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동문 밖 주막집에서 서당을 차려놓고 ‘사의재’라 명명했다. 서당을 차리자 아전 자식들이 찾아와 글공부를 시작했는데, 황상과 같은 제자가 있어 큰 위안을 얻으며 지냈다.
그러나 우이도(牛耳島)로 귀양 간 약전 둘째 형님을 늘 그리워하며 지냈다. 나주 율정(栗亭)에서 두 형제가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며 헤어졌던 약전 형님이었다. 1913년 9월 9일, 다산은 보은산 중턱에 있는 고성사를 찾아간 일이 있었다. 그 때 고성사 스님으로부터 보은산(寶恩山)이 우두산(牛頭山)이라고도 부르고 솟은 두 귀를 형제봉(兄弟峯)이라고도 부른다는 말에 다산은 눈물을 글썽거렸다. 형제봉에 올라와서 우이도에 있는 형님을 그리워하니 이 또한 묘한 인연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다산은 능 약전 형님을 그리워하며 우이도로 오가는 배편에 편지를 써서 보내곤 했다. 그러나 인편을 얻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늘 애태우고 조바심을 일으키곤 했다. 더구나 학문적으로 성취감을 얻으면 소책자를 만들어 보냈는데, 약전 형님이 수정과 보완을 해주며 인가를 받으면 그지없이 기뻐했다.
그런 다산의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다 못한 황상이 어느 날 우이도로 가겠다고 떼를 썼다. 약전 선생을 모시고 삼동(三冬)을 나고 오겠다는 것이었는데, 약전 선생의 건강도 챙겨드릴 겸 공부도 하고 오겠다는 뜻이었다.
다산은 1806년 3월 10일 약전 형님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중순 쯤 답장이 왔다.
--황상의 나이가 올해로 몇이던가? 월출산 아래서 이 같은 문장이 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네. 어진 이의 이로움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겠는가? 그가 내게로 오려는 마음은 내 마음을 상쾌하게 하네만, 뭍사람은 섬사람과 달라 크게 긴요한 일 아니고는 경솔하게 큰 바다를 건널 수가 없을 것이네. 인생에서 귀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일세. 어찌 꼭 얼굴을 대면해야만 한단 말인가? 옛 어진 이 같은 경우도 반드시 얼굴을 본 뒤라야 이를 아끼겠는가? 이 말을 전해 주어 뜻을 저버리는 것이 좋을 듯 싶으네.
모름지기 이 사람을 더욱 열심히 가르쳐서 그로 하여금 재주를 이루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인재가 드물어 지금 세상에서는 이 같은 사람을 기대하기 어려우니 결단코 아끼고 보살펴주어야 할 것이네. 안타깝게도 그 신분이 미천하니 이름이 난 뒤에 세도 있는 집안에 핍박을 당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가 되네. 사람됨은 어떤가? 재주 많은 자는 반드시 삼가고 두려움이 없는데, 그가 지은 글을 보니 경박하고 안일한 태도가 조금도 엿보이지 않네. 그가 어떤 사람인 줄 알 수 있을 것 같네. 부디 스스로를 감추고 무겁게 하여 대인군자가 될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권면해 주시게나. --(중략)--
황상에 대한 칭찬으로 가득 찬 내용이다. ‘월출산 아래서 이 같은 문장이 나오다니’란 말은 최고의 칭찬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다산의 사의재 서당은 황상 같은 인물을 키워냈다. 황상은 그런 다산 밑에서 글공부를 하면서 ‘월출산 아래서 이 같은 문장이 나오다니’란 말을 약전으로 들을 만큼 성장했다. 사의재 서당은 바로 그런 서당이었다. 나중 추사가 제주도에서 귀양에 풀려 육지로 건너왔을 때 황상이 살던 ‘일속산방(대구면 항동)’까지 찾아갈 정도로 명문장의 시인이 되었으니 사의재 서당이말로 강진의 큰 인물을 키운 장소가 아닐 수 없다. /송하훈 기자
이 뉴스클리핑은 http://goeul.kr에서 발췌된 내용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