 이윽고 끝나고 돌아갈 때면 “피이!”하고 비웃음을 쳤다고 한다. 경젼 내용이 마뜩치 않았다는 태도였다. 그러나 스승인 연담유일이 가르치거나 글을 읽을 때면 전혀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혜장은 전법수계를 받은 지 8년 후인 나이 겨우 30세에 대둔사에서 불법을 강의하는 강석(講席)을 열어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혜장이 태어난 곳은 해남의 화산방이고, 초명이 팔득(八得)이었다. 여기에서 팔득이란 말은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재주는 칭송할만하지만 그의 외모는 보잘 것 없어 깔보고 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혜장이 처음 다산을 만난 것은 1805년 4월 17일이다. 다산이 백련사에 갈 때였는데 그의 나이 34세였고 다산은 44세였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는 혜장이 다산을 알아보지 못했고 다산 역시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혜장이 “오백생지인연(五百生之因緣)으로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이고 모두가 인연인데, 노형은 노양(老陽)이고 소승은 소음(小陰)이므로 노양 소음이 만나서 변효(變爻)하면 길(吉)할 것이외다” 했다가 다산에게 날벼락을 맞았을 뿐이다. 나중 다산임을 알게 된 혜장이 동분밖 주막집으로 찾아가 “정대부 선생! 어찌하여 빈도(貧道)를 속였습니까?”하며 울부짖었다.
이날 밤 두 사람은 역리의 논변으로 밤을 지세웠고, 혜장은 다산에게 반해버렸다.
다산이 아들 학연과 제자 황상을 데리고 고성사에서 지낼 때였다. 혜장이 1805년 세밑에 고성사를 찾아왔다. 혜장으로서는 다산의 아들 학연과 처음으로 만나는 날이었다.
학연은 혜장에게 환영인사를 대신해 한 편의 시를 읊었다.
보은산 가운데 섣날 눈이 개니/ 절 밖의 버들가지 봄기운 돋아나네./ 수동의 명성 듣고 모습 뵙지 못해/ 두륜산 멀리 보며 그윽한 정 품었었지/
여기에서 수동(壽童)은 구마라습(鳩摩羅什)의 서역 승려를 가리키는 말로 일찍이 다산은 혜장을 구마라습에 비교한 적이 있었다. 혜장은 나이가 젊으나 이미 노숙한 덕을 갖추었다는 의미였다.
이때 혜장은 화엄경과 능엄경의 내용을 물줄기처럼 뽑아냈고 듣는 사람은 넋을 잃고 들었다. 혜장은 어느덧 주역으로 옮아가 주역에 능통했던 진나라 때 도사 청성처사 범장생의 촉재역 그 복잡미묘한 체계를 훑어냈다.
이와 같은 인연은 다산과 혜장이 주역에 대해 토론을 하게 되었고, 그 두 사람 사이에 제자 황상과 아들 학연이 끼어들면서 다산의 권유로 시 짓기를 했다. 다산이 먼저 하면 혜장이 뒤따랐고 다음은 학연과 황상이 이어갔다. 마무리는 황상이었는데, 다음과 같았다.
이만하면 쾌락을 이루었거니
벼슬아치 부러울 것 하나 없지요.
다산과 혜장이 만나면서부터 다산은 본격적으로 차를 마시게 된다. 1805년 4월에는 다산이 혜장에게 걸명시를 보낸다. 혜장에게 차를 얻어 마시면서 그해 겨울에 다시 한 번 혜장에게 차를 청하는 글을 보낸다. 상소문 형식을 빌어 보낸 글이 걸명소다. 다산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답답증이 있었고 눈이 침침하거나 손발이 마비되는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멋으로 마신다기 보다는 마음과 몸을 다스리는 약으로 먹었다.
다산이 혜장에게 지어준 글은 많다. 또한 시도 20여 편에 가깝다. 특히 다산의 <여유당전서>에 나와 있는 탑명은 혜장의 일대기를 집약해서 써놓은 글이다.
혜장은 1811년 9월 보름에 입적하니 그의 법랍이 겨우 사십 세였다. 다산은 그의 명(銘)을 다음과 같이 지었다.
빛나도다! 3천년에 한 번 피는 꽃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시들었네.
펄펄 나는 상상의 새가
잠깐 들렀다 금방 날아갔네.
슬프다!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하며
저서는 남겼어도 전할 자 없네.
그대와 내가 함께 가서
직접 도리의 열쇠를 열세나.
조용한 밤에 낚시 거두니
밝은 달빛 배에 가득하다.
남은 봄이라 입을 다무니
산의 나무 숲 조용하고 쓸쓸하다.
그의 이름은 오래 산다 했는데
하늘은 그를 살리려 안했는가.
묵가의 명분과 유가의 행실을
한유도 어여삐 여긴 바이네.
<양광식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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