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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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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 하는 인문학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
베토벤이 현악 4중주에 깊이 몰입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50대 초반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약 5년간이다

고난과 투쟁으로 표상되는 삶을 살았던 베토벤은 생애 마지막 곡에서 역설적으로 유머를 보여준다.

 

베토벤은 1770년 독일의 boon()에서 태어났다. 베토벤의 집안은 원래 장사를 주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독일로 이주하여 조부 때부터 궁정악단의 악장까지 한 음악가 집안이다.

베토벤의 부친 요한은 궁정악단의 테너 가수였다. 일찍부터 베토벤의 음악적 재능을 발견하고 제2의 모차르트로 키우기 위해 4살 때부터 과중한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밤중에 술 취해 돌아와, 자고 있는 베토벤을 깨워서 날이 새도록 피아노를 가르치며 아이를 못살게 굴고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어린 베토벤을 지하실에 가두곤 했다.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보면 그의 대표하는 장르로는 9개의 교향곡이다. 또 낭만 시대의 지휘자 한스 폰 뷜로 Hans Guido Freiherr von Bolow(1830~1894)에 의해 '피아노의 신약성서'라고까지 일컬어졌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를 꼽을 수 있겠다.

이와 함께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장르가 현악 4중주이다. 베토벤은 모두 16곡의 현악 4중주를 남겼다. 16곡 외에 단일 악장으로 출판된 현악 4중주를 위한 대푸가 B플랫장조>도 현악 4중주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겠다.

그런데 베토벤의 현악 4중주는 사실 쉽게 접근하기가 용이하지 않다. 듣는 이에게 음악적 쾌감을 전해주는 감각적인 장면들이 별로 없거니와, 짜릿한 테크닉을 구사해 강렬한 인상을 새겨주는 대목도 별로 없는 까닭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 말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게다가 베토벤의 후기 걸작으로 손꼽히는 현악 4중주 다섯 곡은 '심오한 명상'이라는 평가가 말해주듯이 작품의 내면적 스케일이 매우 크고 깊다. 그러다 보니 음악이 왠지 낯설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변화무쌍한 속도의 세상, 모든 것에 순식간에 반응해야 하는 풍조 속에서는 더욱 그렇다. 너무 깊어 버리는 것은 현대인들에 게는 관심에서 밀려난 현상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쉽고 간편한 생활패턴인데 깊게 들여다 보고 생각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싫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악 4중주는 베토벤의 음악에서 매우 중요하다. 흔히 전기·중기·후기로 분류되는 베토벤의 음악적 생애를 유난히 잘 드러내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물론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 정리된 이런 식의 시대 구분은 때때로 '이론화'의 오류를 낳을 수도 있다.

시간적 연속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의 생애를 셋으로 쪼갠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불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악 4중주만큼은 이런 식의 시기 구분이 적확하게 들어맞는 측면이 많다.

베토벤은 작품번호 18에 속하는 현악 4중주 여섯 곡을 1798~1800년에 썼다. 라주모프스키Andrey Razumovsky(1752~1836) 백작(훗날 공작)의 의뢰를 받아 작곡한 세 곡을 중심으로 한 중기의 다섯 곡은 1806~1810년에, 만년의 걸작으로 칭송받는 후기의 다섯 곡은 1822~1826년에 작곡했다.

  

그중에서도 후기의 다섯 곡은 말년의 베토벤이 오로지 집중했던 음악들이다. 그중 첫 곡인 12E플랫 장조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22년으로 알려져 있다.

 

현악 4중주는 유희적 장르에 속함

 

이러한 작품에 대한 평가는 슬픈 동기나 웅장한 구성 없이 여성스럽고 신선한 느낌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데,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실제 이 작품의 악장은 대부분 음량이 크고 감정이 격렬해 "남성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느린 악장에서도 베토벤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매우 강한 섹션이 있다. 따라서 이 곡은 노래처럼 "아름다운 것""열광적인 것", 이 두 가지 요소가 충동적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기의 작품으로 분류되는 11번 단조로부터 10년이 넘게 세월이 흐른 뒤였다. 하지만 베토벤은 12번의 작곡에 일사분란하게 매진할 수 없었다. 중요한 다른 숙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베토벤은 "내 생애 최고의 작품"으로 자부했던 장엄미사>의 작곡에,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향곡 9'합창'의 마무리에 여념이 없었다. 장엄미사18244월에, 교향곡 9'합창'을 같은 해 5월에 초연하고 나서야 현악 4중주를 위해 다시 펜을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이 무렵에 러시아의 니콜라스 갈리친 Nikolaus Galtzin(1794~1866) 후작으로

부터 현악 4중주를 작곡해 달라는 의뢰가 들어왔다. 말하자면 현악 4중주 작곡에 매진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던 셈이다.

애초에 현악 4중주는 유희적 장르에 속했다. 하이든과 모차르트 초기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베토벤의 두 선배는 현악 4중주를 점차 진지하고 순수한 실내악으로 자리매김했고, 베토벤의 시기에 이르게 되면 그 진지함은 한층 고조되었다.

특히 베토벤 말년의 현악 4중주에서는 장난치는 듯한 유희성을 찾아보려고 해도 찾아볼 수가 없다. 작곡가의 진지한 내면 고백, 아울러 가장 순수한 형태의 기악 음악이라는 특징이 한층 커진다.

베토벤이 현악 4중주에 깊이 몰입했던 시기는 그의 나이 50대 초반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의 약 5년간이다. 유혹적인 리듬과 선율, 혹은 테크닉의 과시 같은 요소들은 이 시절의 베토벤 음악과 무관하다. 중기 시절의 작품에 빈번히 등장했던 강력한 추진력은 사라지고. 그 대신 무엇인가를 스르르 놓아버리는 듯한 모호함이 자리를 잡는다.

 

토마스 만의 소설 파우스트 박사에 등장하는 문장을 인용하자면 “(베토벤의 말년작들은) 절대적 고독 속에 자리 잡은, 완전한 개인적 자아의 영역으로 들어섰던것이다. 영화<마지막 사중주> 덕택에 베토벤의 현악 4중주 14c샤프단조를 듣는 분들이 많이 늘어났다고 본다. 현악 4중주 14번은 7개 악장을 쉬지 않고 약 40분간 연주하는 곡이다. 18267월에 작곡을 시작해 10월에 완성한 곡이다. 연주 시간 약 25분이다.. 베토벤이 남긴 현악 4중주의 마지막 곡인 동시에, 지상에서 57년을 머물다 간 그의 생애에서도 최후의 작품으로 자리해 있다. 물론 베토벤은 이 곡을 작곡한 직후에, 초연 당시 반응이 좋지 않았던 현악 4중주 13op.130’의 마지막 악장을 더 쓰기는 했습니다만, 한 곡의 온전한 작품으로 생애의 방점을 찍은 곡은 ‘16F장조 op.135’였다.

잠간 토마스만의 소설 '파우스트를 언급해 본다. 토마스 만은 이 작품에 가장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그만큼 작가의 노고가 많이 묻어있는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토마스 만이 누군가? 현대 독일 작가 중 토마스 만 보다 더 위에 이름을 올릴만한 작가를 찾기란 어렵다.

그만큼 이 책은 단순히 읽힐 책이 아니다. 역자도 이 책을 처음엔 줄거리 중심으로 읽되, 두번째 부터는 작가가 의도한 인물과 사건이 의미하는 바에 대해 디테일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에 들어 있는 것은 독일 그 자체다. 근대 철학, 수학, 문학, 음악을 꽃 피우고, 두 번의 전범국으로 낙인찍힌 바로 그 독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인간 중심의 철학과, 이성에 의한 진리 탐구라는 현대 과학의 주춧돌을 쌓았던 독일이 왜 그렇게도 비인간적인 전쟁 범죄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괴테의 '파우스트'가 이 소설의 전범이며, 아드리안 레베퀸이라는 가상의 작곡가의 일생을 소설에 담아내었다. 레베퀸의 어릴적 친구이자 화자는 레베퀸의 행적을 통해 독일 근대사의 영광과 비극을 은은히 드러낸다.

레베퀸은 원래 신학도였으나, 신학을 그만두고 수학과 철학에 심취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작곡가의 길을 걷는다. 그의 작품들은 천재적 영감으로 번뜩였으며, 그의 마지막 작품인 '파우스트 박사의 비탄'에서 악마와의 거래를 통해 사랑을 금지당하고, 살인을 방관하는 스스로를 작품화한다. 자신의 마지막 연주회에서 지인들에게 자신의 창의성은 악마와의 계약에 의한 것이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악마와의 내기에서 파우스트가 패배하지만, 결국 신의 구원을 받는 것과는 달리, 레베퀸은 악마와의 계약의 단초가 된 매독균이 뇌를 완전히 침범하는 치매 증상으로 완전히 몰락하고 만다. 레베퀸에게는 어떠한 구원의 가능성도 없다. 레베퀸의 몰락은 독일의 몰락과 겹쳐지며, 화자가 레베퀸의 일생을 원고로 정리하는 중인 2차대전 말, 연합군에 의해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독일의 모습과도 대비된다.

 

고난과 투쟁으로 표상되는 삶을 살았던 베토벤

베토벤이 마지막 곡을 쓸 무렵, 베토벤이 처해 있던 상황은 매우 나빴다. 일단 건강이 좋지 않았다. 우리는 이 지점에서 베토벤이 독신으로 살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가족의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필요가 있겠다. 게다가 평생 겪어야 했던 창작의 고통은 얼마나 극심했을 것이다. 그는 작품에 한 번 몰입하면 주변을 거의 의식하지 못할 만큼 에너지를 쏟았을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불같은 성격을 드러내기 일쑤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게다가 그의 나이는 우리 나이로 환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의 평균 수명을 감안 한다면, 베토벤의 육신은 앙상한 낙엽처럼 쇠잔해진 상태였을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조카 칼이 속을 태웠습니다. 베토벤은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의 아들이었던 칼에게 매우 집착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동생의 아내와 칼의 양육권을 놓고 법정 투쟁까지 벌여가면서 결국 이겼지만, 어머니와 강제로 헤어지고 완고한 큰아버지의 잔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했던 칼은 18267월에 급기야 권총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죽지는 않았다. 그렇게 소동을 벌인 칼은 거의 두 달간을 병원에서 보냈다. 베토벤은 퇴원한 조카를 데리고 그나이센도르프에 있는 또 다른 동생 요한의 집에 머물면서 마지막 현악 4중주를 완성했다. 아마 그는 이 시기에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베토벤은 121일 칼을 데리고 빈으로 돌아오던 길에 감기에 걸렸는데 그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폐렴에 걸렸던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면역력이 급격하게 떨어진 사람에게 폐렴은 치명적이다. 알려져 잇듯이 이듬해 326, 베토벤은 결국 세상을 떠나고 만다. 베토벤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한 줄기 햇살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어찌 보자면 이 곡은 모차르트적이다.

고난과 투쟁으로 표상되는 삶을 살았던 베토벤은 생애 마지막 곡에서 역설적으로 유머를 보여준다. 앞서도 말했듯이 베토벤은 후기의 현악 4중주들에서 매우 성찰적이고 명상적인, 아울러 웅대한 정신적 깊이와 넓이를 보여준다. 이 마지막 현악 4중주에서는 밝고 투명한 분위기의 악상들이 지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도하게 밝은 것은 아니다.

, 인생이 꼭 이만큼만 안온했으면 좋겠다 싶은, 딱 그런 정도의 밝음이라고 해야겠다. 알레그레토(allegretto, 조금 빠르게) 템포로 문을 여는 1악장의 입구부터 그렇다. 밝고 따사로운 분위기의 선율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적절한 템포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정관웅.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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