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불볕더위와 열대야로 밤잠을 설치는 분들이 많다. 예전에는 죽부인을 안고 주무시는 어른들이 많았으나 요즘은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그러나 마을 어귀의 정자에는 아직도 여러 가지 모양의 목침이 한쪽에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목침을 베고 산들바람 맞으며 단잠을 주무시는 어르신들은 한평생 논밭에서 시름 많은 세월을 보내셨다.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마을 정자에서 도자기로 만든 베개(瓷枕, 陶枕)를 베고 모든 시름 뒤로한 채, 한단지몽(邯鄲之夢)에 한번 빠져 보는 것은 어떠한가.
한단(邯鄲)은 옛 중국의 전국시대 조나라의 수도였다. 한단지몽은 한단에서 꾼 꿈이라는 뜻으로, 인생의 부귀영화는 일장춘몽과 같이 허무함을 이르는 말이다. 비록 당나라 현종 때의 도사 여옹과 노생의 이야기에서 나온 고사이지만, 노생이 베고 잤다는 도자기 베개와 그 도자기 베개 속으로 들어가 최씨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인생의 영화를 누렸다는 고사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다. 고려의 재상 이규보도 그의 역작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16 고율시에, 고려청자 베개에 대한 감상을 읊은 ‘녹자침(綠瓷枕)’을 수록하였다.
“ 푸른 사기 베개 물보다 맑고 玉을 만지듯 매끄럽구나
몸 날려 그 속에 들지 마라 어지러운 황량몽(黃梁夢)이었지만
한단의 청구가 부끄럽기야 하랴 ”
여기서 황량몽(黃梁夢)은 한단몽(邯鄲夢)과 같은 말이다.
중국 하북성 한단시 자현(磁縣)은 도자기 베개와 백지흑화 도자로 유명한 자주요(磁州窯)의 본고장이다. 과거에 이 지방은 자주(磁州)로 불렸기에 이 곳의 도자를 ‘자주요’라 부른다.
자기 베개는 대부분 자주요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주요만의 독특한 작품이다. 자주요에서 도자기 베개가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수(隨, 581~618) 무렵으로 추정되며, 북송(北宋, 960~1127) 이후로는 도자기 베개가 일상용품 또는 선물로서 많이 사용되었다. 송, 금, 원대에는 수량이 증가하고 형태와 장식이 다양해졌으며, 20세기까지 제작되어 오랜 세원 지속되어 왔다. 도자기 베개는 민중의 생활에서 널리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베개를 만드는 도공들에게는 생계의 수단이 되는 등 민중의 삶에 가까운 도자기였다.
뿐만 아니라 원대의 자주요 도자기 베개는 명대의 문학작품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원대 자주요 도자기 베개에 그려진 그림이 백여 년 혹은 이삼백여 년 이후에 출연한 명대의 문학작품인 「서유기(西遊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수호지(水湖志)」와 관련된 고사를 전파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북성 문물연구소에 소장된 원대 <당승취경(唐僧取經)고사무늬 베개>는 현장법사와 사오정, 손오공이 그려져 있다. 이 방형 자기 베개는 명대 오승은(吳承恩)이 쓴 「서유기」 보다 2~300년 이르다. 이런 고사무늬 베개는 「삼국지연의」가 책으로 엮이는데 소재를 제공하였고, 「수호지」의 영웅호걸 창출에 공헌하였다.
자주요의 도자기 생산은 1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주요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조촌요(曺村窯), 임수진요(臨水鎭窯), 북가벽촌요(北賈壁村窯) 등의 가마에서는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420~589) 말기부터 시유도기와 청자를 생산하였다. 이는 고대 중국 북방에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도자기를 생산한 가마이다. 수·당·오대의 자주요는 과거를 전승하여 더욱 발전하였다. 당대 자주요는 유색이 다양해지며, 단색유 장식을 탈피하여 문양이 등장하는 점이 특징이다.
북송(北宋, 960~1127)부터 원(元, 1271~1368)까지의 시기는 중국 도자의 융성기이며 자주요 도자도 가장 발달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표면에 깨끗하게 화장토를 바른 도자기가 등장하면서, 이 표면을 장식하기 위한 다양한 기법들이 도입되어 자주요 도자의 양상을 매우 풍부하고 다채롭게 하였다. 특히, 진주지획화(珍珠地劃花), 흑유척화(黑釉剔花), 백유척화(白釉剔花), 백지흑화(白地黑花) 등의 장식이 자주요의 독창적인 기법으로 발전하였다. 자주요 주변의 수많은 가마에서는 자주요 도자를 모방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자주요계’라 불리는 많은 가마와 도자가 탄생하게 되었다.
특히 자주요 도자의 장식기법과 조선 분청사기 장식기법의 유사점이 많아 주목 받고 있다. 또한 전시중인 도편에는 우리의 태극기와 유사한 문양이 있어 더 흥미를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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