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제(時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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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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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제(時祭)
碧松/조윤제(옴천면, 강진문협회원)

먼저 이런 이야기를 소개할까 한다.

1930년대 이야기다 어느 날 1924년생 당숙이 이야기해주었다.

봄철이면 앞산 뒷산 묘() 앞에서 시제를 모신다. 그러면 근처에서 놀던 아이들이 시제가 끝나고 음식을 먹을 때 오라 해서 나누어 먹을 줄 알았는데 자기들만 먹고 남은 음식 가지고 가 서운해서 날짜를 기억해두었다가 다음 해 시제 전날 묘 앞에 똥을 발라두고 눈치를 보니 시제가 끝나고 오라 해서 음식을 나누어줘서 먹고 다음 해부터는 시제 모시는 날을 기다려서 얻어먹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 사람들은 근처에 있는 사람은 오라고 해서 함께 먹은 것 같다.

시제 제물은 집에서 사는 머슴이 바지게에 지고 산으로 올라온다. 제주(祭主)들은 먼저 묘에 가서 묘를 살피고 성묘도 하고 한다. 그런데 묵얼 이라는 이름을 가진 머슴이 산 아래 보이는데 올라오지 않아서 내려다보며 큰소리로 머슴 이름을 묵얼아 묵얼라 불러도 안 올라와서 내려가 보니 않아서 차분히 제물을 먹고 있어 너 이것이 무슨 짓 이야 하니 묵어라(먹어라 사투리) 소리쳐서 묵으라고 해서 먹는다고 하드라고 우스갯소리다. 이런 야기도 있다 배는 고프고 시제 절차가 하도 많아서 시간은 가고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고 침은 넘어가서 유세차 곶감 대추 인자 먹새 했다는 이야기다.

시제가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인류는 제사 문화라 했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것만 여기 소개한다. 우리 집 뒷동산에 김 씨 선산이 있는데 아버지께서 1960년대 가을이면은 벌초를 해드린다. 그러면 이듬해 한식날 시제를 모시러 온다. 그때 멍석과 화로 물을 가져다 놓으면 시제 모시고 가는 길에 산신 제물이라고 떡 생선 돼지고기 등 고루고루 바구니로 가득 갖다 주고 간다. 그러면 배고픈 시절에 잘 먹었다 그래서 해마다 한식날만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그러기를 1970년대 1980년대가 가고 1990년대는 내가 벌초를 해주었다. 그런데 시제 모시러 오는 사람이 줄고 산신 제물도 줄어서 어떤 때는 검은 비닐봉지에 떡과 과일 한 개 주고 가서 이제는 어느 정도 살고 그 제물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되어 그만 가져오라고 했는데 가을이면 지나가면서 벌초 품삯으로 5만 원씩 몇 해를 주고 갔다. 그 뒤로 소식이 없어도 옛날 배고픈 시절이 생각나서 5.6년을 그냥 봉사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아무도 찾는 이 없어 석물(石物) 가로 묘() 위에 온갖 나무가 무성히 나있어 세월에 무상함을 느낀다.

우리 집안 시제는 9대조 묘가 할성산에 있어 봄이면 멀리 영암읍 한 대리 에 사시는 취()객 고숙님께서 제물을 준비하고 여기 좌척에서 어른들이 가 서 시제 모시는데 어릴 때 따라다니든 기억이 난다.

영암군 한대리에 빈 땅에다가 1930년대에 좌척에서 품삯 꾼을 사 같이 가서 1.000평방미터 정도 만든 논을 집안 고숙님께서 농사를 지면서 9대조 할아버지 시제 장만하고 벌초도 했다.

8대조 할아버지 시제는 개산 마을 뒤 함안 조 씨 선산 묘 앞에 봄이면 처음에는 바지게로 지고 가서 모시고 다음은 경운기로 싣고 가서 모시다가 그도 번거로워 다음에는 마을 뒷산에 제단을 만들어서 병풍치고 가을에 합제로 모셨다. 음력 1010일 가을바람이 으스스 불 때다 초등학교에 갔다가 조퇴하고 와서 제사 모시고 제사음식을 먹고 남은 음식은 끄렁지 (볏짚으로 얼기설기 만든 꾸러미) 쌓아서 집에 가져와 먹었다. 이때는 비닐봉지가 나오기 전이다. 귀한 유자를 하나씩 얻어서 가지고 놀다가 집에 두면 유자향이 방안에 가득했다. 음식 장만은 온 집안 대소가 사람들이 연중 큰 대사로 생각하고 한집에 모여서 걸게 장만했다. 그러다가 1988년 마을에다 제실을 지어서 조상님들 시제를 제실에서 봄에 모셨다. 이때는 서울에서 대형 버스를 대절하여 전 날 좌척에 와서 자고 이튼 날 왁자지껄 하게 시향을 모셨다. 그러기를 20여 년 세월이 가고 좌척 마을 출신 어른들이 한 분 두 분 돌아가시고 객지에서 출생한 후손들이 부모 고향 향수가 줄어들고 좌척 마을 집안 어른도 줄어들고 고향 지키는 대소가 사람도 줄어들어서 쇠퇴하게 된다. 시제 장만도 집안에서 했는데 힘들고 어려워져 음식점에 맡겨서 준비하게 된다. 간소화 말이 자꾸 나오고 상차림도 예전같이 않아지면서 갈수록 성의가 부족해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서울에서 자가용의 한 대 두 대 올뿐이다. 아직은 내가 있고 집안 어른이 한두 분 계셔서 명목을 이어가고 있다. 어른들 걱정은 우리가 죽의면 누가 찾아와서 집안 전통 시제 제사를 모실거나 하고 걱정하신다.

어떤 집안은 시제 모시기 싫어서 산소에 가서 소주 한 잔 따라놓고 인사들이고 식당에 가서 점심 먹고 헤어지기를 몇 년 하다가 그도 싫어서 안 모시는 집안도 늘어간다. 어느 집안이고 시제 답이 있다. 그런데 자손들이 찾아오지 않으니 논밭을 팔아서 드시고 조상 묘소도 돌보기 싫어서 개장하여 뼈를 꺼내 화장하여 버리기도 한다. 조상님들이 무슨 죄가 그리도 많아서 부관참시(剖棺斬屍)한지 모르겠다. 옛 문헌에 보면 조상 묘 100년 지키기 어렵다고도 했다.

묘지(墓地) 관리 문제도 집안마다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예전에는 장손이 제산도 많이 물려받고 해서 선산 아래 살면서 관리 했는데 지금은 자손을 많이 안 두는데다가 제산도 균등하게 나누어 주어서 책임감이 없다. 그래서 벌초하지 않으면 자연 수목장으로 돌아 가기도하고 어떤 집안은 돌로 납골당을 만들어서 화장하여 단지에 담아서 보관도 하나 벌레가 생기고 절손(絶孫)되여 그대로 두면 수 백 년이 가도 없어지지 않아서 그것도 문제고 어떤 집안은 공동묘지를 만들어서 집단으로 표시(標示) 석을 세우고 관리하나 그것 또한 문재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20년 지금까지는 그래도 60세 넘은 후손이 벌초를 하나 이 또한 걱정이다. 우리 집안도 시류(時流)에 따라서 해야 하나 여러모로 생각해도 좋은 방안이 없어서 걱정이다. 어쨌든지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해 하되 다음 세대 또 시류에 따라서 하리라 생각할 수밖에는 특별한 방법은 없지 않은가 생각한다. 시제나 집안 제사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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