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뚜기 인생
(재)남미륵사 법흥스님
긴 겨울의 막바지
그날도 오늘처럼 눈발이 흩날렸었지
탐진강 타고 들어온 바닷바람에
언 손 호호 불며
대웅전 가는 길, 철쭉 꽃밭
땅속 깊숙이 박힌 잔돌 고르고 있었지
혹여 라도 지난 가을 이식한
철쭉, 뿌리라도 다칠세라
괭이질, 호미질조차 조심스러워 맨손으로
땅을 파 헤치면서도
이제 막 말갛게 생기 도는 철쭉의 여린 가지엔
눈길 앗기고 말았었지
그 해 겨울은 그렇게 봄을 맞았지
가만 보면 그해 겨울만 그랬던 건 아니었지
남미륵사와 함께한 내 40년은
언제나 흙을 파고 돌을 고르며 철쭉과 함께
새벽을 맞는
변함없는 하루였었지
그렇게 화방산 기슭의 돌밭 황무지가
절이 되고 꽃밭 되어
마침내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올해의 관광지가 되었나니”
삽질 괭이질에 쓰러지고
눈 먼 시기 질투에 고뇌하던 밤도
이젠, 아득한 옛일이 되고 말았지
그래도 간사한 인심은
달콤한 꿀처럼 다가와
비수처럼 아픔을 주고
그조차도 품어 안아야 하는
난, 오늘도 닫힌 마음 억지로 열며
꽃길 위에 서고 말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처럼
오늘도 그날처럼, 허허- 웃음 짓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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