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마를 것조차 남지 않아
남녘 땅 쩍쩍 갈라놓던 가뭄보다 더 메말랐던
나는, 철쭉이 지고 나면
부처님 전 면목 없을 생각으로
천지를 밝히던 햇살, 원망만 하였더니
그냥 웃어나 주고 말걸.
내내 가슴 조이던 그날 밤,
반도의 끝자락, 용왕의 분노인 양
청해(淸海)를 뒤엎던 폭풍우를 다시 만나야 했던
나는, 미륵의 용화세계.
한여름 펼쳐진 연화장 세상만 고대하며
이른 여름, 폭염마저 재촉하였더니
그냥 웃어나 주고 말걸.
오고 가는 그 모든 것 허상이라 하였는데
미륵세상 기다리며
물물(物物)마다 새긴 마음.
연잎에 알알이 맺힌 새벽
해 솟으면 스러질 영롱한 꿈 아쉬어
동녘을 멀리 하였더니
그냥 웃어나 주고 말걸.
지름길로 달려온 풍문이
관음전 풍경에 매달려
찬탄과 환희, 시기, 질투, 비아냥…
세상의 소리로 울릴 때마다
미륵의 뒤로 몸을 감추곤
울어야 했던 그 많은 날들
그냥 웃어나 주고 말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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