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역사 속 효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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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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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역사 속 효자들
신라의 효자 손순孫順과 상덕尙德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바다에 몸을 던져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려고 했던 심청의 이야기나, 엄마 말을 듣지 않다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후회하던 청개구리의 이야기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와 같이 부모님의 은혜를 알고 정성껏 잘 받들어 모시는 것을 '효도'라고 정의하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효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을 얼마나 하고 있을까 스스로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 속 한국의 효자들

신라의 효자 손순孫順

동방예의지국인 해 돋는 나라 조선朝鮮에서 효를 찾아보자. 우리 한국은 예로부터 중국 이상으로 아름다운 효자 효녀들이 많이 살았다. 오늘은 신라 시대의 효자 손순의 이야기를 한다.

신라 시대에 손순孫順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면서 어머님을 모시고 봉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가난 중에도 어찌나 효성이 지극했던지 일 년 내 남의 집일을 해주고 사경(품삯)으로 쌀 몇 가마 받아 가지고 오면 오직 어머님만을 위하여 옷과 신발과 반찬을 사 드리기 위하여 쓰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이 아이가 어머님께 좋은 반찬을 정성껏 해 드리면 할머니 곁에서 늘 받아먹는 것이었다.  

손순은 그게 못마땅하여 어머님, 그 애는 그만 주시고 어머님 혼자 잡수셔요.”

하면 아니다. 내가 먹는 것보다 더 좋고 기쁘구나.” 하시면서 할머님은 손자를 자꾸 먹이시는 것이었다.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을 안 효자는 아내를 조용히 집 뒤로 불러서 상의를 하였다.

여보, 자식은 또 낳으면 자식이지만 부모님은 한번 가시면 그만이신데 저 애가 어머님 맛있는 반찬을 다 빼앗아 먹으니 어머님 입에 들어가는 것이 없소. 그러니 우리 저 애를 산에 갖다 묻고 나서 어머님을 봉양하십시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역시 천하의 효부라, “대체 당신 말씀이 옳군요.” 하면서 두 부부는 아이를 산에 갖다 묻기로 하였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효자 효부인가 싶다. 특히나 세상에 남의 부모 섬기기 위하여 자기 자식을 죽이기로 동의할 여인이 누가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이제 남편은 지게에 연장을 얹고, 아내는 아이를 업고 산으로 올라갔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보실 때에 얼마나 아름답고 기특하다고 생각했을까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때에 크게 망설였으며 그 아내는 감히 참여도 못하였지만 하나님도 모르는 조선 땅 이방인 두 효자 효부는 부모인 인간 어미를 공경하기 위하여 자기 아들을 기꺼이 희생시키는 것이라는 일이다.

이제 두 부부는 산속 깊이 들어가면서 더 높이 올라갔다. 알맞은 장소에 도달하자 지게와 아이를 내려놓고 아버지는 땅을 파기 위하여 괭이를 높이 쳐들어 힘차게 내려찍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땅을 한 번 찍으니 !” 하고 땅이 영롱한 종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두 번 세 번 거듭 찍으면 찍을수록 더 소리가 아름답게 울려 나오는 것이었다. 그곳을 파고 꺼내 놓고 보니 아주 훌륭한 종이 나온 것이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효자 효부가 아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대신 준비하신 선물이었다. 마치 이삭을 죽이지 못하도록 아브라함을 막으시고 대신 수양을 준비하셨던 하나님께서 조선의 귀한 효자를 위해 또 이 같은 선물을 준비해 주신 것이다.

마음에 감동을 받은 효자는 아내에게 이르기를 여보, 하늘이 우리 아이를 죽이지 말라고 귀한 종을 선물로 주신 것 같으니 우리 아이를 죽이지 말고 이 종이나 가지고 다시 집으로 내려가도록 합시다.” 남편의 말이라면 언제나 거역치 않는 착한 아내라 같이 집에 내려와서 오막살이 추녀 끝에 종을 달아 놓고 치니 얼마나 소리가 영롱하고 아름답게 멀리 퍼지는지 대궐의 임금님 귀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용상에 앉았던 임금님이 여봐라, 이게 무슨 소리인데 이토록 아름다운고?”

대신들이 급히 조사한 후에 사실대로 임금님께 보고하니 임금님은 크게 탄복하며 칭찬하시되 옛 시대에 곽거라는 사람이 자기 부모를 봉양하기 위하여 자식을 묻으려고 할 때 하늘이 그에게 금 솥을 주셨더니 지금 짐의 때에 와서는 하늘이 천하의 효자에게 진귀한 종을 주셨도다.” 하면서 어명을 내리기를 여봐라, 이 천하의 효자에게 크고 좋은 새집 한 채를 지어 주고 매년 국고에서 쌀 오십 석씩 평생을 대주어 그 모친과 자녀로 복되게 살도록 하여라.”고 했다

이것은 임금님이 주신 집과 쌀이 아니요, 하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을 통하여 친히 주신 상금이었다. 그래서 이 효자는 더 이상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지 아니하고 어머님을 모시고 처자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실제 이야기이다

 

 

신라의 효자 상덕(尙德) 

신라 때 상덕尙德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는데 이 사람은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는 기근 때에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하여 자기 넓적다리 살을 몰래 베어 바쳤던 사람이다. 또 부모님의 몸에 악종이 생기면 입으로 독을 다 빨아내 낫게 해 드리는 효자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효자를 위하여 임금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살아 있는 효자의 집에 정문을 세우게 하였다. 모든 이 땅의 자녀들의 본이 되게 하시고 매년 후한 상금과 쌀을 대주도록 하였다. 그 효자의 가정을 행복하게 살게 하셨던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은 한갓 꾸며 낸 옛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전시대에 우리와 같이 이 땅에서 살았던 효자들의 실제적인 이야기이다.

 

효자 전오륜

전오륜(1631-1720)은 용궁면 읍부리 출신으로 성격이 너그럽고 용모가 단정 우아하고 예절이 발랐다. 1660(헌종1)에 진사가 되었으나, 효성이 지극하여 홀어머니를 모시려고 과거 시험까지 포기하였다.  

  나이 70세 때(1702) 도둑들이 칼과 창을 마구 휘두르며 살던 집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이 때 전오륜은 자신의 안정보다는 어머니의 안전을 위하여 어머니를 업고 황급히 나오자, 모발이 하얀 늙은이가 100세의 늙은 어머니를 업은 모습을 도둑의 우두머리가 보고 감탄하여 부하들에게 이르기를

"진실한 효자이다. 너희들은 이 집의 물건을 조금이라도 건드리지 말라"

라고 하였다.

당시 용궁현감 이지석李志奭이 이 일을 듣고 전오륜의 효행을 아름답게 여겨 손수 '내무당萊舞堂'이라는 3자의 현판을 써 주었다. 이는 옛날 중국의 효자 노래자가 어머니를 즐겁게 하기 위해 70에도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놀이를 하며 춤을 추던 집이라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사실이 소문이 나자, 1714(숙종 14)에 암행어사 이병상李秉常이 조정에 보고하기를, "전오륜은 나이 70여 세가 되도록,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을 친히 점검하여 부모님께 올리고, 항상 불편함이 없도록 보살펴 드렸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매일 성묘를 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임금이 첨지중추부사의 벼슬을 주었다.

전오륜은 용궁면 읍부리 출신으로, 자는 천서(天敍), 호는 어주(漁洲), 본관은 용궁, 상구(尙耉)의 아들, 이현일의 제자이다. 저서로는 <인심도심변(人心道心辨)>, <내외교수편(內外交修篇)>, <사무사설(思無邪說)>등이 있고, 남긴 글로는 문집이 있다. 또 용궁향교의 세심루 기문(洗心樓記文)을 지었고, 사헌부 지평 김세흠(金世欽)의 국방 대책에 대한 상소문을 초안해 주었다,

 

부모님 약으로 아들을 솥에 삶은 효자 

어느 시골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원인 모를 불치병에 걸리신 것이다. 아무리 약을 써도 백약이 무효라 한탄하고 있는 중에 어떤 도인이 지나면서 처방을 내려 주기를 당신의 어머님 병환은 어린아이를 삶아 드려야 낫는 병이라오.”

하고 가는 것이었다. 참으로 처방치고는 어려운 처방이었다.

그러나 이 효자는 자기 집에 마침 어린 아들이 하나 있으므로 아내에게 달려와서

여보, 자식은 또 낳으면 자식이지만 어머님은 한번 가시면 그만이신데 우리 아이를 어머님 약으로 쓰도록 합시다.”

이때 남편 못지않게 효성이 지극한 아내는 즉시 승낙하여 동의하는지라, 그때 마침 칠팔 세 된 아들이 건넛마을 서당에 글을 배우러 간 사이였다. 아내는 큰 가마솥에 물을 한 솥 부어 끓이고, 남편은 서당 간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되었으므로 마중을 나간 것이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는데 귀여운 아들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아버지, 오늘은 웬일이세요? 제 마중을 다 나오시고요.” 하면서 귀엽게 말했다. “오늘은 네가 그냥 보고 싶어서 나왔지. 아버지 등에 업혀 가자.” 하고 아버지는 아이를 업고 집에 와서 불을 때고 있는 아내에게 눈짓을 하니 아내가 솥뚜껑을 열어젖히는 동시에 아버지는 아이를 펄펄 끓는 가마솥 속에 집어넣어 버리고 솥뚜껑을 닫아 버렸다.  

부부는 말 없는 침묵 가운데 불만 때고 있는데, 이게 웬일인가? 예쁜 아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서당에 다녀왔노라고 인사하며 또 대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아니, 네가 어찌 된 일이냐?” 하고 급히 솥뚜껑을 열어 보니 솥 속에는 커다란 동삼이 둥실둥실 떠 있는 것이었다.

역시 효자를 심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자기 아들까지 아끼지 아니하고 부모를 위해 희생시킨 지극한 효성에 크게 감동하사 친히 준비하신 큰 산삼을 갖다 주심으로 효자의 아들을 구했다. 어머님 병은 낫게 하심으로 효자의 가정에 큰 복으로 갚아 주셨던 것이다.

효자의 가정의 귀여운 아들은 예쁘게 자라서 훌륭하게 되었고, 산삼 물을 잡수신 어머님은 질병이 깨끗하게 나아 아주 건강하셔서 오래오래 장수하셨다. 아들과 어머니를 다 얻고 하늘의 축복까지 넘치게 받은 두 부부는 세상에 없는 행복을 누리며 오래오래 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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