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진댁이 자취를 감춘 지 여러 날이 지나고 나서 그녀의 친정아버지와 큰오빠가 국사봉 농장을 찾아왔다.
“나, 박 서방 좀 만나러 왔는디 시방 어디가 있다요?”
키꼴이 훤칠하고 허우대가 큰 노인은 승용차에서 내리자마자 다짜고짜 여강에게 고함을 쳤다. 보나마나 타잔의 총기 사건을 따지러 온 것이 분명해 보였는데, 여강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지만 받는 둥 마는 둥 하더니,
“대체 무슨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람한테 총질을 혀?”
하고 추궁조로 다그쳤다.
-저한테 따님을 줄라요 안 줄라요?
장인이 될 노인 앞에 가서 큰 절을 올린 타잔은 그렇게 큰 소리로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장인어른은 타잔의 행동거지를 지켜보더니 허허 참, 하고 웃고 나서,
--합격이네, 합격!
하고 대번에 승낙을 했다고 한다. 흑염소 다섯 마리로 시작한 젊은이가 이제 천 여 마리의 흑염소를 지닌 농장주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었다. 그래서 첫 선을 본 지 불과 두 달만에 결혼식을 올린 타잔 부부였다.
“내 딸을 개 잡듯이 두들겨 팬 이유부텀 들어보세.”
노인은 마침 흑염소 막사에서 걸어 나오는 타잔에게 대뜸 물었다.
“본인이 더 잘 알 것디요.”
타잔 역시 조금도 물러설 기색이 아니었다.
“이 사람아! 엑스레이를 찍어본께 턱이 나가뿌럿어! 턱뼈에 금이 갔다 그 말이여!”
“이제 딸을 데려가십시오.”
타잔이 되받아쳤다.
“데려가다니? 어디로? 죽어도 이 집 귀신이요, 살아도 이 집 귀신인디 데려가다니?”
“바람피운 여자와는 더 이상 살 수 없구만이라.”
“그래, 박 서방 말대로 바람을 피웠다고 치세. 그랬다고 사람을 개 패듯 해야 되는가?”
“자백을 하면 용서를 하려고 했지라.”
“더구나 총질까지 하다니, 자네가 사람인가, 짐승인가?”
“저도 참을 만큼 참았습니다.”
“참아? 사람을 짐승만도 못하게 취급하면서 참기는 뭘 참아?”
노인이 오른손을 치켜들고 손가락으로 타잔의 얼굴을 향해 찌를 듯이 가리켰는데 팔 전체가 부들부들 떨었다.
“짐승은요, 따님보담 낫지라. 짐승은 제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없다 그 말씀입니다. 그리고 살아서는 젖을 주고 죽어서는 살과 뼈를 주는 것이 짐승 아닌가요?”
“이 사람이 뭣을 잘했다고 꼬박꼬박 말대꾸여? 조금도 반성하는 기미가 없구만. 그래, 내 딸에게 총을 쏘았다는디 어뜨크롬 책임을 질랑가?”
“흥, 총을 맞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타잔이 별 시답잖은 말을 한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다.
“뭐여? 그게 말이라고 하는가?”
“자네는 살인미수에 해당되는 죄를 지었어. 감방에 가서 욕 좀 봐사 쓴다구.”
“알아서 하십시오. 적반하장이라더니 장인어른을 두고 한 말이구만요.”
“허헛 참, 갈수록 태산이구만. 자네는 감방을 가봐야 속을 차릴랑갑네.”
“맘대로 하십시오. 장인어른이 그렇게 말씀하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고소는 제가 먼저 하겠습니다. 간통죄로 말입니다.”
“자네가 간통한 현장을 보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리고 나 자네 장인 안 할랑께 장인, 장인 하지 말소!”
장인과 사위가 서로 법을 들먹이며 으름장을 놓고 있었다. 어쩌자고 장인과 사위가 원수가 되어 서로 잡아먹겠다고 이 난리인가. 전생에 원수가 되었는데 현생에 다시 원수가 되었단 말인가. 서로 물고 뜯고 싸워서 현생에 원수가 되면 다음 생인 내생에도 원수가 될 게 아니겠는가.
“나는 자네를 용서할 수가 없네.”
“저도 용서할 수가 없구만이라.”
“조금도 반성의 기미가 없구만. 저런 불상놈한테 딸을 준 내가 잘못이지.”
노인이 성큼 일어났다. 그리고 기어코 못 박듯 한 마디 내던졌다.
“이제 그만 헤어지세. 사람한테 총 쏘는 짐승 같은 놈하고 내 딸이 살 수는 없으니께.”
그때 함께 온 회진댁의 큰오빠가 노인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버님. 저랑 잠깐 좀 얘기 좀 합시다이.”
그러자 노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얘기는 무슨 얘기? 일 없응께 그냥 가자.”
노인은 먼저 승용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면서 아들을 채근했다. 그러자 회진댁의 큰오빠는 차분한 목소리로 타잔을 어르기 시작했다.
“형님. 얼름 형님이 잘못했다고 빌어버리시오.”
그러나 타잔의 반응은 냉랭했다.
“아, 자네 아부지가 고소하것다고 난리 아닌가?”
타잔이 회진댁의 큰오빠를 노려보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나는 죽었으면 죽었지 내 여자가 바람피는 꼴은 못 보는 사람이니까 그리 알어!”
“잘못했다고 빌어버리면 될 일을 으짠다고 그라시오?”
“내가 왜 총을 쏜지 아는가? 죽일려고 했것능가? 그게 아니여. 내가 사람이나 죽이는 짐승인가? 그게 아니여. 나는 자백만 받으려고 한 것이여. 그라고 자백만 하면 용서해 줄라고 한 것이여. 그란디 끝까지 버틴디 내 마음이 으쨌것능가? 환장해불제. 사람이 말이여. 이 세상을 삼시로 으띃게 죄 안 짓고 살 수 있당가? 그라제마는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빌어사제 끝까지 버티면 으띃게 하것능가? 끝장날 수밖에 없는 거 아니것능가 그말이여. 그런 거 보면 자네 동생도 보통 독한 여자가 아니여. 내가 그렇게 뚜드러 패보기도 하고 총까지 들이댐시로 자백하락해도 끝까지 버티는 것을 보면 독종이랑께, 독종!”
회진댁의 큰오빠가 더 이상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판단했는지 홱 돌아서서 몇 발짝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며 한 마디 던졌다.
“실은 일을 마무리 해보려고 왔는디 안 되겠구만요. 모든 일은 형님한테 책임이 있는 것잉께 그리 아시요.”
“고소를 하든지 감방에다 처넣든지 알아서 혀! 만약에 나를 감방에 안 처넣으면 내가 가만 안 있을랑께 꼭 감방에 처 넣어!”
타잔은 회진댁의 친정아버지와 큰오빠가 탄 승용차의 뒤를 보고 악을 바락바락 써대고 나더니 털퍼덕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일어나시지요.”
내가 손을 잡아끌었지만 바윗덩어리처럼 꿈쩍도 않더니 하늘을 보고 헛웃음을 쳤다.
“헛허허! 참말로 더런 놈의 세상을 다 보것네. 죄 진 놈이 오히려 댑대 고깔을 하니 말이여.”
참으로 잘 나가던 국사봉 농장의 분위기가 갑자기 엄동설한처럼 변해버린 꼴이었다. 날마다 교육생들과 이름 있는 강사진들이 찾아들어 산중발복이 된 듯 사람들로 북적였던 국사봉 농장이었던 것이다. 뿐인가. 사냥꾼들도 몰려들어 활기차고 재밌는 국사봉 농장이 하루아침에 서리 맞은 배춧잎처럼 되어버린 거였다.
일이 묘하게 꼬여가고 있었다. 회진댁이 바람을 피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오히려 당하는 쪽은 타잔이었다.
“실은 두 사람이 바람피운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구만요,”
이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꾹 참았다.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간 꼼짝없이 증인으로 법정에 서게 될 것이었다.
그나저나 친정집으로 도망간 회진댁은 친정아버지에게 절대 자기는 외간남자와 바람피운 적이 없다고 극구 변명하고 있을 터였다.
네가 한 말은 틀림없는 사실이제?
아부지두······. 제가 미쳤어요?
그라믄 으짠다고 박서방이 저 난리라냐? 뭔가 짚이는 데가 있응께 총까지 쏘는 게 아니냔 말여.
친정아버지는 아무래도 딸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표정이다. 그러자 회진댁은 펄쩍 뛰면서,
아부지! 아부지는 딸이 시방 거짓말 한다고 생각하시오? 그 놈은 짐승이랑께요, 짐승!
그녀는 아직도 푸른 멍이 가시지 않는 턱과 눈두덩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며 눈물을 떨구었다.
알았다. 내 그 놈을 고소혀서 반드시 콩밥을 먹이마. 너도 그놈하고는 영영 헤어질 것을 각오해라. 여차했으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새끼를 쥑일 뻔 하지 않았더냐.
나는 회진댁의 그 뻔뻔스러운 얼굴을 상상해 보았지만 그렇다고 타잔 또한 잘했다고 볼 수 없는 일이어서 답답할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찰서에서는 타잔을 부르는 낌새가 전혀 없었다. 전화로 나와 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체포하기 위해 직접 찾아오든지 하는 일이 없었다. 나 역시 참고인으로 부르는 일조차 없다보니 그쪽에서 큰소리만 쳤지 이렇다 할 조치를 취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럭저럭 보름 남짓 지났는데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아무런 낌새가 보이지 않자 대신 초조해지는 쪽은 타잔이었다. 무엇보다도 잠시 문을 닫은 흑염소 교육원이 문제로 담당 공무원이 안달이었다.
“아니, 언제까지 교육원 문을 닫을 셈이요?”
“아 집구석이 난리가 나뿌럿는디 믄 교육은 교육이여?”
“계획서대로 안 하면 안 된단 말씀입니다. 내려준 교육비는 어떻게 정산하실라고 그러십니까?”
군청 공무원은 서류뭉치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말했다.
“아, 조금만 참고 있으랑께 그러네. 집안 일이 수습되어야 일을 하든지 말든지 하제.”
“지금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라시오? 불과 몇 달 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군청공무원은 얼굴이 사색이 되어가고 있었지만 타잔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도에서도 크게 관심을 갖고 있단 말씀이요. 교육장만 짓는데도 예산이 자그마치 3억이 들었는데 일이 잘 안 돌아가면 제가 감사 받을 때 지적을 받는단 말씀입니다.”
“알았어. 다음 주부터 교육신청이 오면 진행을 할라네.”
“다음 주까지요? 당장 낼 부터라도 하셔야 된다니깐요. 귀농교육을 활성화 시키라고 독촉이 심하다니까요.”
“알았어.”
공무원이 다녀간 뒤로 타잔이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법능 화사님. 아무래도 당분간 교육원 좀 맡아줘사 쓰것소.”
“제가 할 줄 아는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림이나 그리는 주제에······.”
나는 기가 막혀 말이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어려울 게 하나도 없소. 외부강사가 와서 다 강의를 할텐께 그저 입소하고 퇴소할 때 신경을 좀 쓰면 될 것이요.”
“시방 제가 그럴 처지가 못 되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나는 화가 나듯 목청을 높이며 투덜거렸다. 이곳 국사봉까지 온 것은 어디까지나 넉 점의 탱화를 그리기 위해서였지 이래저래 시간을 빼앗기려고 온 것은 아니었다.
“사정이 그렇게 되다봉께 이렇게 부탁을 하는 것 아니것소. 당장 애 엄마하고 이혼을 해사쓰것단 말이요.”
타잔이 자신의 가슴을 몇 차례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그러고 보니 타잔은 아예 이번 기회에 회진댁과의 인연을 싹둑 잘라버릴 기세였다.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거리자 타잔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내 손을 으스러져라 꽉 잡았다.
“철식이 도움을 받아감시로 몇 주만 고생하면 될 것이요.”
타잔은 뭔가 결단을 내고야 말겠다는 듯 차를 몰고 밖으로 나갔는데, 아마도 변호사를 만나 의논을 할 요량인 것 같았다.
그렇게 타잔이 사라지고 난 뒤로 나는 영락없이 주인행세를 하게 되었다. 교육을 받겠다고 신청서를 접수하는 교육생들을 외면하거나 퇴짜를 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일이 어디 한 두 가지겠는가. 교육 외에도 입소서류, 교육증 발급, 교육관련 문서접수 및 발송 등 하나하나 해야만 했다. 게다가 교육원생들의 삼시세끼를 해결해야 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군청 담당자의 소개로 읍내에서 세 사람이나 데려와 밥과 반찬을 만들도록 했다. 그런데 타잔이 이혼을 서두르고 있는데도 여강은 전혀 반응이 없었고 오히려 태연자약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오라버니가 당장 구속될 상황인데다가 교육원 운영이 발등에 불처럼 떨어졌는데도 왜 가만히 있을까 싶었는데, 마침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음모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날 밤, 나는 우연찮게 그녀의 전화내용을 엿듣게 되었다.
“친정아버지가 고소하려는 것을 결사적으로 막고 있다고요? 고소하면 당장 구속될 뿐 아니라 감방 생활도 많이 하게 된다구요? 언니! 언니를 때린 건 백 번이나 잘못했다고 하지만 고소까지 해야 되겠는가요? 그럼요, 언니가 막아야지요. 두 애 들도 생각하셔야지 어쩐다고 끝장들을 볼라고 그런데요?”
하고 말하는 것이었는데, 과연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갈피를 못잡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몹시 밝아졌다.
“언니!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구속되지 않고서도, 그러니까 법의 심판을 받지 않아도 좋은 방법이 있다구요? …… 그게 뭔대요? 말씀을 해보시라니까요? 네? 만나서 얘길 하자구요? 당장 그리로 갈께요. 언니! 그런데 우리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한 말, 틀림없지요?”
다음 날 그녀는 택시를 부르더니 국사봉 농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일손이 잡히지 않아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교육원 주변을 걸었다. 철식이가 흑염소 막장을 한 바퀴 들러보고 오더니 걱정을 태산같이 늘어놓았다.
“원장님이 경찰한테 잡혀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된대요?”
그는 타잔만 믿고 흑염소 농장을 꿈꾸고 있는데, 일이 잘못되면 도로아미타물이 될까봐 그것을 더 걱정하는 눈치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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