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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여름, 생가 사랑채의 아름다운 모습. 초라해 보이는 오늘의 초가 사랑채에 비해 얼마나 우아한가? 1943년 선친 영랑이 생가 사랑채 초가지붕을 기와로 개조, 단계적으로 안채도 바깥채도 모두 기와로 지붕을 개조할 계획이었으나 갑작스런 조국광복으로 새나라 건설에 온 정신이 팔려 그럴 틈이 없이 지나다가 1948년 서울로 이주하면서 아쉽게도 전체 가옥 기와지붕 개조 계획이 좌절됐음은 두고두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군은 무슨 이유 론지 국가지정문화재인 생가의 사랑채 지붕을 그 후 임의로 초가로 바꾸는 큰 실수를 했고 아직도 복원 계획은 없다. |
우리나라는 광복 후 북은 좌익(파) 남은 우익(파) 등 이념적으로 나뉘었고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정권은 정부의 부정 비리 및 실정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거나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좌파’, ‘좌익’, ‘빨갱이’, ‘종북’ 으로 몰아 탄압했다. 즉, ‘우익’, ‘우파’등으로 불린 ‘보수’는 흔히 반공주의, 재벌 중심 시장경제 인정, 강력한 대통령의 민주에 역행하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말하고, 반대로 ‘좌파’, ‘좌익’ ‘종북’등으로 불린 ‘진보’ 하면 남한과 북한의 화해, 복지 확대, 민주화 확대 등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사람들을 뜻하는 게 정답이다.
그러나 광복 직후 ‘좌파’나 ‘좌익’은 위에서 말하는 ‘남한과 북한의 화해, 복지 확대, 민주화 확대 등으로 사회를 변혁하려는’ 인사들을 말하기 보다는 무조건 ‘빨갱이’로 보는 풍조가 강했음을 미리 말해 둔다.
평소 아버지 영랑이 생가 안채에서의 식사 시간과 외출할 때 말고는 계속해 머물러 계시던 곳이 사랑채였다.
이곳에서 시를 쓰고 서양 고전과 국악 등 음악을 감상하며 거문고, 가야금, 양금, 북 등으로 쓰디 쓴 사회 현실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해소하셨다.
또 폴 베를레느, 랭보, 스펜서, 테니슨, 브라우닝, 또스트에프스키 등을 탐독하시고, 옆 공판(테니스 코트)에서 운동을 하시며 찾아오는 손님들을 맞아 시국에 관련한 환담을 하시고 자식들을 공부 시키는 등 모든 생활이 이어졌으니 사랑채야 말로 바로 영랑의 생활 터전이었던 것이다.
당시 주로 사랑채를 찾아오는 손님들 중에는 간혹 임방울, 김소희, 박초월 등 영랑의 초청을 받고 당대의 국창들이 방문했던 것 말고는 거의가 고향 친구 분들이었다.
낮에도 불쑥 찾아오는 친구 분들이 가끔 계셨지만 주로 저녁 식사 후 자주 찾으시는 분들은 평동의 차부진, 조재의, 탑골의 김상균, 양경대, 김창식, 서문안의 김현구(시인), 김형식 등 아버지와 연배가 비슷한 분들이었다.
그 중 가장 연령차가 많았던 분이 탑골의 양경대씨로 아버지보다 7년이나 어렸다. 그 분의 연세를 기억하게 된 동기는 이렇다.
어느 날 나는 외모로 보아도 아버지 보다 한 창 어린 그 분이 부친과 서로 “그랬는가?” “아니네” 하며 벗을 하는 것이 괴이하게 느껴져 어린 나이에도 부친께 “아버지보다 훨씬 어린 분이 왜 말을 놓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당돌한 질문을 드린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버지는 웃으시며 “응, 그 분 나이는 나보다 7년 아래다. 그런데 우리 예법이 위 아래로 7년까지는 벗을 하되 8년부터는 깍듯이 ”선생님“이라 부르며 예우를 하는 법이다. 그러니 그 분과 벗하는 게 이상할 것이 없지 않냐”고 우리 예법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지금 사랑채를 앞에서 바라보고 왼쪽과 오른쪽의 뒤쪽으로 들어가 있는 두 방 말고 앞부분 왼쪽에 우리 형제들의 공부방이 있었고 그 방과 연결된 오른쪽 방이 선친께서 쓰시던 방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그 두 방 중간에 미닫이문이 있어서 잔치가 있을 때 문을 트면 두 방이 큰 방으로 바뀌었고 춥지 않은 계절에는 좌우 그리고 앞 등 3면의 마루와도 연결해 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도록 방과 마루 사이의 문은 밑쪽에서 위로 들어 올려 천정 쪽에 매달도록 설계되어 있었기에 큰 잔치 때는 넓고 유용한 공간으로 쓸 수 있었다.
조국 광복 직후 누가 좌익인지, 누가 우익 진영에 가담했는지, 아직 선명하지 않았던 시절, 방학 때의 어느 날이었다. 형들과 나는 공부에 열중하고 있는데 자주 안 오시던 C 모씨가 불쑥 아버지를 찾아 오셨다. 이 분은 당시의 좌파인 정당에 가담, 당의 조직을 맡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우리는 손님께 인사를 올리고 다시 방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바로 옆방에서 들리는 두 분의 목소리가 평소 친구 간의 오순 도순한 그런 분위기와는 달리 말소리가 자꾸 커지던 것이다. 우리는 공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두 분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 분의 목소리는 격앙된 듯 큰 소리로 거칠게 들렸다. “수많은 일본 유학생들이 그렇듯이 지식층이라면 경제 균등을 목표로 하는 좌익에 투신해야 하는데 자네의 자세는 도대체 왜 그런가?”하며 강하게 아버지를 밀어 붙이는 듯 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버지가 좌파인지, 우파인지 알 수 없어 너무 궁금했던 터라 자식들의 귀가 더 쫑긋, 아버지의 대답에 신경이 곤두섰다. 그러나 어린 나로서는 두 분의 대화 중 나오는 ‘경제균등‘이니 ’민주사회주의‘니 하는 어려운 단어들로 헷갈렸다. 다음은 손님이 떠난 후 형들끼리 얘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알게 된 내용들을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아버지는 남로당(남조선노동당)에 입당을 종용하는 이 분께 반문을 했다. “다른 유학생들의 언행에 나는 관심이 없네. 자네 말 대로 경제균등 분배란 인류의 이상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좋은 정치를 편다면서 경제균등 보다 더 소중한 ‘인명’을 파리 목숨 취급해서 벌써 스탈린(Joseph Stalin,1879~1953)의 ‘피의 숙청’으로 천만 명(그 후로도 계속된 숙청으로 약 2천만 명이라는 엄청난 희생자가 났다)을 훨씬 웃도는 희생자가 발생했고 그 잔악하기 짝이 없는 피의 숙청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 말을 들은 이 분은 목소리가 조금 자자들며 “대강 소식은 듣고 있네. 그러나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키려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하네“라고 받아치면서 ”며칠 후 다시 들릴 테니 신중히 생각해서 훗날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해 주시게. 양심이 올바른 지식층이라면 사회주의를 택하는 게 옳지 않은가“하며 떠날 인사를 했다.
이 때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듣고 가시게. 나는 인류의 이상인 부의 균등 분배가 인권을 짓밟지 않는 민주사회주의 정치 하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적극 동조하겠네만 이 세상에 유일한(당시) 소련의 일당 독재 사회주의 체제가 보여 준 실상을 보고 많이 놀라고 실망했네. 그 많은 정적을 무자비하게 숙청해 죽이고 국민의 모든 자유가 속박당하는 현실이 무섭지도 않은가? 그러니 자유주의자요 인도주의자인 내가 그토록 경직된 조직에 가담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 일이라면 앞으로 백 번을 찾아 와도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니 그리 알게!“
목적을 이루지 못해선지 이 분은 불쾌한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그 후 다시는 이 분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자식들은 이때를 계기로 아버지의 정치 노선이 우익임을 알게 됐던 것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우익’이란 앞서 말한 정부의 부정 비리 및 실정을 바로 잡으라고 요구하거나 반대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을 억지로 ‘좌파’,‘빨갱이’,‘종북’으로 몰아 탄압하고 강력한 대통령의, 민주에 역행하는 ‘권위주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게 아니니 이 점 오해 없기를 바란다. 이러한 민주주의는 말만 ‘ 민주주의‘ 일뿐 내용은 독재 또는 준독재에 불과할 뿐이다.
영랑이 가족과 상경 후인 1948년, 일당 독재 공산주의 체제를 ‘부의 균등분배’를 내세워 찬양하며 국민을 기만하던 당시 전국의 수많은 좌익계 주간, 월간, 계간지들이, 정부의 출판국장 재직 중 신속한 조치로 모두가 수개월 만에 도태되었음은 지금 생각해도 자랑스러운 업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2015년 현재,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자유’억압(신은미의 강제출국 등)은 물론, ‘결사의자유’마저 묵살(통진당 해산), 국민이 취사선택해야 할 문제인 정당 존립 여부마저 우익(파) 정부(사법부)가 해산해 버리는, 40년 전 유신 때와 똑같은 권력의 횡포가 자행되는 조국의 슬픈 현실을 보고 지하에서 조국을 바라보는 애국자 영랑의 눈에는 뜨거운 이슬이 맺히고 있지 않을까?
영랑이 사회주의를 거부했던 이유, 즉 그 분이 추구했던 나라는 자유를 만끽하는 국민 위주의 민주 정치, 그에 따른 부의 균등분배였으니, 오늘 날 이 세상에서 사회복지 정책이 가장 잘 돼 있다는 북유럽, 스캔디나비아 여러 나라, 예를 들면 국민 연소득이 세계 최고인 룩셈부루크($10만 5천, 2007, 중도 좌파 표방) 처럼 큰 부자도 가난뱅이도 없는 자유로운 세상이었다. kajh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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