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탐진만 햇발 "강강수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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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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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만 햇발 "강강수월래"

탐진만 햇발

강강수월래

김현임(수필가.모란촌문학동인회원)

두둥실 달뜨는 대보름날이면 꼭 한 번 다시 해 보고 싶은 것이 있다. 햇 볏짚 그득 융단처럼 포근히 깔린 구루마를 타고 흔들흔들 한적한 시골길을 지나 그 마을을 가는 일이다. 마치 幻(환)처럼 행복해지는 이 장면의 기억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 한동안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라는 프랑스 동화가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고아 소년 라스무스와 늙은 떠돌이 오스칼의 아름다운 우정, 거기엔 볏짚 속에서 하룻밤 지새우는 장면이 나왔다. 딱히 그 여파 때문인가. 근원을 향해 자꾸 고개를 갸웃거리는 날이 잦다.

맞다. 열 두어 살의 추석 무렵 직공이던 종범이의 집에 놀러갔다. 나이는 나보다 훨씬 위인 스무 살 남짓이었지만 당시 공장사장이던 아버지가 종범이, 종범이 하고 부르니 일곱 살 우리 막내 동생까지 아무 가책 없이 종범이라 호칭했다. 어쨌든 그날, 그 기억이 이리 매웁게 박혔는지 몰랐다. 향긋한 볏짚 내음과 함께 그날의 휘영청 늘어진 달빛, 또각또각 제 발자국 세듯 뜸숙히 걷던 소의 발걸음 소리가 마흔 해 넘게 흐른 지금까지 선명히 들린다.

요 며칠 전 나는 오래된 그 기억을 깨우는 정경과 소리에 또 한 번 놀랐다. 무대에 앉아서 북과 장구, 소고를 연주하니 전문 농악패라 하기에는 뭐하고, 아무튼 어느 분의 회장 취임 축하의례를 치루기 전 식전 공연삼아 하는 전통악기 연주였다. 아무 생각 없이 연주자들의 손놀림을 바라보다가 내 눈은 번쩍 뜨였다. 딱 소리 나게 악기를 세게 내리치고 나면 반드시 가엾고 미안하다는 듯 보드라운 손길로 악기를 어루만져 쓰다듬고, 그런가 하면 이 손, 저 손 양쪽을 오가며 엇바꿔 반복되는 손사래 짓이 내겐 예사롭잖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참 나, 어째서 툭! 눈물까지 났는지. 우리 것에 대한 까닭 모를 향수와 뒤늦은 자긍심만은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가혹히 다뤄놓고 가만히 쓰다듬는 따뜻한 손길, 분명 우리 생에는 그런 위무의 손길과 순간이 있었다.

그 밤, 너른 오이밭 펼쳐진 종범이네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집단 마스게임은 황홀했다. 달빛 쏟아지는 강변 모래사장 위에서 벌어지는 여인들의 원무에 도회 계집애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프리카 오지, 너무도 고요롭고 순박한 정경을 찍고 온 유명 사진사가 그랬다. 댄디즘에 빠진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의 삶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이 세상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엔 그것이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힘이 있음을, 그 힘의 자유를 비로소 그곳에서 느꼈다고 했다.

그날 처음 대면한 강강수월래는 너무나 평범하고 볼품없는 촌 아낙네들이 만든 놀라운 기적이었다. 강강수월래! 목청 좋은 한 여자가 한 가운데서 선창을 하면 모두가 한데 뒷소리로 화답했다. 수십 명이 함께 어우러져 한 목소리를 내는 이 후렴구의 힘은 뭐랄까. 하늘에 닿는 간절한 염원의 소리이기도 했다. 장롱 깊숙이 간직했던 색 색의 치마, 저고리를 꺼내 입고 빙빙 도는 동네 아낙네들의 모습은 영롱한 달빛과 함께 한 폭의 장엄한 그림이었다.

주로 8월 한가위 서남해안 부녀자들이 하던 민속놀이인 강강수월래의 유래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우선은 임진왜란 때 수군통제사인 이순신 장군의 임시변통 군사작전설이다. 수군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면서 적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사가 많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부녀자들로 하여금 이 놀이를 하게 한 데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그러나 이 설에 대해서는 학계의 반론이 많다. 또 다른 하나는 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사 의식이나 마한 때부터 내려오는 달맞이의 수확 의례 중 농경적인 집단춤이 아닌가의 추측설이다. 분포지역이 주로 서남해 해안지역인 점에서 남자들은 오랫동안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여성들이 마을에 남아 있으면서 달밤이면 풍농과 만선을 기원하는 공동굿, 즉 제의 형식으로 발달되었단 설도 있다.

어원 역시 마찬가지다. 강강수월래는 ‘강한 오랑캐가 강을 건너온다’는 뜻의 한자어 强羌水越來(강강수월래)에서 온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본래 순수한 우리말이라는 설에 더 무게가 실린다. 강강은 둥근 원이란 전라도의 방언, 술래는 巡邏(순라)에서 온 말이란 설이 임진왜란 기원설과 맥을 같이 한다. 술래는 수레(輪)의 옛말 ‘술위’에서 왔으니 ‘둥글게 둥글게 돌자’라는 뜻을 갖는다. 또한 강강은 아무런 뜻 없이 전통악기인 징이나 꽹과리를 칠 때나는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라는 설도, 그조차도 아닌 아무 의미 없는 그냥 그대로의 추임새라는 설도 있다.

간단하면서도 흥이 넘치니 여럿이 모여 하는 공동체 놀이로는 그만이다. 노래의 템포가 빨라지면 원무도 따라서 빨라지고 어느새 춤은 절정에 이른다. 본격적인 강강술래는 원무가 중심이 되어 늦은 강강술래, 중강 강강술래, 잦은 강강술래로 구성돼 있으며 부수적인 놀이로 지역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사이사이에 ‘남생아 놀아라’, ‘고사리 꺾기’, ‘덕석몰기’, ‘지와 밟기’, ‘꼬리 따기’, ‘문 열어라’, ‘개고리 타령’ 등 부수적인 춤들이 번갈아가면서 행해진다.

‘음악은 고통스런 세계에서 구원으로 나가는 문’이라 했다. 또한 ‘음악은 나약한 인간을 초인의 단계까지 이를 수 있게 하는 통로다’라고도 했다. 흡사 빠른 템포의 프레스토 악보에 충실하듯 함께 뛰고 손잡아 흔들고 위로 모아 올리는가 하면 아래로 수그려 축 내려뜨리는 자못 부잡스런 기교도 부린다. 선창하는 여인은 온갖 사설로 여인들의 가슴에피로 쌓인 말들을 후련히 뱉아 내 그네들의 답답함을 풀어준다. 가슴에 옹이 진 여인들의 묵은 한은 이 집단 가무를 통해 서서히 치유되는 것이다. 이렇듯 지친 심정을 어루만지고 삶의 위무로 가득한, 우리 민족 정서가 고스란히 담겨진 구수하고 친근한 부녀자 놀이가 또 있을까. 놀이 겸 우리 모두 한 생명체라는 걸 재확인하는 儀式(의식)이다.

 

강앙강앙술래 강앙강앙술래

달 떠 온다 달 떠 온다 강앙강앙술래

동해동창 달 떠 온다 강앙강앙술래

저 달이 뉘 달인가, 강앙강앙술래

강호방네 달이라고 강앙강앙술래

강호방은 어디가고 강앙강앙술래

저 달 뜬 줄 모른단가 강앙강앙술래

저 건너 큰 산 밑에 강앙강앙술래

동백 따는 저 큰 아가 강앙강앙술래

앞 돌아라 인물보자 강앙강앙술래

뒷 돌아라 태도 보자 강앙강앙술래

인물 태도는 좋다마는 강앙강앙술래

눈 주자니 너 모르고 강앙강앙술래

손 치자니 넘이 알고 강앙강앙술래

우리 둘이 일하다가 강앙강앙술래

해가 자면 어쩔거나 강앙강앙술래

 

이 가을 출처 없이 내 코끝에 걸리던 아련한 볏짚 향내는 한바탕 신명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호되게 후려 맞은 삶의 주눅, 그것이 빚은 벼랑과 파국이 두렵지 않을 만큼 지독하던 권태도 저 멀리 달아났다. 쏟아지는 달빛 아래 벌어지던 강강술래의 회상만으로 얻은 뜻밖의 원기충전, 그날 한 켠에서 타오르던 볏짚 내음 물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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