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집 태우지 말라」는 마을 행정방송이 잦아지는 걸 보니 얼추 모내기가 끝나가는 모양이다. 한때 퇴비증산과 더불어 농촌 지력증진의 역할을 하던 보릿집이 앳가심이 되었다. 앳가심이다 못해 민원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언제부턴가 이 시기가 되면 일상화되고 관행처럼 태우는 보릿집 소각으로 농지와 인접한 읍내 주택가에서는 연기 때문에 창문을 열 수 없고 날아드는 보릿대 재 때문에 빨래를 널 수 없어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했다고 하니 꽤 심각한 모양이다. 한때는 2모작 하면 당연히 보리나 밀 재배를 일컬을 정도로 보리는 농·산촌의 겨울 2모작 대표작목이었다. 가을철 벼 수확 후 놀고 있는 땅을 이용해 이듬해 5월에 수확하는 보리를 재배하는 것은 단순 미맥 위주의 농가에선 짭짤한 수입원이기도 했다. 우리 옛 조상들이 힘겹게 넘어야 했던 보릿고개 얘기가 나온 것도 보리였고, 하다못해 2모작으로 보리를 재배할 수 있는 보리끌이냐의 여부에 따라 거래하는 농지 가격도 농지 가격도 달랐었다.
식량증산이 농촌의 지상과제이던 70~80년대만 하더라도 미리 정부에서 보급한 속칭 정부미를 받아먹던 영세농가는 봄철 보리매상을 통해 전년도 정부대여양곡 대금을 갚는 악순환을 반복했던 시절이 있었다. 늦가을 초겨울이면 보리밭 들판이 녹색 물결을 이루었건만 지금은 사료작물이나 쌀귀리가 그 틈새를 메우고 우리 밀은 천연기념물처럼 귀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변화와 반복을 통해 발전하고 나아간다. 지게 바작 짊어지고 장에 갔던 옛 사진은 지금의 30~40대도 지켜보지 못한 역사 속의 한 장면이다. 못자리 만들어 아침저녁 물 대가며 겨우 키워 낸 모를 온 동네 사람들이 품앗이하여 모내기하던 시절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고 지금은 일주일이면 싹을 틔워 기계로 심는다. 농업의 기계화로 하룻밤 사이에 온 들판이 베어지고 메꿔지고 하는 그런 세상이다. 격세지감이다.
보릿대만해도 그렇다. 예전의 왠만한 시골집 마당 한 켠에는 으례이 두엄벼늘이라는 것이 있었다. 지금이야 현지에서 바로 탈곡하지만 기계화 전에는 논밭에서 베어낸 보리를 집으로 가져와 쌓아놓고 모내기 후 탈곡한 후 부산물인 보릿를 한 켠에 쌓아 두었다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면 소 마굿간. 돼지 우리에서 질펀한 고지를 층층이 넣어 사각형의 퇴비더미를 만들고 가장자리에 침출수가 흐르게 하여 물이 고이면 다시 위로 퍼부어 이듬해 보리탈곡 전까지 부숙퇴비로 활용했다. 들판을 가다가 보리밭이 있으면 보릿대로 보리피리 만들어 구성지게 불기도 했다. 소 먹이러 탐진강변에 갔다가 풀어놓고 인근 밀밭 또는 보리 밭에서 한움큼씩 뽑아와 그을려 먹기도 했다. 보리밭 사이에 난 깜부기의 검은 분말로 얼굴에 분칠하고 놀았던 기억도 있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 가면..♬ 으로 시작되는 대중가요 노랫말처럼 보리밭은 낭만과 청춘 남녀의 사랑을 표현하는 곳이기도 했다.
시골에 살면서 지켜보니 농사는 시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내기의 경우 보리수확기와 겹친다. 보릿집 부숙퇴비가 화학비료보다 좋은 줄 알지만 농촌인구 고령화로 그걸 실천할 인력도 없고 퇴비나 유박으로 공급되는 퇴비가 그걸 대신해 주니 굳이 옛날처럼 퇴비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갈아엎어 다시 땅으로 돌려주는 게 최선이지만 볏집과 달리 쉽게 토양과 융화되지 않고 논에 떠다녀 모내기에 지장을 준다. 그러다보니 농가는 보릿대를 태워 재로 만들어 가라앉힌 뒤 모내기시기를 지키려는 궁여지책인 것이다.
무작정 금지만 강요할 수도, 그렇다고 관행을 이유로 제3자에게 피해를 주는데 방관만 할 수도 없는 행정기관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법적으로야 처벌규정이 있다지만 현실적으로 처벌이 이루어지기도 어려운만큼 대안을 찾아 서로가 상생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단순히 환경오염 등을 들먹이며 소각을 금지하는 채찍만으로는 현실적으로 개선이 어렵기 때문이다. 때로는 당근과 보상도 필요하다. 보리 수확시 지금보다 보릿대를 미세하게 자르는 기계를 보급하는 방안도 있을 것이고, 태우지 않고 사료작물처럼 곤포작업하여 농지 밖으로 꺼내는 농가에 한해 일정 보조금을 지원해 주되 그 산물을 과수나 원예농가의 제초방지 깔개용으로 지원공급하는 방법도 생각해봄직하다.
코로나19로 인해 개최되지 못했던 강진군 대표축제인 청자축제와 강진만 갈대축제가 올 가을에는 개최예정이라는 반가운 소식이다. 두 축제가 가을 벼 수확기와 겹치다보니 축제장 인근에서 보리나 사료작물파종을 위해 농업 부산물 태우는 연기로 강진을 찾은 관광객의 원성을 사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변화된 관광패턴에 맞춰 준비하는 거야 두말할 나위 없고 지금부터 볏집태우기로 인한 관광객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현실적으로 전면금지가 어렵다면 군 집행부와 의회가 머리를 맞대고 우선 축제장 인근 몇 키로 이내라도 규제와 당근을 제시하는 차선의 방법을 강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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