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生涯) 마지막 승부(勝負) (3)
아직 끝나지 않은 나의 여행 (旅行) 길
내가 살아있는 한 인생살이 나의 작은 공간에서 세상을 전부 관조(觀照) 해 보면서 글속에 생각들과 살아 온 경험들을 끄집어 내 채색(彩色)하여 그 고운 색깔로 그려 보고픈 심정으로 남들이 잠에 깊이 취해 있을 즈음 아주 적막한 홀로의 여행을 떠나다 보면, 글발이 떠오릅니다. 그래서 내 몸이 허락하는 한 이곳 강진 보은산 아래 집 텃밭에 파묻혀 조용히 글을 쓰렵니다.
그것은 집에서 500미터 거리의 ‘정약용’ 선생이 처음 귀양(歸鄕)와서 머물며 4년간 글을 쓰신 ‘사의재’ 곁에 내가 살기에 그 정신을 본받아 이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일 것입니다.
인간살이가 꼭 정답이 있는 게 아니듯 사는 날까지 사람답게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내 숙명적(宿命的) 사실로 정착(定着)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내가 글 쓰는 직업인이 아니라 그저 글쓰기가 좋아서입니다.
본래 수필이란 ‘마음의 산책(散策)’이기 때문에 글을 써가는 느낌의 향취(香臭)와 여운(餘韻)(lingering effect)이 깊이 숨어 있어야겠지요. 마치 우리 강진의 자랑 ‘고려청자’의 감동인 비취빛 애머랄드 빛깔이 하늘에 떠있는 학(鶴)의 모습으로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그 속에 숨어있는 멋진 말들을 찾아내어 나와 자연(自然) 그리고 생활 태도를 깊이 운율(韻律)해 보면서 세상을 관찰하고, 살아가는 사회현실에 대한 발견일 것입니다. 마치 글이 질서 있게 글 마디마디를 나의 손끝에서 ‘누에가 입에서 나오는 액에 고치를 만들어 내듯’ 문맥이 쓰여 지도록 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하겠지요.
그러므로 수필의 재료(材料)는 우리 일상의 생활 경험과 자연관찰 또는 현실에 대한 새로운 발견 등 나의 독창적이고 독특한 개성의 무드를 만들어 내는 것이 멋있는 수필작가들의 사명입니다. 수필은 아무나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필의 행로(行路)는 칼로 짜르듯 하기보다 자신이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이 참 멋있는 길이고 거기에서 여행의 향내가 방향(芳香)으로 흘러나오겠지요. 곁들어 솔직하게 나타내는 문학형식이 되어 독자들에게 친밀감을 주고, 같은 동행길이 되어 친구삼아 길 떠나는 연꽃잎 같은 품격의 익살을 부려보는 유머도 곁들어야 함이 더 운치(韻致)가 있습니다.
지나간 엄청난 ‘볼라벤’ 태풍을 두 번이나 겪으면서 산천이 부서지고 바다가 뒤집히는 속에 자연은 그래도 아픔을 참고 말없이 한더위를 지나고 나니 푸른 하늘이 마치 언제 그랬더라는 듯 푸른 물감으로 금방이라도 뚝뚝 떨어질 듯이 맑고 푸른 드높은 늦 가을날을 쪽박으로 한 모금 떠 마시고 싶은 심정입니다. 짙어가는 가을에 서면 어딘지 쓸쓸하고 한결 마음이 고독을 달래면서 성숙해지는 결실의 계절이지만, 청 단풍 짙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계곡 산비탈 숲속에 깊숙이 햇살이 물들어 불타고 있는 시월의 온 산천이 싱그럽기 짝이 없네요.
난 이런 때 으레 집사람을 데리고 강진에 처음 와 칠량면 영복리 한림마을에 둥지를 틀고 한 2년을 사는 동안을 못 잊어 해마다 그곳을 찾아 논뚝 방파제 기슭에 흠뻑 빠져 있을 때 갯벌 저편에 철따라 그 먼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기러기 떼와 고니, 원앙들이 춤추듯 깃털을 갈고 파다 닥 뛰노는 갯가 자연 경관에 흠뻑 반해 온종일 아내와 뚝 길에 앉아 시간 가는지도 모르고 있다 보니 어느덧 해는 석양으로 뉘엿뉘엿 하루의 일과를 다 마치고 바다 속으로 빠지고 있습니다. 소학(小學)에 다음의 글이 떠오릅니다. 나이는 시간과 함께 달려가고, 뜻은 세월과 더불어 사라져간다, 드디어 말라 떨어진 뒤에 궁한 집속에 슬피 탄식한들 어찌 되돌릴 수 있으랴. 그러기에 인생이란 배를 타고 가는 동안 조금씩 먹어 들어가는 나이를 거절할 수 없고, 흐르는 시간을 멈추게 할 수도 없는 게지요.
언젠가 뿔뿔이 만나지 못할 곳으로 멀어져가는 그런 만남의 인연들을 우리는 사는 동안 진정으로 사랑하며 고이 간직하는 아름다운 기억으로 심어질 수 있는 ‘잊을 수 없는 사람’이 모두가 되어 지기를 바랄뿐입니다. 그것은 지나온 추억들이 내 삶에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그런 값진 만남들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보석처럼 자신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숨 쉬게 될 것입니다.
꽃의 향기는 십리를 간다지만, 남에게 베품의 향기는 천리를 간다고 하지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당신의 오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서로 아껴주며 나누며 살아가는 향기 나는 삶의 냄새가 옛정을 못 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험한 세파에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가 더불어 살아가는 베품의 길이기에 우리가 산다는 것은 변화 그 자체인지도 모릅니다.
계절이 바뀌고 있듯이 우리 삶도, 인생도 변하고 달라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전생의 기억이야 없지만, 인연(因緣)사상은 깊은 의미를 간직합니다. 이승에 사는 동안 서로 좋은 모습을 남겨야 하겠지요. 세상에서 가장 값진 것은 나눌 줄 아는 넉넉한 마음입니다. 믿음과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마음 안에 행복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어차피 우리 인간은 외로움을 짊어지고 가야할 운명이기에 삶이 힘들고 버거워 지칠 때 그래도 나를 사랑해 준 이가 있었다는 것이 큰 힘이 됩니다. 먼저 마음이 아름다울 때 좋은 사람도 만나는 것이듯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지요. 결국 남을 행복하게 하면 내가 행복하게 되고, 내가 행복할 때 남도 행복해 질 것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여행길에 참된 동반자가 되어지기를 바랄뿐입니다. 아름다운 인생이란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그런 당신의 지조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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