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부와 민간에서 100년 전 3·1운동의 의미를 되새기는 갖가지 행사를 개최하였다. 아예 3·1 혁명으로 명명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공감 가는 제안이다.
또한 중국인에게 올해는 5·4 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의 5·4 운동은 일제강점기 식민지 조선의 3·1 운동에 고무되고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1919년 5월 4일 중국 북경(北京)의 학생들이 일으킨 항일운동이자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혁명운동이었다. 중국의 신민주주의 혁명의 출발점으로 현대사의 새로운 기원을 여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5·4 운동의 영향으로 중국공산당이 결성되었으니, 현대 중국의 시발점임이 분명하다.
이 5·4 운동의 도화선이 된 곳이 산동 반도의 중심 항구 청도(靑島)이다.
청도 구시가의 중심 시정부 청사 앞에는 5·4 광장이 있다. 아름다운 해안가에 자리한 5·4 광장에는 수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그 광장의 정중앙에 ‘5월의 바람(五月的風)’이라는, 불타오르는 청년들을 상징하는 햇불 모양의 커다란 조각품이 자리하고 있다.
한낮에 보아도 붉고 웅장하다. 가히 청도의 랜드마크라 할 만하다. 그 ‘햇불’ 상징 조각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다. 중국 관광객에게 부탁하여, 나의 사진도 한 장 찍었다.
그러면서 바라보니 ‘5월의 바람’ 앞 보다 ‘해안가의 바람’ 쪽에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5·4 광장을 찾은 중국 관광객(遊客)에게는 100년 전의 ‘5월의 바람’ 보다 2019년 8월, 먼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더 낭만적이고 흥겨운 것이다.
5·4 운동의 시원은 청일전쟁이다. 청일전쟁에 패배한 중국은 1897년 청도를 독일에 조차지로 내어주었다. 1914년 세계 1차 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이 물러나고 대신 일본이 점유하려하자 중국 지식인들과 청년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다.
독일은 청도 점령기에 두 가지 유산을 남겼다. 하나는 해안가에 자리잡은 독일식 건물이다. 빨간 지붕이 특색인 독일풍 건물들은 현재까지도 청도를 유럽 분위기의 이국적인 해안도시로 인상지우고 있다. 또 하나는 1903년 설립된 맥주공장이다. 현재 청도의 상징이 된 청도맥주가 독일인들이 세운 맥주공장에서 시작되어 지금은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청도 제1공장에 있는 청도맥주박물관은 청도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꼭 방문해야 하는 필수코스가 되었다. 5·4 운동의 시원이 되었던 독일의 ‘청도점령’의 ‘유산’이, 한 세기를 지나 ‘청도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관광자원’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렇게 청도는 세계적인 ‘맥주의 도시’가 되었다. 청도맥주박물관에서 갓 생산한 맥주원액을 마셔보지 않고서는 청도맥주의 깊은 맛을 알 수 없고, 청도에 다녀왔다는 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양 꼬치를 안주 삼아 청도맥주를 즐기는 밤의 낭만이 ‘청도여행’의 가장 큰 추억거리라고 말한다. 우리 일행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강유위(康有爲) 고거(故居)에 가보자는 말은 귀에 들릴 리가 없다.
강유위는 청나라 말기, 중화민국 초의 학자이자 정치가로 무술변법(戊戌變法)이라 불리는 개혁의 중심적 지도자였다. 변법자강(變法自疆)운동의 지도자로서 양계초(梁啓超)의 스승이었던 그는 말년에 청도에서 살다 병사했다.
강유위가 말년에 기거하며 저술에 힘쓴 곳이고, 5·4 운동의 도화선이 된 도시여서 그런지, 청도 외곽에 새 대학가가 들어서고 있다. 산동대학교 청도캠퍼스(靑島校區) 도서관·기숙사 신축 현장을 바라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어느 대기업 사옥 못 지 않는 규모다. 주변 부속 건물의 규모도 상상을 초월한다. 세계의 인재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려는 저의가 엿보인다. 1919년의 ‘5월의 바람’이 이제는 ‘학문의 열풍’으로 불어올 것 같다.
청도시박물관은 1965년에 건립된 역사·예술·인문 등의 자료를 종합적으로 전시하는 다기능 현대박물관이다. 중국에서 맨 처음 국가1급박물관과 고서적 중점 보호기관으로 선정된 박물관 중의 하나이다. 이 박물관 3층에 ‘고대공예품전시관’이 있고, 여기에 다수의 ‘명도전(明刀錢)’이 전시되어 있다.
그런데 이 명도전이 기존에 알려진 바와는 다르게, 근래에는 고조선의 화폐로 비정(比定)되고 있으며, 그 뒷면에 새겨진 문자 또한 연나라 문자가 아닌 고조선 문자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이에 대해서는 중국학자 장박천도 인정하고 있다). 명도전이 발견된 지역 또한 고조선의 영역이며 동이의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명도전을 전시하고 있는 청도 역시 우리 동이의 영역이었다.
청도시박물관에 배포하는 홍보 팜플렛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동이문화(東夷文化)가 역사의 흐름에 따라 하나하나의 진귀한 중국문물(華夏瑰寶)로 남겨져 찬란한 지역 문명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국 산동성 일대가 고대 동이의 영역이었으며, 중국 문명의 원류가 동이문화였음을 그들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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