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마지막 수배자' 윤한봉 38년만에 무죄 판결 받다
▶5.18마지막 수배자 무죄 판결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과 자격정지형의 유죄판결을 받았던 강진 출신 고(故) 윤한봉(1947-2007) 선생이 지난 4월 11일 광주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서경환)에서 38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날 광주고등법원 형사1부는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 민족미래연구소 윤한봉 소장과 강신석 목사, 고 조홍래, 고 임기준 목사에 대한 재심에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서 현재까지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패해자 49명 중 46명이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됐다.
윤한봉 선생은 1947년 강진군 칠량면 동백리에 태어났다. 그는 광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일고에 입학했으며, 전남대 농과대학 축산과에서 공부하던 1972년 박정희정권의 유신선포에 반대하면서 본격적으로 반독재투쟁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1974년 초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15년 자격정지를 선고받고 전남대에서 제적됐다.
그러나 그의 민주화운동 신념은 좌절하지 않았으며 전남 민주회복구속자협의회 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주도했다. 이후 징역 1년6월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서 1977년 만기 출소했으며 함평고구마사건, 들불야학 사건, 전국 농민쌀생산자대회 개최, 전남민주청년회의회 활동 및 전남대 방화사건 배후조종자로 의심을 받는 등 전남에서의 크고 작은 민주화운동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해왔던 인물이다.
또한 그는 1980년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주동한 혐의로 수배되어 도피생활을 했다. 윤한봉 선생은 광주민주화 운동을 사전 예견하여 신군부가 절대 권력을 놓지 않을 것이기에 시민들의 희생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점과 당시 민주화운동이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까지도 5.18 이전에 여러 자리에서 이야기 하였다는 이유로 5.18 핵심 주동인물로 낙인찍혀 거액의 현상금이 붙은 수배생활을 했다. 그는 결국 도피생활을 하던 1981년 4월 화물선 레오파드호에 숨어 35일을 연명해 미국으로 밀항 망명했다.
그는 미국에서 민족학교를 설립하는 등 재미한국청년연합, 해외한국청년연합을 통한 다양한 고국민주화운동을 전개했으며, 1993년 8월 마지막 수배가 해제되자 12년간의 망명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5.18기념재단의 설립에 있어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민족미래연구소장과 들불야학기념사업회장 도맡았지만 정작 본인의 피해 보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후 5.18을 정치화하고 이권화하려는 세력에 대해선 거침없는 독설로 비판해온 그는 주위로 부터 `이단아' 취급을 받는 등 쓸쓸한 말년을 보내기도 했으며, 그의 사후 현재까지 (사)합수 윤한봉기념사업회가 결성돼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을 버리지 못하고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그의 뜻을 기리고 있다.
윤한봉 선생을 원칙에 철저한 운동가라고 세간에서는 평한다. 세상의 변혁을 위해 온 몸을 던진 운동가였던 그의 철저함은 일상의 삶에서조차 종교적 느낌을 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그 철저함 때문에 가끔 ‘기인’에 가까운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였지만 그를 가까이서 접해본 사람들이 기억하듯 그는 삶의 사소한 어느 모양 하나에서도 허튼 것이 없는 원칙을 벗어난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 윤한봉의 삶을 돌아본다
▶예견된 광주 5.18 항쟁... 결국 주동자로 수배자 되다
1980년 5월 14일, 광주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도청앞에서는 ‘전두환 물러가라’는 집회가 이어졌으며, 시민들까지 적극적으로 호응을 하면서 윤한봉 선생이 우려했던 사태가 점점 현실화되고 있었다. 5월 17일 밤 11시 비상계엄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긴급사태로 이어지면서 전남민청협의회 주요 회원들이 하나둘 잡혀가 보이지 않게 되자 윤한봉 선생 또한 어떻게 누구와 함께 대응해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다행히 여동생 집으로 숨은 윤한봉 선생은 다음날 21일 아침 광주를 빠져나와 나주로 향했다. 나주 시내를 서성거리던 그는 광주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자신을 비관하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광주에서 차를 타고 내려온 시민들이 나주 경찰서의 무기고를 털어 무장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광주시민들의 항쟁이 시작된 것을 알았다. 다시 광주로 들어가기를 수차례 시도한 그는 남평 지역에 공수부대들이 봉쇄망을 쳐놓고 있어 광주 진입에 실패를 하고 시위에 참여하지 못한 죄책감만 안고 있어야 했다.
이후 5월 27일 도청이 함락됐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윤한봉 선생은 수천만의 현상금과 1계급 특진이 걸린 수배자가 되어 있었다. 윤한봉 선생은 이미 전두환 정권에게 폭동의 주동자로 지명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5.18 이전에 여러 자리에서 전남대총학생회와 전남민청협의회, 도청항쟁지도부 등을 엮어 5.18 항쟁이 주민들의 순수한 민주화운동이 아니라 북한과 연계된 일부 학생들 및 시민들이 일으킨 체제전복을 위한 폭동에 불과하다는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증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한봉 선생이 쉽게 체포되지 않자 당시 최연장자인 전남대 복적생 정동년씨를 내란수괴자로 몰아 5.18 항쟁을 김대중 전대통령이 배후 조종한 것으로 조작하여, 8월 14일 전두환정권 수사결과 윤한봉은 DJ로부터 500만원을 받은 정동년씨에게 200만원을 받아 조선대 학생운동에 썼으며, 내란 주요임부 종사 및 계엄포고령을 위반한 수배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윤한봉 선생의 도피생활은 시작되었으며, 결국 잡히면 죽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험난한 시기를 보낸 윤한봉 선생은 어떤 식으로든 해외로 나가기로 결심을 한다. 특히, 그는 국내 수배기간동안 여러 사람들에게 신세를 지고 불안에 빠뜨리며 걱정거리로 전략한 자신이 또다시 많은 이웃들에게 희생을 강요하게 되는 것이 우려되어 조용히 밀항계획을 세웠으며 가족들에게조차 알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윤한봉 선생 가족들은 그의 신변에 어떤 이상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하며 마음조리며 걱정의 나날을 보냈으며, 누구도 윤한봉 선생이 미국으로 밀항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미국으로의 밀항이 쉽지만은 않았다. 어렵게 찾아낸 방법이 마산에서 미국행 화물선을 타는 것이었다. 화물선을 타는 후배를 알게 되어 그 후배의 도움으로 마산항 화물선 선착장에서 배에 오를 수 있었으며 1981년 4월 29일 마산항에서 레오파드호라는 화물선에 숨을 수 있었다. 밀항선이 미국에 도착하기까지는 35일이 소요됐다. 화물선은 호주에서 알루미늄 원광석을 싣고 미국 서북부 워성턴주 벨링햄으로 향했다. 그 기간 동안 윤한봉선생은 여덟 차례만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며 나머지는 잣3알과 멸치하나, 마른새우 하나씩을 먹으며 지냈다. 화물선의 큰 연통이 지나가는 작은 화장실로 잠입하여 선원들의 병실에 달려 있는 화장실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는 것은 지옥이었다. 바람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곳은 바닥은 타일이며 사면의 벽과 천장과 문짝까지 철판이고 철판 벽을 사이에 두고 연통이 계속 열을 뿜어내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피부에 기포와 수포가 여기저기 돋아나 발생했으며 특히, 배가 적도를 통과할 때에는 2~3일 동안 화장실 전체가 숨이 막힐 정도로 열기가 차곤 했는데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두 번이나 적도를 통과해야 했다. 또한 호주에 도착하여서는 세관들이 배에 직접 올라와 밀항자나 밀수품이 있는지 수색하였고, 폭풍우를 두 차례나 만나 화장실 청소도구들과 함께 이리저리 나뒹굴어야 하는 위기의 순간을 아슬아슬하게 넘겨야 했다.
윤한봉 선생의 아호‘합수’는 재래식 변소에 들어 있는 분뇨를 말한다. 이런 일들로 인해 윤한봉 선생은 별명이 합수가 되었는데, 후에 아호가 된 것이다. 이러한 밀폐된 밀항선에서의 고통은 그러나 그에게 견딜 수 있게 하는 더 큰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5.18을 전후로 체포되어 소름끼치는 고문을 당했던 당시 구속자들이 당한 고통을 생각하면 자신의 고통은 비할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그의 당시 나이가 33세였으며 마지막 수배자로서 1993년 8월 수배가 해제되기까지 장장 12년 동안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게 되었다.
▶귀국후 진정한 5.18 정신을 계승하려고 노력한 윤한봉 선생
1983년 2월 5일 LA코리아타운에 미주 동포사회 최초의 민족교육기관이자 미주운동권 센터가 될 민족학교가 설립됐다. 민족학교가 설립된 후 영사관측의 방해공작이 심각했다. 북한과 내통한다는 말을 만들어 내고 결국 동포들은 그런 말을 확인도 하지 않고 믿게 되었는데, DJ 지지 세력들까지 중상을 해오며 버르장머리 없는 빨갱이로 몰아부쳤다. 윤한봉 선생은 이때부터 DJ와의 사이가 불편한 관계가 되었으며, DJ의 처신에 오랫동안 불만을 갖게 되었다. 미국을 방문한 DJ의 LA강연에서 “5.18은 내가 잡혀가자 분노한 광주 시민들이 일어난 것이다”라고 말한 DJ의 강연을 듣고 윤한봉과 민족학교 사람들이 분노했고 그들 모두 그 자리를 박차고 강연장을 빠져나왔다. 윤한봉 선생이 귀국 후에도 DJ와 함께 정치를 하지 않은 이유를 거기에 연결 짓는 사람들이 그래서 많은 것이다.
미국의 민족학교는 극심한 음해 과정을 거치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갔으며, 미주 청년운동조직들을 만들기 위한 준비도 하게 되었다. 윤한봉 선생은 그의 자서전에서 당시 일을 “마침내 조국의 자주 민주통일 평화를 위해 일하고 동포사회를 위해 일할 해외동포 청년운동조직이 출연한 것이다”고 표현하고 있다.
1987년 4월 윤한봉 선생은 미국정부로부터 정치망명 허가가 나왔다. 정치적 망명을 신청한지 6년만의 일이었으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었다. 이후 자유롭게 외국을 드나들 수 있게 되었으며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됐고, 팔순이 된 어머니가 미국으로 아들을 찾아와 상봉할 수도 있었다.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13돌을 맞으면서 특별담화를 발표했다. 80년 5월 광주의 희생은 이 나라 민주주의를 위한 것으로서 오늘의 정부는 그 연장선 위에 있다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원 조성, 관련전과기록 말소 등 명예회복 방안을 밝힌 일이다. 이때 윤한봉 선생은 5.18 마지막 수배자에서 해제되었다.
윤한봉 선생은 이후 5.18 단체가 잘못 돌아가고 있는 것에 분노했는데, 5.18이 광주시민들을 무시하고 개인적 명예정도로 운영되고 있는 점에서였다. 5.18 정신 계승 사업의 주체가 될 재단이 원래의 뜻에 부합된 단체가 되어야 한다는 일념에 그는 재단을 만들면서 어떤 직위와 직책도 맡지 않았다. 95년 4월 윤한봉 선생은 만 47세 나이에 미국에서 한청련 활동을 할 때 총무를 맡아 정성으로 뒷바라지를 해준 신경희(당시34)씨와 결혼을 했으며 그해에 후배들의 도움으로 광주에 민족미래연구소라는 연구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는 불치병인 폐기종 진단을 받게 되었으며, 2007년 폐 이식수술 직후 합병증으로 타계했다. 그는 폐기종 투병 중에도 김용근선생 기념사업회 회장과 5.18아카데미 교장, 들불열사기념사업회 초대 이사장 등을 맡아 열정적인 활동을 했으며 사후 망월동 묘역에 묻혔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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