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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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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김종심 '자신을 사랑할 때'
김종심 강진문인협회회원

 

 

자신을 사랑할 때

 

김종심(강진문인협회회원)

집 떠난 지 두어 달 만에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화단 한편에 탐스러운 수국이 풍성하게 피어나 있다. 벌써 초여름이 된 것이다. 돌아올 집이 있어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이 들면 꽃을 좋아한다는 말이 나를 두고 한 말이었을까. 수국이 왜 이리 예쁠까.

세월 이길 장사 없다고 칠순 생일이 지나고부터 몸 여기저기서 힘들다는 신호가 왔다. 체력이 점점 떨어져 누가 곁에서 보면 답답할 정도로 살림도 쉬엄쉬엄 하였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오래된 기계처럼 몸도 고장이 잦아서 시시때때로 치료가 필요하나 보다.

다리가 저릿하고 걷기가 조심스러운 것도 꽤 오래되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생활 전반을 짓누르는 나날이었다. 좋아지겠거니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살아온 게 화근이었을까. 그런 어미가 안 되었는지 아들이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놨다며 올라오라 했다.

아들이 도착시간보다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아직 두발로 걸어 아이들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아들 집에서 자다가 가슴을 후비는 천둥소리에 허공을 더듬다가 깜짝 놀라서 밤중에 눈을 떴다. 아픔의 중압감이 무의식 속에 천둥이라도 된 것처럼 느껴졌다. 온 몸에 땀이 흥건히 젖었고 베게와 옷도 모두 젖어 있었다.

소변이 마려워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마비되어 움직일 수가 없다.

왜 이렇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안간 힘을 쓰며 큰소리로 손자이름을 부르며 악을 쓰고 있었다.

찬빈아 찬빈아! 할머니 죽어간다.”

가족들이 혼비백산 잠에서 깨어 달려왔다.

엄마 왜 이래요! 어머니! 할머니 하고 부르며 마비된 다리를 만지며 울먹인다.

119가 도착해 대학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다. 깨어보니 엄마! 엄마! 언제 왔는지 딸아이가 내 팔을 붙잡고 큰소리로 울고 있다. 정신이 번쩍 들어 주위를 살펴보니 아들, , 며느리, 사위, 손자 모두가 내 온몸을 주무르고 있는 것 아닌가. 조금 전에 소동을 부렸던 내가 부끄러워져 눈을 감아버렸다.

그리고 척추측만증 판정을 받았다. 다리가 그렇게 아팠는데도 이렇게 되기까지 원래 그런거려니 하며 방심하며 살았다. 내게 이겨낼 힘을 주시라고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밤새 검사를 진행해서 아침 첫 시간에 수술을 한다고 했다. 골다공증이 심해서 어려운 수술이라 도중에 뼈가 으스러질 수도 있다고 했다. 딸아이는 시술을 원했고 아들은 수술을 해야 한다며 의견이 분분했다. 의사선생님의 의견에 따라 수술 날이 결정됐고, 드디어 아이들의 손을 놓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내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입술에서 저절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들리지 않는 말들을 수없이 뱉으며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러고 나서 눈을 떠보니 회복실이다. 간호사가 마취에서 깨어난 나를 보더니 아이들을 불러 들였다. 마취시키기 전에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가장 많이 한 환자라는 말을 들으니 아픈 중에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려운 수술이었는데 잘 되었다며 슬쩍 귀띔을 해준다. 나는 간호사의 손을 잡고 선생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여러 번 했다. 비로소 평온을 되찾게 되면서 안심 되었다.

입원실은 6인실이었다. 낯선 분들과의 처음 만남인데도 병실에 들어서는 나에게 손뼉을 치며 환영을 해줬다. 생각지 못했던 환영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행복감이 밀려왔다. 병실에서 자기소개를 하고 인사를 나누는 것은 동변상련의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는 순서 같다. 자정이 되자 마취가 풀렸는지 통증이 밀려왔다. 통증이 오면 간호사를 부르라고 했지만 간병인까지 모두 깊은 잠에 빠져있어 난감한 밤이다.

조금만 더 참자.”

간호사가 와서 무통 주사를 놓아주니 통증이 사라졌다. 이 주사를 자주 맞으면 회복이 더디게 된다는 말을 듣고서는 조금씩 참았다. 재활치료를 거치는 동안 병원에 두어 달 있었다. 우리 병실에서는 85세 어르신을 왕 언니라고 불렀다. 그 분이 내게 전라도 동생이라고 부르며 날마다 말씀하셨다.

저 전라도 동생 오늘은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몇 마디 만들까잉?.....”

하시면서 칭찬하는 소리다. 나는

서교동 왕 언니 제가 더 많이 감사하고 배웠습니다. 몸만 치료된 게 아니고 성숙하지 못해 마비되었던 제 가슴까지 치료받았어요.”

라는 정담으로 서로 정을 주고받았다.

병원에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지만 병실에 함께 있었던 모든 분들이 그리워진다.

주신 사랑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한다, 고맙다는 말도 아끼지 말아야지 하며 겸손의 기도를 드렸다. ‘김종심! 너 참 복이 많은 사람이었구나.’ 병실에 누워 수없이 감사와 반성하는 마음으로 지냈었다. 내 곁에 고맙고 아름다운 분들이 있어 가능했던 날들이었다. 병실을 자주 찾아와 우리 엄마 잘 부탁합니다.” 하며 사랑스런 내 자식들이 인사하면, 코끝이 찡해져 눈물이 글썽글썽해지곤 했다. 그때 딸아이가 귓속말로 엄마 잘 봐주시라고 뇌물 쓰는 거야.” 하며 웃어준다. 아이들은 쪼금 더 재활을 받아야 한다고 만류했지만 모든 시중 다 들어 준다며 큰 소리 뻥뻥치는 남편의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려왔다. 그리고 닷새 동안 딸집에서 쉬었다.

남편이 아들과 딸을 대동하고 내 집에 들어선다. ! 공기마저 아늑한 우리 집 너무 좋다. 집안 곳곳에 너부러진 주부의 빈자리가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특히 주방과 화장실의 물때가 눈에 들어오지만 집에 왔다는 안도감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아이들이 다음날 까지 머물며 집안을 말끔하게 치웠다.

아내와 엄마로 살아오는 동안 이리저리 뛰느라 나를 위한 시간은 거의 없었다. 요즘 와서 고백하고 싶은 마음은 내가 엄마 역할을 온전히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이 잘 자라 제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아주니 그저 고맙다. 돌아온 다음날부터 남편에게 주호아빠! 이것 좀 도와줘요. 치워요. 주워줘요. 병원에 더 있을 걸 후회가 된다. 모든 시중 다 들어준다던 남편도 지쳐버린 모습이다. 그러나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 말이 다르지 않았다. 의자를 끌어다 두 다리를 올렸다. 몸 상태가 점점 가벼워져 갔다. 강진 보은산 뒷산을 오르내리던 날이 내게도 있었던가 싶게 아련하다.

오랜만에 마트에 가서 갈치를 두 마리 사왔다. 마늘, 대파, 무를 넣고 햇감자 큼지막하게 썰어 넣고 갖은 양념으로 찌개를 끓여냈다. 밥상에 앉은 남편이 젓가락을 들며 한 마디 한다.

오랜만에 도마 소리를 들으니 사람 사는 집 같네.”

남편의 밥그릇이 게눈 감추 듯 비워지는 모습에 덩달아 내 입가에도 잔잔한 미소가 번진다. 잰 걸음으로 가서 냉장고의 시원한 물을 한잔 따라 남편 밥그릇 옆에 두었다. 참 오랜만에 남편의 소중함을 느꼈다.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두 달 전과는 다르게 다가왔다. 건강을 완전히 되찾아 구강포 앞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뵈는 보은산 산책길을 날마다 걷고 싶다. 두 다리에 힘을 주며 일어나 집 앞을 조금 걸었다. 모든 것들이 아름답게 보인다. 나이에서 오는 봄 상태가 격하게 운동할 만큼은 안 되지만 스스로 움직여 혼자 걸을 수 있어 행복한 날들이다. 염려해준 모든 이들에게 이 마음 변치 않기를 다짐해본다. 소중한 내 일상이 귀하고 보배롭다.

엄마 이제는 모든 것 내려놓고 엄마만 생각하며 사세요.”

딸이 당부한다. 헉헉대며 땀 흘려 운동하던 젊은 날이 내게도 있었던가. 이제는 오직 나를 사랑할 때다.

잘 지켜내야지.”

살아있음이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혼자 걸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좋을 수가!

- 참 좋은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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