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초고령화시대(39회)
군동면 평리마을 윤 희(76)할아버지
“열다섯 살에 일본에서 해방되았고, 열아홉 살에 6.25가 터져서 스무 살에 군대가고·······그러니까 가장 힘든 시대에 태어나서 나쁜 시상만 다 살아왔다고 보제.”
일제시대에도 윤할아버지 집은 그리 어렵게 살진 않았다. 일꾼을 부리며 농사를 지었기 때문에 아버지가 손수 일을 하는 모습은 보지도 못했다. 아버지는 늘 부락 일로 바빴고 바깥출입이 많았다. 그러나 일제말엽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징용에 가기 시작하면서 농사일을 해줄 일손이 부족해졌다. 평생 일을 하지 않고 살았던 아버지였기에 일손이 없는 농토는 점점 폐허가 되어갔다.
“내가 금릉중학교를 졸업하고 6.25 이듬해 끌려가부렀어요.”
6.25당시 중학교를 졸업한 윤할아버지는 느닷없이 군대에 가게 되었다. 그 시대에는 지서에서 누구누구 가라하면 그냥 군대를 갔다.
“형님보고 군대가라 지시가 왔는데 기양 내가 간다고 가부렀어요. 그러니까 형님대신 군대갔제.”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군대를 간 윤할아버지는 강원도 포병부대에 배치를 받았다.
“죽을고비 엄청 많았어요. 살아있는 것 보먼 요상허요.”
어느 날 부대에서 산꼭대기 중계소에 포병대 간측소를 짓고 있었던 때였다. 마대로 흑을 담아서 산꼭대기까지 나르는 과정이었다. 그때 갑자기 포가 날아들기 시작했다. 적들에게 노출되었기 때문에 직사포가 마구 날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놈들의 포가 머리 위로 막 지나간디 아찔 허더만요. 이라다가 죽는가부다 했지요.”
직사포가 머리 위로 날아와 바닥으로 떨어졌다. 포병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무조건 산 아래로 뛰어내려와 도망을 하여 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죽을고비가 한 두 번이 아녀요. 전쟁 중이디 그럼·······”
또 한번은 부대이동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부대차라고 해야 고물차에 가까운 차였으므로 고장이 나면 밀고 가기도하고 걸어서 이동하기도 하는 일은 부지기수였다.
“차 바꾸가 물이 들어갔던가······높이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인디······ 갑자기 부리끼가 안들어부러.”
산비탈 내리막길에서 차가 갑자기 마구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찌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반대편 아래쪽에서는 다른 차가 올라오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부대 차는 올라오는 차를 피하고 낭떠러지를 피해 언덕을 받고 전복되었다. 다행히 중상을 입거나 사망한 사람은 없었지만 생각할수록 아찔한 순간인 것이다. 윤할아버지는 만4년 동안의 군대생활은 그야말로 생과 사를 왔다 갔다 하는 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군대갔다와서 뭐 취직도 안되고 혀서 구멍가게를 했어요.”
제대를 한 후 결혼도 하고 구멍가게를 시작했다. 목포로 물건을 하러다니려면 오전 한대 오후 한대 있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다. 새벽 도매시장은 도깨비시장이라고 해서 그야말로 반짝 열렸다가 끝나는 장이었다.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오후 4시나 되아서 돌아와요. 고생은 했어도 돈은 벌렸다고 봐야지요. 그래서 면사무소 앞에 큰 집사서 장사가 잘되았어요.
면사무소 앞에서 가게를 하다보니 면직원들이나 가게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하는 애기가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마흔살땐디 젊은 혈기허고 오기가 있는 때라고 봐야제. 평리마을이 꼴등이다 이런소리들을 한단말여.”
윤할아버지는 ‘평리마을이 꼴등이다’ 라는 소리가 듣기 싫어 자신이 이장과 새마을 지도자를 맡았다. 당시 새마을 사업으로 한 부락당 시멘트 333포가 무상으로 주어졌다.
“우리 같은 경우는 진짜로 며칠 씩 굶어감서 고상 엄청했어요. 그때 우리 마을 앞으로 논 한 방구 장만하고, 창고도 짓고 길포장도 하고 참 일 많이 했던 때요.”
고생은 했지만 그로인해 마을에 발전이 있어 기쁘다는 윤할아버지는 그 뒤 마을이 단합도 잘되고 튼튼한 마을이 되었으므로 보람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내가 이삔지 어쩐지 모른디, 차를 타먼 아줌니들이 ‘아따 우리 사우 삼었으먼 쓰겄다.’ 고 말들을 허더만······.”
훤칠한 키와 미남형인 윤할아버지에게 젊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겠다고 물었다. 역시 아내인 김남초 할머니와는 연애결혼을 했다는 윤할아버지다.
“내가 아 다녔다고 보다는 그 사람이 아다녔다고 봐야제.”
윤할아버지가 뭐 그런 것을 묻느냐고 핀잔을 주며 웃는다. 지금도 평리 노인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마을을 가꾸고 계신 윤할아버지는 2남2녀(장남 :윤한석50)를 두었으나 모두 객지에 살고 있으며 김남초 할머니가 해주는 밥이 최고로 알고 산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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