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산 ‘호랑이굴’
강진읍에서 동북쪽 7km쯤 떨어진 곳에 있는 화방마을에는 화방산이 있다. 마치 연꽃이 피어오르는 모양의 화방산은 산세가 좋기로 유명하다. 서울대 전 교수이자 유명한 풍수지리 학자 최창조씨도 화방산이 기상이 넘치는 산이라고 평했다고 한다.
화방산 중턱에는 화방사라는 작은 절이 있다. 원래는 서쪽에 위치한 비파산 기슭에 신라시대 인물 고운 최지원이 세운 고운사라는 이름으로 위치해 있었다고 하는데, 하필 그 절에 빈대가 그성을 부리는 바람에 지금의 화방산로 이건했다고 한다. 과거 고운사 터에는 절터만 남아있다고 한다. 또 고려시대 1211년(희종 7년) 원묘국사가 백련사를 중창하면서 보은산 고성암과 함께 지은 화방암이 그 시초라고도 전해진다. 그런 화방사 뒤편에는 입구가 협소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족히 4백명은 앉을 수 있는 동굴이 있다고 한다. 공간이 넓어 누군가 몸을 숨길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았지만, 그 굴에 하필 호랑이가 사는 바람에 얼씬도 할 수 없다고 한다.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는지 그 주위 골짜기에는 호환이 심각하여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들 전해진다. 그런데 150년 전 쯤 호랑이 한 마리가 골짜기 어느 샘에 빠져 죽는 것이 발견됐다. 또 개를 한 마리 물고 도망가던 호랑이도 죽어있었다고 전해진다. 마을 주민들은 이러한 현상을 기이하게 여겼다. 평소에 불교를 숭앙했던 이 일대의 마을 사람들은 호랑이가 사람을 너무 해치는 바람에 부처께서 노하여 벌을 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과거 호랑이는 인간이 감히 대항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재앙 그 자체였으며,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부처와 같은 신격적인 존재에게 의지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호환에 대한 두려움은 이미 공자가 정치를 호환마마에 비유한 것에서부터 드러난다.
물론, 호랑이는 개인으로서 대항하기 힘들었지 인간이 작정하여 뭉쳐 대항한다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존재였다. 조선시대 이씨 왕조는 호랑이 잡는 착호군을 중앙과 지방에 결성하여 주기적으로 토벌을 실시했다. 한반도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제집처럼 넘나들던 호랑이도 착호군이 포위하여 무기를 들이댄다면 한 마리의 고양이나 다름없는 사냥감에 불과했다. 특히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는 ‘해수구제사업’을 실시하여 한반도에 존재하는 호랑이를 이 잡듯이 사냥했는데, 어찌나 이 작업이 철저했는지 한반도에서 호랑이의 씨가 거의 사라져버릴 정도였다.
이제 호랑이는 과거의 잔재에 불과하다. 그러나, 여전히 ‘호랑이굴’ 너머에 아직도 호랑이가 갑자기 튀어나올 것만 같다. 어쩌면 이 동굴에는 여전히 호랑이가 살아갈지 모른다. 인간에게 무수히 학살당한 호랑이의 원혼들이 모여서 인간에게 무수한 증오를 흩뿌리며 말이다.
(윤여현 씨 구술)
강진군 마을사(군동면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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