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14
김현임(수필가)
간담상조(肝膽相照)
일주일 내내 한유라는 시인의 흔적에 매달렸다. 그들과 간과 쓸개를 다 내보일 정도의 우정을 나누었을까. 내킨 김에 그와 절친했다는 가도와 맹교, 유종원까지 두루 살피면서 한 권의 책으로, 상여글이라는 만사(輓詞)로 남은 그들의 행적을 훑는다. 여행지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 것은 서로 옷깃 닿은 만남과 빼어난 경치라던가. 기억 속에 저장된 풍광과 인연도 어느 덧 아득해져 짧은 기시감(旣視感)으로 스치는 순간을 맞게 될지 모른다.
한유(韓愈)도 그렇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그의 생모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분명한 단서를 잡지 못한다했다. 그는 글에서 늘 ‘창려(昌黎) 한유(韓愈)’라고 적었으나 창려 한씨는 당나라 때 한씨 일파 가운데 가장 번성하였기 때문에, 한유가 자기를 창려 한씨인 것처럼 썼을 뿐이지 사실은 아무런 관계가 없단다. 생후 얼마 되지 않아서 생모가, 그리고 세 살 때 아버지가 죽었으니 척박하기 그지없는 삶이었을 터, 한유를 폄하하는 측에 따르자면 그가 불우한 시절에는 개혁에 대한 열망도 높았지만 중년 이후 조정에 서 지위를 확보하게 되자 보수 쪽으로 돌아선 변절자였다는 것, 이는 일본이나 대륙의 학자들도 동조하는 이야기란다. 한유와 여색(女色), 죽음에 관련된 이야기로 한유가 남의 비문 같은 것을 후한 사례를 받고 많이 지어 주어 말년에는 매우 부유하게 살았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는 아름다운 첩이 둘씩이나 있었다는 꽤 근거 있는 이야기가 이를 뒷받침한다. 또한 어떤 사람이 오래 살려고 단약(丹藥)을 복용하다가 도리어 화를 입은 사실을 매우 못마땅해 하는 글을 쓴 한유가 그 단약을 복용, 잘못되어 죽었다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유는 성인이다’라는 관점의 전기를 쓴 대만 학자도 있다. 그가 매우 선동가적 기질이며 다방면에 걸친 호사가적 취미를 지녀 구호와 행동이 일치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되지만 중국사상사나 산문, 그리고 시의 역사에서 수행한 역할은 대단해 고문의 새 역사를 여는데 큰 공헌을 하였다는 주장이다.
그가 남긴 시 중 당나라 수도의 남쪽에 있는 종남산을 묘사한 204구의 장편시 ‘남산시’를 천천히 읽는다. ‘더러는... 같고(若)’와 ‘만약에(或)’라는 표현이 백 행도 넘게 이어진다. 오롯이 자신을 지탱해 줄, 자기의 온 존재를 걸 수 있는 목표를 찾아 끊임없이 헤매었을, 하여 누구보다도 혹과 약이 교차하는 인생 여정을 거쳤을 한유다운 표현이 아닐까. 한 가지 사물을 놓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모저모 따져가며 묘사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또 시를 가지고 장난하기 좋아하였던 그의 기질과 의식적으로 궁벽하고 기이한 표현을 서슴치 않는, 일운도저(一韻到底) 격의 시를 짓는 것을 즐겼던 한유의 독특한 취향을 드러낸 것이라 평한다.
한유와 묶여서 거론되는 중당 때의 또 한 사람의 시인, 유종원(柳宗元)이 다. 그는 대대로 벼슬을 지내던 선비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도, 누이도 모두 일찍 잃고 결혼 생활에서도 자식에게서도 낙을 찾기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던 유종원.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정치적인 좌절과 더불어 그로 하여금 문학적 성취를 더욱 높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귀양지인 영주에서 십 년, 드디어 조정의 부름이 떨어졌을 때다. 절친한 친구 유우석도 유종원과 마찬가지로 조정의 소한을 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욱 더 먼 곳으로 가라는 명령에 크게 실망한다. 그 와중에도 노모를 모시는 유우석이 자신보다 더 먼 곳으로 가는 것을 걱정한 유종원은 유우석과 임지를 맞바꾸어 줄 것을 간청한다. 그 결과 유우석의 임지는 좀 더 가까운 곳으로 변경됐다. 유종원은 죽은 후에도 믿기 어려운 일화를 남긴다. 자신은 죽은 후 귀신이 될 것이니 삼년 후에는 나지(羅池)에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내 달라했다. 죽은 지 정확히 삼년 후, 구양익이란 사람에게 나타난 유종원은 사당건립을 부탁했다. 만취해 사당을 모욕하던 사람은 곧 죽고 말았다 전하는 유종원의 사당, 한유는 ‘나지묘비(羅池廟碑)’를 지어 이런 사실을 상세히 기록해 두었다.
평생 문학적 동지였던 한유와 유종원, 그들의 고문(古文)은 둘의 성씨를 따 한유(韓柳)라고 일컬어질 만큼 큰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장안에서 잠시 같은 직책을 지니고 있었을 뿐, 한유가 직책을 옮길 적에 잠시 만난 외에는 실제로 한 번도 얼굴 맞댄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글을 주고받거나 간접적으로 남을 통해 상대의 글을 보며 고문창작과 전파에 힘썼다. 한 차례 휘몰아치는 태풍(颱風一過)같지 않은 생이 있으랴. 그 길목에서 간담상조, 즉 간과 쓸개를 모두 내보이며 지낼 수 있는 벗이야말로 큰 선물이며 축복이다. 한유는 시류에 타협한 경박한 교제를 경멸했다. 모진 풍파를 거치면서 어느덧 참된 우정과 그렇지 못한 것을 구별하는 능력을 지니게 된 걸까. 유자후묘비명(柳子厚墓碑銘)에서 유종원이 유우석에게 보인 우정의 두터움을 찬양하며 등장시킨 말이 간담상조다.
‘아, 사람이란 난처함에 처했을 때 비로소 절의가 나타나는 법, 안일할 때에는 서로 그리워해 술자리에 부르고 큰소리도 치고 웃음을 나누며 손을 잡고 간(肝)과 폐(肺)를 내보이며(肝膽相照의 出典으로 서로 격의 없이 친하게 지낸다는 뜻)저 빛나는 태양을 가리켜 눈물로 우정을 맹세한다. 그러나 일단 머리카락만큼의 이해가 얽히면 눈을 부라리며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 한다. 함정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상대를 밀어 더 깊이 떨어뜨리고 위에서 돌을 던지는 시늉까지 서슴치 않는 것이다.’
친절한 이웃주민들은 나의 과거나 현재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는지, 왜 외출을 안 하는지, 내 가족이나 친구는 있는지 없는지 관심도 없고 헛소문도 만들지 않는다며 요즘세태에 어울리는 바람직한 이웃이라 말한다. 벗을 위해 제 목숨마저 내놓는다는 문경지교(刎頸之交), 서로가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한 수어지교(水魚之交) 등등, 아름다운 교제에 관한 고사성어는 차고 넘친다. 유종원과 유우석에 얽힌 간담상조 역시 시시콜콜 간섭하지 않는 대신 타인을 향해 눈길도 주지 않는 이 냉혹한 시대에 더욱 돋보이는 우정의 전범(典範)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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