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민심서 다산 말씀이 바다 되어 흐르는
강진에서 영랑과 현구의 시혼을 이어가다
영랑은 일제 강점 말기에 내로나 하는 작가들 대부분이 친일문학에 무릎을 꿇을 때 누구보다도 격한 저항시를 썼다가 아예 붓을 꺾어 버렸다. <독을 차고>가 그 대표적인 시로서 많은 문인들이 훼절한 일제 강점기에 독을 차고 독을 뿜고 독에 절인 심장을 적에게 내주어 죽음으로써 사는 길을 택하려는 의사의 기개를 보인 영랑. 오하근 님의 말처럼 그러나 모란의 정취와 마음의 고요가 춘향의 일편단심과 두견의 피울음보다 더 깊고 더 짙어 그는 저항시인이 아닌 서정시인으로만 인식되었는데, 서정시야말로 시의 본령일 수밖에 없으므로 그렇다손 치더라도 그는 분명 북에는 소월 남에는 영랑이라고 할 만큼 시의 금자탑을 쌓은 시인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강진은 영랑이 가장 좋아하던 계절 5월의 아름다운 서정을 마지막까지 펼치고 불의로 떠난 뒤로, 그의 시혼을 이어가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영랑생가 복원이 그렇고 영랑시문학상 시상이 그러하며 영랑전국백일장 개최 등이 그렇다. 게다가 시문학파기념관이 탄생되면서 영랑과 함께 시문학파 활동을 했던 김현구 시인까지 조명되면서 영랑문학제는 영랑현구문학제 개최로 명칭이 바꿔졌고 현구문학상 제정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강진은 시의 고장임을 더욱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영랑과 현구의 시혼을 이어가는 후예는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수희 시인이 바로 그런 시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그녀는 최근 ⌜울음단추⌟로 다섯 번째의 시집을 냈다.
1959년 대구면 미산출신인 이수희 시인은 유년시절을 고려청자 발생지에서 보냈다. 시낭송에도 관심이 커서 2012년 2월 시낭송지도자 2급 자격을 취득했고, 한국시낭송예술공연연합회 금상을 수상하였을 뿐 아니라, 영랑의 시혼을 가장 잘 계승하였고, 제1회 영랑시문학상수상자인 송수권 시인의 송수권시낭송대회 심사위원(제2회)와 다수를 지냈다. 2001년 1월 문예창작지도사 자격을 취득했고, 우송문학상 이동주문학상 전남시문학상 한국가사문학상을 수상해 명실공히 중견여류작가로서 활발히 시작(詩作) 활동을 하고 있다.
이수희 시인은 이밖에도 만덕사 혜장스님과 다산 정약용과 일지암 초의선사와 이어지는 차에 대해서 관심이 커서 현재 전통꽃차명인1호(대한민국KW)이다. 시가 있는 꽃차테라피 강사, 이수희꽃차문화원장 등의 활동이 그것이다. 이밖에도 백련시문학초대회장과 현구문학상 운영위원, 시문학파기념관 큐레이터(2019~2020), 사람책도서관 멘토, 진로체험 강사, 전국작가초대강사, 꽃이야기농장교육 교사 등의 활동으로 그 창작 외의 진폭도 다양하다.
⌜하늘 눈⌟
예송리 해변 검은 돌들의 자글자글 우는 소리
우리 집 댓돌까지 따라왔네
닳아진 댓돌은 내가 지나갈 때 발끝에서 늘 밟히고
기억의 마당에서 애달픈 고백을 하네
간절한 하늘의 또랑을 건너면서
사슴같은 흔적으로 아득한 징검다리를 놓았네
상처를 곱게 안고 있으면 이렇게 환해지는 귀를 낳는 것일까
고요한 의식을 비워 내고 비워 내고 있는가
내 의식의 구멍에 갇힌 끝없는 전류
굳었던 염증은 헤엄을 치며 둥실둥실 맑아지네
⌜파도⌟에서
2006년 시선사에서 발간된 ⌜하늘 눈⌟의 시집을 김신영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는 ‘지독한 밥의 파토스’라고 평했다. 지독하게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사람들의 인식은 고독하다며 고독한 사람은 그 고독한 인식의 깊이만큼의 고통을 견뎌내야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수희 시는 특별히 각축을 벌이는 경쟁으로 인한 고독은 아니지만, 고즈넉한 삶이 주는 고독으로 그 인식의 폭을 삶의 주변에서 축적한 시인이라는 것이다.
김신영 문학평론가는 “시인은 풍광이 아름다운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풍광이 그의 시마다 그득 담겨 가볍고 경쾌하며 따뜻하고 맑은 시어들을 자아낸다. 사람이 어디에 사느냐는 특히 시에서 그의 내력을 나타내기에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가 사는 지형의 풍광은 물소리도 따라 들릴 만큼 지척인 무릉도원의 환경이다. 그는 아름다운 풍광을 보면서 자신의 지독한 인식의 끝을 만난다.
안개가 둥글게 산을 넘는다
내 갈피의 음영들
어느 계곡 모퉁이를 간다
⌜안개가 산을 넘는다⌟에서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 자신의 서러운 이야기가 있다. 이 시에서도 서러운 그 이야기가 둥글게 산을 넘는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생의 희노애락을 모나지 않게 감싸안고 험난한 산을 넘는다는 것이 된다.
이수희 시인의 시는 모가 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지독하게 고독한 인생의 모습을 노래한다. 누구나 겪는 일들을 평이한 언어로 풀어내면서 하늘을 동경하고 모성의식을 유감없이 드러내었다. 먼 여정을 떠나면서 사람들을 그리워하는 것은 더 먼 길을 가기 위한 존재의식이다. 밥을 지으면서 밥의 미학을 논하는 시인은 밥으로 인한 삶의 넉넉하고 따뜻한 사랑을 인식한다. 또한 죽음 때문에 점시 혼란을 겪지만 이내 삶을 긍정하고 희망의 시어를 풀어내기 때문에 자연과 삶의 미를 노래하는 시인이라고 할 것이다.”라고 평했다.
⌜봄은 지금 배달 중⌟
이 시집은 2009년 늦가을에 <고요아침>에서 발간됐다. 이 시집에 대해 전원범 시인(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렇게 평하고 있다.
“사랑은 무엇보다도 순수하다는 점에서 인간이 지녀야할 바람직한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만이 삶을 윤택하게 영위할 수 있다. 사랑은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이며, 유구한 역사 속에서 인간의 정서를 주도해 왔다. 이수희의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이나 이타적 사랑이 아닌 활동적 사랑이긴 하지만 에로스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상대 대상에 대한 추억과 그리움의 원천으로서의 사랑이다. 그 대상도 추억 속에 존재하는 사람이거나 부모나 고향에 국한되고 있다.
보랏빛 가슴으로
온통 봄을 껴안은 채
가만히 올라와
작은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수많은 이야기를
마디마디 등불로 켜고
잎, 잎으로 섰구나
차마 눈 감지 못한
슬픈 사랑 하나
풀빛에 달고
⌜초롱꽃⌟ 전문
대상에 대한 이미지는 ‘수많은 이 이야기’와 ‘차마 눈감지 못할’에 응결되어 있어서 짐작은 할 수 있으나 초롱꽃으로 감춰져 있다.
나는 배앓이를 한다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소리 없이 아픔을 감싸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마음과 마음의 깊은 눈빛
길모퉁이 먼발치에서도 보이는 것이다
음지에서 피어나는 꽃
나무들의 숲에 약수가 넘친다
가슴에서 가슴으로
따스한 등불을 피우는
나의 사람
⌜음지에서 피는 꽃⌟ 전문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하기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따스한 등불을 피우는/ 나의 사람’ 또한 마찬가지로 진정한 사랑의 모습니다. 사랑은 배앓이요, 마음과 마음의 깊은 눈빛이며, 음지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열정을 안으로 다스리면서 보여주는 이수희의 참된 사랑의 모습은 다음의 시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사랑과 못난 마음까지도
죄다 주고 가는 나비
한사코 신비디움 꽃이 나비를 업어주고 있다
벌처럼 쏘아 흔적을 내고 있다
아픔이 있다는 것은 사랑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
피 흘리는 칼날까지도
⌜꽃의 바다에서⌟ 부분
못난 미움까지도 죄다 주고 가는 자기희생적 사랑이 그것이다. 그러한 사랑은 하나의 믿음으로까지 연장되고, 그것이 결손 되었을 때는 그리움의 정서로 이어지게 된다. 이 따뜻한 사랑의 진정성은 부모나 고향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시인이다.
이렇게 하여 이수희는 아픔의 담금질 이후 자기정화 또는 자기승화로의 시적 제의(祭儀)를 치러낸 것이다. 혼란스러운 삶의 정황 속에서 무겁고 잡된 것들을 비워내면서 삶의 매듭을 짓고, 새롭게 받아들이는 또 하나의 매듭을 이뤄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참된 존재 찾기다. 참된 시를 쓴다는 것이 마음으로 생을 민감하게 느끼는 것이요, 삶 속에서 그 삶을 반응하는 시인의 자기표현이라 한다면 이수희의 시는 한 마디로 말하여 사랑과 추억의 그리움, 그리고 그 끝에서 일어나는 고독과 고뇌를 강한 성찰의 방법으로 비워내기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비워내기 이후에 세워야 할 세 번째 마디의 ‘시’에 대해서 기대해 본다.” 이것이 전원범 시인의 평이다.
⌜그리움만 접수합니다⌟
2013년에 발간된 ⌜그리움만 접수합니다⌟란 시집에 대해 시인이고 문학박사이며 중앙시단에서 활약하고 있는 전남도립대학교 교수인 최한선 교수는 이렇게 평했다.
“장미를 팔지만 찔레 같은 토종의 뻘심으로 계량화된 세태를 정면으로 받아치는 할머니요 어머니며 소녀 같은 시인인데, 그녀의 시는 때론 야생적 사고로 도전적이며 생경한 이미지를 창출하지만, 대부분의 시편은 구강포의 자궁 같은 깊이로 강진의 요 모양 저 모양을 오물짝 쭈물짝 반죽하여 빚어낸 시의 청자이다”며 “강진이라는 남도의 끝자락에 살면서 중앙의 문인 못지않게 탄탄한 시어와 넉넉한 시심으로 시 본령인 ‘서정심’을 일구고 가꾸며 후배들과 어울려 강진의 초목을 찾고 강진의 사람을 만나고 비라도 내리거나 눈이라도 쌓이는 날이면 감작 교실(다산의 시에서 따온 말로 강진토박이 시인들의 창작교실)에 두런두런 모여 앉아 툭툭 튀는 난로 불 소리 맞춰 시국을 걱정하는 품 큰 여류시인이라니. 나는 그 무엇보다 확신하는 게 있다. 찔레꽃 향 범벅인 강진의 시심이 한국의 시심이요, 한국의 시심이 곧 세계의 시심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바로 이수희 시인과 감작 교실 회원을 통하여…”라고 했다.
시인인 정일근 경남대 교수는, “이수희 시인의 시집을 찬찬히 읽으며 사람보다 시를 먼저 ‘징하게’ 알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이수희 시인이 자연의 이름을 친구처럼 불러주는 시인입니다. 산딸나무, 이팝나무, 찔레꽃, 수수꽃다리, 등꽃, 호랑가시나무, 배롱나무, 생강나무, 자두나무, 편백나무, 동백나무 등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 이수희 시인은 자연의 시인입니다. 그래서 시인의 시는 숨길 수 없는 서정시며, 특히 제 시가 출발한 강진의 백련사, 사의재, 그곳의 지명과 뻘 등을 만나 강진과 다산 선생 생각에 아득해집니다. 좋은 친구 최한선 시인 생각에 ‘찡’해집니다. 이수희 시인은 가끔 젊은 시선으로 가족과 사람과 도시문명을 봅니다. 언제가 그곳 모란이 흐드러지게 피는 날, 이수희 시인을 만나 차 한 잔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정겨움을 나타냈다.
⌜울음단추⌟
2020년 12월에 발간된 ⌜울음단추는⌟ 권성훈 문학평론가이자 경기대 교수의 언어 설계자에 대한 순례의 문장이란 제목하의 해설에서 “이수희 시인의 이번 시집 『울음 단추』 는 시라는 양식 속에 있는 내재된 ‘함몰의 수문’을 열어 시어를 방출하는데, 그것은 ‘뚫린 생각 모서리’ 언어들의 설계로 파생된다. 그것도 ‘한밤중 추운 맨살 헐떡이며 잠들지 못하고’ 있는 기억의 골목에 축적된 것들로서 디자인한 의미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그녀의 시는 지나간 시간의 골목에서 돌아온 공간의 골목을 새롭게 산책하는 동안 쓰여 진 언어로 세계를 관통한다. 요컨대 현재라는 지나가는―골목에서 과거라는 지나온―골목을 통해 미래라는 지나갈―골목으로의 시공간을 횡단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천천히 흐르는 시간 따라 조금씩 변해가는 곳’에서 그녀는 ‘다른 시간과 계절에 익숙해버린 길옆 샛길을 발견’하면서 ‘오늘도 잔여의 산책’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인에게 이러한 골목은 흥미롭게도 시가 산출되는 공간으로서 이미 당도해 ‘언젠가는 돌아오고야 말 골목’으로 ‘날마다 오는 나’로 통하는 힘을 불러오는 ‘시의 저장고’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 만나게 되는, 그 모든 것들을 시어라는 꽃잎으로 피어내고 있는 것이 이번 시집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며 “여러모로 통하는 기억의 골목에서 호흡하는 ‘생각의 모서리’를 시적 형식으로 설계하는 그녀의 시는 ‘자주 찾던 예전의 길 발 딛을 땅’을 무상하게 횡단하기도 한다. 그것은 「그 많은 꽃은 어디에」와 같이 ‘꽃자리 없어져도 언제나 같은 길, 길을 내고 불러야 할 이름 하나둘, 밀물과 썰물에 쓸려가는 것이 평범한 순서일까요 당신의 풀은 베어내야 했고 내 풀은 뽑아내야 했는데’라고 그녀의 시는 삶의 길 위에서 피어있는 이른바 ‘길목의 꽃’들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하기 위해 소음 같은 ‘잡초’를 제거해야하는 절제미를 보여준다. 절제미로서 여백에 불러 모으는 이 같은 언어는 ‘아주 멀리 와서 소환합니다 말갛고 정다운 자잘한 돌 틈’(「달에게 들킨 죄」)처럼 가시적인 것을 거시적으로 보는데서 비롯되는 것으로 ‘흑백사진 필름 하나씩 돌리면서 꼭 밤에만 핀다는 그 꽃 만나러’가는 숙련된 그리움이라는 점이다. 그녀의 숙련된 그리움은 낡은 것이 아니라 발효된 것으로 표상되면서 ‘빤히 쳐다보면서 마음 델 수 있는 고통’(「불꽃 없는 불」)처럼 시 의식에 대한 주문과 같이 ‘아무도 알 수 없는 애끓은 불’의 언어에 대한 신성함을 감각적으로 산출하고 있다.”고 평했다.
또 “한편 그녀의 시는 의미의 두 겹에서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면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은 어떠한 것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면서 조응하게 한다는 점에서 원천적인 의미에서의 시적인 효과를 가진다. 말하자면 화자가 대상과 ‘마주앉아, 당신은 당신의 창을’보지만 ‘나는 나의 창을 보는’것을 통해 이 세계를 낱낱이 모두 보여줄 수는 없는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언어의 한계는 표층에 감추어진 감정의 민낯을 절대적으로 조명할 수 없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언어를 통해 위안을 받는다. 이를테면 일상적 언어로는 ‘생각조차 늘 순간을 읊조린다’하면서 ‘때로는 기세와 리듬으로 수다를 떨지만’ 이러한 언어는 가려지고 은폐된 것이지만 시적 언어는 시어로서 서로의 심층을 바라보며 서로를 관통한다. 마치 불안한 주체의 내면을 절망적으로 대상화하여 그것에의 진위를 가려내는 것에서 위안을 주입하는 것, 시는 서로 다른 고통의 창을 통해 서로 같은 정서적 이치에 도달하는 것으로서 절망과 불안한 마음에 위무를 주는 것. 그러한 시는 바로 ‘서로에게 뜨거운 위안’을 주는 고통에서 평온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설계된 그 무엇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깐 그녀는 ‘멀리 있으나 곁에 있으나’ 이분법적 경계가 진동하는 혼란의 세계에서 ‘붉게 떨어지는 동백꽃’ 속에서 시적 영역과 존재의 사유를 아이러니하게 확장시킨다.”며 “이수희 시인의 시집 『울음 단추』는 ‘집 없는 집’으로 향하는 골목에서 설계된 존재의 순례를 통해 시적 사유가 지향하는 내적인 조건들로 조직된 언어의 명상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녀는 유동적인 세계에 대한 응대로서 언어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것은 상상력으로 축조된 세계라는 골목 안의 사물과 대상을 언어로 재단하는데 있다. 그것은 마치 구멍 뚫린 곳에서 단추가 얼굴을 내밀듯 그녀의 이번 시편들은 그러한 사유의 생살을 찢고 나온 ‘순례의 언어’에 대한 기록물이 아닐 수 없다.”고 평했다.
떠나지 못하는 것으로부터
신성 둘레 길,
교문 앞 조그만 찻집
우리 마을이라서 그냥 좋은데
혼자 선뜻 들어가지 못하여 재빠르게 시선만 훔쳐 담는다
머신, 그라인더, 스쿠프의 손놀림 스치고
드립커피 갈아지는 울림 까스랍게 내 귀에 잠긴다
어느새 그 향기까지 하루를 예감하는 기분 좋은 날
어제 아닌 오늘
재촉하는 마음 많지만
아주 가까운 곁으로부터 피고, 피어지는,
그래그래 맞아맞아 빨리빨리 아니아니 몰라몰라
놓고, 버리고, 버리는, 모든 곁, 꽃 말말 말의 빠른 통로다
곧 닿는다는 것 기회가 온다는 것
바로 필요할 때
내일은 너무 멀다는 것,
수 없는 시간의 눈을 떠
결국 오늘 품에 안기기를
시작의 도구는 내 곁으로부터
「곁」
숙명적으로 시를 곁에 두어야 하는 시인은 그것으로부터 고유성을 가지는 것처럼 그녀에게 시는 “떠나지 못하는 것”에 관한 운명과도 병치되는데, 이때 시를 시로 있게 하는 것이 바로 곁인바, 이 곁은 시의 길을 비추는 것으로 존재한다. 이른바 ‘신성 둘레 길’과 ‘교문 앞 조그만 찻집’이 시의 오브제가 되고 ‘우리 마을’은 ‘재빠르게 시선만 훔쳐 담는’ 시의 공간을 디자인 할 수 있는 소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시는 원두를 갈듯이 언어의 로스팅이 가해지는데 “머신, 그라인더, 스쿠프의 손놀림 스치고 드립커피 갈아지는 울림”으로 가공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는 그녀의 기억 저편 “어제 아닌 오늘”을 마주하면서 “아주 가까운 곁으로부터 피고, 피어지는” 향기 가득한 언어의 미감을 수신할 수 있는 것. 그렇게 시인이 풀어놓는 세계의 의미와 시적 가치들은 그녀가 “수 없는 시간의 눈을 떠”서 온전한 시어로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며 ‘결국 오늘 품에 안기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녀의 내적 풍경이 인화된 사진첩 같은 시편에는 여러 곳에서 ‘언어의 숲속’을 찾아다니면서 발견한 것들의 흔적들로 혼종 되어 있다. 그것은 배회하다가 ‘숲속 빈 의자 하나’(「사진」)를 가지고 오는 것이며, 집이라는 사유의 공간에서의 ‘배경을 자유롭게 해놓고 내가 놀고’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이에 자신만의 ‘인적 없는 사이’ 공간에서 대상들을 배경으로 ‘각인 된 낮달 하나’를 건져 올리는 것이 그녀의 시작법이라고 할 수 있다. 권성훈 문학평론가의 평이다.
영랑과 현구의 후예로서 다섯 권의 시집을 펴낸 이수희 시인의 앞날에 주목하는 것은 그녀가 틀림없이 대성하리라는 기대 때문이 아닐까. 글 송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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