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우리의 생활에 교훈이 되는 시조 이야기
HOME 회사소개 이용약관 시작페이지로 즐겨찾기추가 기자회원신청
로그인 회원가입
기본스킨 오렌지스킨 보라스킨 연두스킨 그레이스킨
2021년 6월 15일 화요일
뉴스홈 > 만평
2021-03-16
글자크기 기사내용 이메일보내기 뉴스프린트하기 뉴스스크랩하기
우리의 생활에 교훈이 되는 시조 이야기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보는 세상 – 옛시조 들여다 보기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하는 인문학으로 보는 세상 옛시조 들여다 보기

우리의 생활에 교훈이 되는 시조 이야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많은 격동의 시간 속에 살고 있다. 봄과 여름을 거쳐 가을과 겨울을 맞이할 때도 있고 갑자기 겨울이 왔다 봄이 오는 때가 있다. 이처럼 생각하지 못한 시대의 변화를 겪고 살기 때문에 급변한 환경에 적응하고 이겨내기 위해서는 공동체적 삶이 필요하고 고전의 문헌 속에 선지자들의 교훈을 알고 익혀 새롭게 대처해 가는 삶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의 생활 중심의 패턴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많고 어려운 삶에서 쉽게 자기를 상실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오늘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가 가던 길을 굴하지 않고 새롭게 계속 만들어 가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에 교훈이 되는 시조 이야기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다.

시조의 발생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고려 중기에 형성되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완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조는 발생 초기부터 평시조와 사설시조가 함께 나타났으나 평시조는 조선 전시기를 통하여, 사설시조는 조선 후기에 활발히 지어졌다. 개화기 이후 나타난 자유시에 밀려 점차 쇠퇴하였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최남선 등에 의해 시조 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 계급주의 문학에 대항한 국민문학파의 활동과 함께 본격화되기 시작하여 최남선, 이광수, 정인보, 이은상, 이병기 등에 의해 본격적인 현대 시조가 창작되기 시작했다. 이후 김상옥, 이호우, 정훈 등의 현대 작가에 이르기까지 계승되어 오고 있다. 시조(時調)라는 명칭은 조선 영조 때의 가객 이세춘이 당시에 단가라고 불리던 것을 시절가조(時節歌調)’라고 부른 데서 유래되었다.

 

김천택의 시조 잘 가노라 닷지 말며

 

잘 가노라 닷지 말며 못 가노라 쉬지 말라

브대 긋지 말고 촌음을 앗겻슬아

가다가 중지곳 하면 안이 감만 못한이라

 

잘 간다고 달려가지 말며 못간 다고 쉬지 말라. 부디 그치지 말고 짧은 시간이라도 아껴쓰라. 가다가 중도에서 멈추면 아니 감만도 못하니라.

 

송나라 대유학자 주자의 권학문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소년은 늙기 쉽고 배움은 이루기 어려우니 少年易老學難成소년이로학난성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라 一寸光陰不可輕일촌광음가경

연못가 봄풀은 아직도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未覺池塘春草夢미각지당춘초몽

뜰 앞의 오동나무 잎은 벌써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 階前梧葉已秋聲계전오엽이추성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짧으니 소년 시절 짧은 시간이라도 가볍게 여기 말고 부지런히 배워야한다는 뜻입니다. 이미지를 여기에서 빌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의 현대인들에게도 좌우명이 될 만한 시조다.

 

김천택이 펴낸청구영언은 우리나라 최초의 대표적인 시조집으로가곡원류,해동가요와 함께 조선의 3대 가집의 하나다. 고려 때부터 18세기 초엽에 이르기까지 1015(시조 998, 가사 17)를 수집·정리하여 가곡의 유형(중대엽·삭대엽)과 음조(평조·우조·계면조)에 맞게 묶어 후세 사람들이 쉽게 부를 수 있게 했다.

시조는 이때까지만 해도 학자문인들의 전유물로 도학적 관념적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조의 제재를 일상생활 속에서 취해 이를 사실적으로 묘사, 때로는 해학적인 표현으로 시조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여기에 악장인 북전, 가사인 맹상군가, 사설시조인 만횡청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시조를 정리해 시조 발전과 후진 양성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정래교의 청구영언의 서입니다.

 

김천택金天澤은 백함, 伯涵, 이숙, 履叔, 남파, 南坡

 

자는 백함(伯涵) 또는 이숙(履叔), 호는 남파(南坡). 본관과 생몰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1680년대 말에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고금창가제씨(古今唱歌諸氏)의 이름 나열 순서로 보아 김수장(金壽長)보다 몇 살 연장자로 짐작되기 때문이다.

김수장의 출생년이 1690(숙종 16)이므로, 김천택의 출생년은 1680년대 말이라고 보아도 거의 틀림없을 것이다.

김천택의 가계와 신분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진 바가 없다. 광산김씨세보에 김천택이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나, 자가 화중(和仲), 호는 몽현재(夢賢齋), 관직은 통정대부 돈녕부도정(通政大夫敦寧府都正)으로 다르게 되어 있어,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김천택의 신분에 관해 해동가요의 작가제씨(作歌諸氏)에는 숙종 때의 포교(捕校)라 소개되어 있다. 당시 가객들의 신분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그도 역시 중인계층으로서 관직생활은 젊었을 때 잠시 지냈고, 거의 평생을 여항에서 가인·가객으로 지낸 것 같다.

청구영언에서 자신의 시조를 여항육인(閭巷六人)’이라는 항목에 넣은 것을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가 있다.

정윤경(鄭潤卿)청구영언서문에서 성률(聲律)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문예에도 밝다.”라고 평하고 있는 바와 같이, 그는 당시의 일반 가객들보다는 인격이나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이었다고 추측된다.

교유인물로는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을 이룬 김유기(金裕器김성기(金聖器김중려(金重呂) 등이 있으며, 이들과 친분이 두터웠다.

시조작품은 진본(珍本) 청구영언30, 주씨본(周氏本) 해동가요57수가 수록되어 있는데, 중복되는 것을 제외하면 73수가 된다. 박씨본(朴氏本) 해동가요에서 새로운 작품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를 모두 합하면 약 80수가 되므로, 당시의 가객으로서는 김수장 다음으로 많은 작품을 남긴 셈이다. 장시조는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단시조 작품이다.

내용은 강호산수를 읊은 것이 가장 많고, 교훈적인 것, 체념과 탄세적(歎世的)인 것이 많아서 사대부 시조의 경향을 답습하고 있는 느낌이다. 1728(영조 4)에 편찬한 청구영언은 당시뿐만 아니라 후대에까지 가악의 발달과 가집의 편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진본 청구영언을 김천택이 편찬한 최초의 청구영언으로 보고 있는데, 여기에는 580수의 작품이 실려 있다.

 

조선 영조 때 활약한 대표적인 가객(歌客시조작가

잘 갈수 있다고 하여 뛰어 달리지도 말고, 잘 못 간다고 포기 하며 쉬지도 마라./아무쪼록 그치지 말고 계속하여 짧은 시간이라도 아끼어 보라/ 만일 시작해 가다가 중간에서 그만 두면 그것은 처음부터 아니 간 것만도 못하리라." 로 풀리는 시조다.

닫지 말며 : 달리지 말며. 허겁지겁 뛰어가지 말 것이며.긋지 말고 : 그치지 말고, 중단하지 말고.촌음(寸陰) : 일촌광음(一寸光陰)의 준말. 짧은 시간.아껴스라 : 아끼려무나. 아꼈으면 좋겠구나.~스라'는 원하고 바라는 뜻이 들어 있는 종결어미이다.중지(中止) : 중간에서 그만두기만 한다면.~'은 강세조사.

 

 그를 간략히 다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남파(南坡)김천택(金天澤)의 작품이다. 평민출신으로 창곡에 뛰어났으며, 김수장 등과 경정산가단(敬亭山歌壇)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1728년에 (청구영언)을 편찬,시조 정리와 발전에 공헌하였다,그의 작품은 (청구영언)30.(해동가요)57수가 전하는데 이 가운데 14수가 겹쳐 남긴 작품은 73수다. 생몰연대가 밝혀져 있지 않은 기록도 많으나 심재완(정본시조대전)에는 1687(숙종13)~1758(영조34)으로 밝혀져 있다.

숙종때 포교(捕校),즉 포도청에 속하여 범죄자를 잡아들이거나 다스리는 일을 맡아보던 벼슬아치를 지낸 것으로 기록된 곳도 있다.따라서 포교의 직책을 가지고 가인으로 활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있는데, 젊었을 때 잠시 관직에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그렇지만 시가사상(詩歌史上) 최초로 (청구영언)을 편찬하여, 시조의 정리와 발전에 공헌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작품은 무슨 일이든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끈기 있게 해 나가야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는 교훈성이 강한 작품이다, 뜻을 세웠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중단하지 말고 꾸준히 끈기 있게 해 나가야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것이다. "걷는 자만이 전진할 수 있다."는 격언이 바로 이 진리를 설명해 주고 있다. 초장을 보면 '중용'을 강조한 듯도 하지만, 종장에서의 결론은 '중단 없는 꾸준한 전진'을 역설하였다.<다음호에 계속>

 

정관웅

힐링코칭상담연구소장

시인칼럼니스트

강진고을신문논설주간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뉴스스크랩하기
기자이름없음 
만평섹션 목록으로
강진골프장 착공, 드디어 ...
백사마을을 다녀오면서
군민 자부심 한껏 드높인 ...
정관웅 칼럼니스트와 함께...
근거 없는 말 한마디, 강진...
다음기사 : 김현태 기고 - 입법부의 기능과 역할 (2021-03-16)
이전기사 : 이현숙기자의 영화로 읽는 명작소설 3 (2021-03-09)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정관웅 칼럼니...
”전국 최고의 ...
“(재)남미륵사 ...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해당섹션에 뉴스가 없습니다
게시글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회사소개 개인정보보호정책 이용약관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알립니다 독자투고 기사제보 정기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