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는 사람은 이끄는 사람의 입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김재철의 리더십은 선장 시절에 초석이 다져졌다.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 리더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원칙은 젊은 날의 어느 일화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1960~1970년대는 지금보다 술을 많이 마시던 시절이었다. 선장으로서 사업가로서 김재철 역시 술자리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간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도 보통 술이 아니라 그 독주를 말입니다.” 원양어선들은 주정을 싣고 가는데 도수가 97도였으며 이를 40~50도로 희석시켜 마셨다. 그가 선장 시절에 엄격한 자기관리에서 리더십의 방법을 찾은 에피소드가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엽만 하더라도 직장을 구하기가 어려워서 원양어선을 많이 탔다. 회사에는 청탁이 잦았고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젊은 친구들 가운데는 행동이 자유분방하다 못해 제멋대로인 경우가 있었다. 이들을 휘어잡지 못하면 선장은 내내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번은 지시를 따르지 않고 애를 목이는 한 친구를 불러냈다. 주먹을 쓰는 사람이었는데 상대를 제압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리더십이 판가름 나는 상황이었다. “오늘 저녁에 나하고 한잔 거하게 하지. 만일 내가 취해서 다음 날 못 일어나면 네가 원하는 대로 하고, 네가 취해서 일어나지 못하면 앞으로 찍소리 하지 말고 내 지시를 따라야 한다.” 그렇게 주먹으로 살아온 혈기왕성한 친구와 주거니 받거니 독주를 마셨다. 김재철은 힘주어 말한다. “나는 단 한 번도 취하지 않았어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더라도 먼동이 트는 아침녘까지 기름통(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목욕통 물통에 몸을 담그고 잠들지 않았어요.” 아침나절에 술을 취해 비몽사몽인 청년의 귀에다 대고 크게 외쳤다. “야, 너 어젯밤 약속을 잊지 않았지!” 그렇게 상대방의 기를 꺾고 자신을 따르도록 만들었다.
훗날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약점 잡히는 일이 없도록 몸가짐을 반듯이 했다. 그리고 리더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늘 강조한다.
“허점이 없어야 한다. 책잡히지 말아야 하고, 일단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고,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말고, 능력으로 성과를 만들어내야 부하들이 따른다.”
그는 리더가 더 희생하고 더 헌신하고 더 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삶을 두고 거듭 ‘지사적 삶’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사업가로서 실사구시에 따라 방법이나 도구는 바꿀 수 있지만 뜻과 가치는 한결같이 반듯함을 추구한다. 나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어야 타인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다.
기회가 왔을 때 집중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어제는 어제이고 오늘은 오늘일 뿐이다.” 오늘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해서 내일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하나하나가 독립적인 사건일 뿐이다. 선장 세계에서 겪었던 이런 경험은 그에게 기회를 바라보는 관점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일단 어군을 만나면, 모든 것을 퍼붓듯이 집중해 잡는 일이 몸에 배어 있다. 또한 그는 매사에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될성싶다”는 판단이 서면 전광석화처럼 달려간다. 그는 신임 임원들에게 “무슨 일이든 한번 할 때 바짝 몰아붙여서 해야 한다. 속도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시간을 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참치 선망업의 진입과 성장담은 기회가 왔을 때 집중적으로 밀어붙인 대표적인 사례이다. 1979년 4월 21일에 코스타 데 마필호로 시작된 참치 선망업 진출에서 사업성을 확신하게 된 것은 같은 해 10월 무렵의 일이다. 이후 놀라운 속도로 참치 선망선이 도입되는데 캡틴 김호(1981년 9월 21일), 자이언트 김호(1982년 2월 16일), 월드 김호(1984년 3월 27일) 등이었다. 이어서 코스모스 김호와 유니버스 김호(1986년 6월 2일), 벤처 김호(1986년 11월 1일) 등이 도입된다. 사업 출범 이후 6년째를 맞았을 때 참치 선망선이 7척에 이른다. 원양업계의 다른 사업자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드는 1980년대 중반에 김재철은 저만치 앞서가 있었다.
참치 연승업의 선장으로 일하며 힘들게 새로운 어장을 발견했을 때도 어김없이 후발 어선들이 주변을 에워쌀 정도로 북적거렸다. 새 어장에서 신속하게 어획을 하고 시장을 떠나는 것이 일상이었으리라. 이런 일이 그의 사업 인생에도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인다.
업무 추진과 성과 창출에 있어서 집중력은 매우 중요하다. 또한 평범한 사람이 위대한 일을 이루는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 그는 평생 유흥과 잡기를 멀리하면서 사업에 초집중해왔다. 현장과 사업에 대한 집중력을 잃기 시작하는 데서부터 몰락의 씨앗이 뿌려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업 초기에 나이로 보나 사업 규모로 보나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선 선배들이 난항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같은 업계에서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사건 하나하나가 그에게 반면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기회는 늘 오는 것이 아니다” 혹은 “탄탄하게 보이는 사업이라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가버릴 수 있다”는 깨달음을 삶으로 체득했다.
필자는 농담반 진담반의 질문을 그에게 던졌던 적이 있다.
“사업을 하다 보면 여자를 가까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회장님은 어떻게 그런 스캔들 한 번 없으셨습니까?”
김재철의 회고담은 이랬다.
“20~30년 전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는 둘째 마누라가 있는 사람도 더러 있었지요. 요즘 같으면 큰일날 소리이지만 당시만 해도 죄의식이 덜했지요. 저는 사업에 집중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안중에도 없었어요. 고작 골프 갔다가 한잔하는 정도였지요. 모든 에너지를 사업에만 쏟았기에 회사와 가족을 지킬 수 있었어요. 제가 머리는 뛰어나지 않지만 집중력만큼은 강점이라 생각해요.”
2010년 한국투자증권에 워크숍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 사람들이 자주 쓰는 사자 성어가 一生縣命(잇쇼켄메이)입니다. 그냥 열심히 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생일대(一生一代)의 목숨을 건다(縣命)’고 할 정도로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이렇게 해야 뭐든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이름을 얻으면 성공이란 과실이나 성과에만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 결실을 거두기까지 어떤 노력을 쏟았는지 간과하기 쉽다. 우리는 그의 집중력에 주목해야 한다. 그는 언제 어디서든 집중했다. 그리고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요소들을 멀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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