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온 길 윤재준(주)선도소프트 사장 회고록⑦
사업에의 꿈
어머니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베풀기를 좋아하셨다. 남에게 신세를 지시면 2배 3배 갚아야 직성이 풀리곤 하신다. 가을 김장때가 되면 동네 사람들을 불러 함께 하신 다음에 나누어 드시곤 하셨다. 팥죽을 쑤실 때도 큰 솥으로 쑤신 다음에 집집마다 한 냄비씩 돌리곤 하셨다. 언젠가는 쌀장사를 하신다면서 농사지은 쌀을 모두 내다 파셨다. 누군가가 부산으로 쌀장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계약서도 없고 물론 보험 제도도 모르는 시절이다. 운반 도중 배가 태풍을 만나 파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쌀이 어떻게 없어졌는지 알 도리가 없고 돈도 못 받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는 거래인 것 같다. 이런 일 때문에 아버지와는 늘 맞지 않으셨다.
그때시골에는 농사짓는 것 말고는 공무원 생활이 대부분이었다. 마을에서 펜대나 잡고 출세한 사람이면 면사무소에 다녔다. 호남에는 특히 군인과 사법부로 진출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 주변을 보면 형님은 교육 공무원, 아버지는 우체국장, 큰아버지는 면장, 큰댁 형님들은 관세사와해군, 또 매형들은 경찰과 의사이다. 자연 분위기도 사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장사를 하는 사람도 없었다. 아마 사농공상의 유교사상 때문에 장사하는 것을 천시하는 생각이 팽배했는지도 모른다. 주위에 장사하는 사람이나 사업하는 친척이 없었기 때문에 장사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장래 사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게 됐다. 사업을 해야만 돈을 좀 만지고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북한이나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보다 못 살던 시기였다.
광주로
광주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나의 인생에서 큰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진학이었는데 별로 거기에 대비를 하지 않은 것 같다. 고등학교 입학시험 준비를 별로 해본 것 같지 않다. 동생 기향이는 나와 달리 중3 때는 밤 1~2시까지 앉아서 공부하던 것이 생각난다. 고등학교 진학은그 동안 고향 집 생활을 마감하고 객지 생활로 들어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한 우리나라 중심지인 서울 생활로 옮겨가는 중간 진출인 셈이다. 지금도 집 사람은 나에게 머리가 좋지 않았더라면 시골에서농사 짓고 사랑방에서 화투놀이하는 게 딱 어울릴 사람이라고 미운 소리를 한다.
광주에서 첫 생활은 북동에서 시작했다. 북동은 시내 변두리다. 길 바로 건너가 논이었다. 가을이 되면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들판이 눈앞에 펼쳐지곤 했다. 바로 옆에 탁구장이 있어탁구장에 가끔 갔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도암중학교 교무실에 탁구대가 있어서 탁구는 잘 친 편이였다. 북동에서는 방을 하나 얻어 살았다. 고모 아들 (박동실)이 이미 서중을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다니고 있었다. 나하고 초등학교와 중학교 동창인 고모 작은 댁 아들 근옥이가 고등학교까지 동창이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 나를 도와주신 사돈댁 아들이다. 이렇게 셋이서 자취를 했다. 70에 가까운 근옥이 할머니께서 밥과 빨래를 해주셨으므로 자취라기보다 하숙이었다.
동실이와근옥이는 공부는 열심히 하지만 주변머리가 없었다. 특별히 친한 친구들도 없었다. 학교 후 집에서는 공부만 했다. 시간이 있으면 변두리 논길을 산책하는 정도다. 동실이 형과는 그 뒤로도 계림동 한방에서 하숙을 같이 했다. 아마 사돈 할머니께서 연로하셔서 더 이상 우리 뒷바라지를 해주시지 못 했던 모양이다. 그 뒤 동명동 윤경희 누님 집에서도 함께 하숙 했다. 하숙생활을 같이 하다 보니 자연 동실이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부는 잘했다. 광주일고 3학년 때 1년 휴학하고는 학교에서 1~2등 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할 줄 아는 운동도 없다. 고3 사춘기 때 여학생을 사귄다거나만나는 일도 전혀 없었다.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가을을 알리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는 한가한 여름 방학이었다. 갑자기 ‘꿈은 사라지고…… 뭉게구름 피어나듯 사랑이 일고 끝없이 퍼져나간 젊은 꿈이 아름다워……’ 란 노래가 퍼져 나왔다. 동실이 형과 나는 탤런트나 가수들 이름도 잘 몰랐으므로 어느 가수가 저렇게 노래를 잘하나 했다. 조금 뒤에 알고 보니 주인집 딸이 부르는 노래였다. 그 학생은 광주여고 1~2학년쯤이었고 주인은 노씨였다. 그렇지는 우리는 말도 건네 보지 못했던 숙맥들이었다. 그 뒤로 그 노래는 우리들 사이에 라디오 노래를 이름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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