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생들은 수육을 먹다말고 두 사람의 얘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누구나 흑염소를 직접 키워서 가게 하나 차리면 충분히 먹고 사는 데는 지장이 없겠다고 공감을 하는 눈치였다.
그 때 타잔이 조용히 하라는 손짓을 하고나서 입을 열었다.
“저도 한 때는 흑염소를 팔기 위해 전라도 여러 곳의 5일장을 다닌 적이 있었구만요. 문제는 흑염소를 키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판로가 문제지라. 판로만 된다면 걱정 없는 것이 축산입니다. 제가 세를 내 준 가게에서는 하루에 두 마리 정도 소비하고 있구만요. 그러나 이제 반년 밖에 되지 않아서 정확하다고는 볼 수 없구만요.”
“한 달이면 60마리, 일 년이면 엄청나겠네예. 마 그 정도 팔린닥카믄 부자가 될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껴.”
경상도에서 온 교육생이 물었다.
“그렇다고 봐야겠지라. 암튼 생산에서 판매까지 해야만 소득이 있다고 봅니다. 설령 흑염소 가격이 땅에 떨어질 때도 버틸 수가 있구만이라.”
타잔이 여러 교육생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모두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제야 숟가락을 들고 국물부터 마시기 시작했다.
“그나저나 이참에 흑염소한테는 구제역이 발생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날벼락을 맞을 뻔 한 것 아닙니껴.”
“천만다행이고 말고요.”
“그런데예, 구제역 사태가 경북 안동에서 터졌을 때 정부에서는 역학조사를 하기는커녕 베트남을 다녀온 축산인 세 사람을 지목하고 그들이 방역대책에 따르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껴. 그러나 2011년 6월 6일 국회 공청회에서 충남대 수의학과 서상희 교수는 세계식량기구가 지정한 국제 구제역 표준실험실의 조사결과를 제출했는데, 안동발 구제역 바이러스는 베트남 바이러스와 유전학적으로 일치하지 않았닥 캅니더. 과학적 근거에 의해서 정부의 새빨간 거짓말이 죄다 드러난 것이지요.”
“그래도 정부에서는 보상금을 주지 않았을까라?”
타잔이 되물었다.
“그게 정상적으로 키웠을 때와 비교해 보면 70% 수준입니더. 모든 축산농가가 부채를 안고 지내는데, 살처분 보상비 받아가지고 가축을 입식한 후 정상화되기까지는 2년 정도 걸리지예. 정부에서는 온갖 개방은 다 해놓고서 구제역 같은 사태가 일어나면 쥐꼬리만한 보상금으로 달래는 거 아닙니껴.”
사내는 자신이 말해 놓고도 흥분이 되는 지 소줏잔을 원샷으로 거푸 들이켰다.
“구제역으로 인해 안동 지역경제가 말이 아니었지라?”
“말이라고 하십니껴. 하회마을을 찾아오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어지고 ‘안동한우’ 브랜드 때문에 식당이 몹시 북적거렸는데 한순간에 썰물처럼 활량하게 돼아뿐기라요. 나도 그런 장면을 보고 흑염소 사육을 결심한 거 아닙니껴.”
“소, 돼지는 구제역 파동으로 난리를 겪었는디도 흑염소는 한 군데도 살처분한 곳은 없었지라우.”
“그런데 안동시에서도 구제역으로 인해 희생된 축생들의 넋을 기리겠다고 그해 12월 중순경에 ‘합동축혼제’를 시청 시민회관 앞 광장에서 열었어예. 그날 가축들이 좋아하는 무와 배추, 사료, 건초 등을 제상에 올려놓고 지낸 거 아닙니껴.”
그 때 누군가가 그 대화에 끼어들었다.
“안동시와 여러 종교단체들은 살처분한 축생들이 가엽다고 축혼제를 지내고 있는 사이, 한쪽에서는 구제역이 인체에 해가 없다며 소비를 촉진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등만요. 신문을 보니까 그렇드라구요.”
“맞아예. 그게 이율배반적인 일이 아니고 뭐겠습니껴.”
점심참에 구제역 얘기로 시간이 조금 지나 교육원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다음 날은 퇴교 전날이어서 그런지 교육생들이 다들 잠잘 생각을 하지 않고 모여 있었다. 하기야 어느 교육생이건 일정을 마친 마지막 날 밤에는 새벽녘까지 대화가 이어지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제2막 인생을 꿈꾸는 그들에게 체험이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는 많은 정보거리를 주기 때문이었다.
“염소 막사? 그거 내가 전문이니까 자재 값만 받고 지어주겠소.”
장창구 노인이 염소 막사를 새로 지으려면 큰돈이 들거라고 경상도 사내가 걱정을 하자 선뜻 나섰다.
“정말이라예?”
“이래봬도 나는 진정한 노가다꾼이여.”
“고맙십더.”
밤새껏 얘길 나누다보면 서로의 고통도 털어놓기 마련이었는데, 의외로 쉽게 일이 풀리는 경우도 많았다. 누구나 한 가지씩은 솜씨가 있어서 상호 보완하는 일도 더러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교육생들이 다 떠나고 난 후 타잔은 군청에 가서 축산업협의회 회의를 참석해야 한다며 농장을 나갔다. 여강이도 물건을 살 것이 있다며 타잔과 함께 나가는 바람에 밤낮으로 사람들이 들끓었던 농장이 절간처럼 조용해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고요였다. 적어도 다음 교육생이 올 때까지 사흘간은 개미 새끼 하나 보이지 않을 만큼 조용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이럴 때 작품에 열중해야할 일이었다. 게다가 논문을 쓴답시고 일주일이면 한 차례씩 찾아오는 전문대학 민교수란 사람이 회진댁과 무슨 일인지 함께 나갔으므로 철식이만 남아 있었다. 그는 흑염소 막사로 올라가는 쇠사다리를 고치기 위해 용접을 하고 있었다. 쇠토막이 촛농처럼 녹아내리면서 쇠와 쇠를 붙게 할 때마다 불꽃이 튀었다. 모친이 홀로 살고 있다는 고향마을에 뒷산 자드락밭 몇 백 평과 겨우 식량을 할 수 있는 400평의 논배미가 밖에 없다던 그가 행복한 귀농가를 부를 그날은 언제쯤일까. 인생 2막을 꿈꾸기 위해 그는 천 여 마리의 흑염소 떼를 몰고 산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나는 천천히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 넉 점의 탱화도 거지반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무녀가 부탁한 후불탱화 한 점을 그리고 나면 일단 홀가분한 기분을 맛볼 터였다.
문득 남미륵사의 대우 스님이 떠올랐다. 남미륵사 만불전의 천정화를 그릴 때 대우 스님이 저녁 공양을 마치고 들려주던 얘기가 떠올랐다.
어느 날 충북 쪽에 볼 일이 있어 출타했다가 산기슭에서 됫병짜리 소주병을 먹고 있는 사내를 발견했다. 그는 만취한 상태인지라 걸음도 제대로 걷지 못하면서도 소주병을 거꾸로 치켜들며 마셔대고 있었다.
“이거 보시오. 젊은 사람이 그렇게 술을 마셔대면 되겠소? 몸도 생각해야지.”
그러자 그 사내는 땅바닥에 털버덕 주저앉으며 대우 스님을 멀거니 쳐다보았다. 머리칼이 수북하게 자랐고 소매를 걷어붙인 잠바는 땟국이 질질 흘렀다.
“죽을라고 맘먹은 사람이 술이 대수겠수?”
그는 이미 삶을 포기한 사람처럼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쇠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더 낫다고 하잖소. 술로는 어떤 일도 해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내버려 두시유. 세상을 포기한 사람이니까.”
“가서 사연이나 들어봅시다. 집이 어디시오?”
그의 집은 혼자 살고 있는 탓인지 엉망진탕이었다. 라면봉지가 여기저기 널려 있을 뿐 쌀 한 톨 없이 살고 있었다. 당장 대우 스님은 가스렌지와 냉장고, 쌀, 김치 등 우선 먹을 수 있도록 조치했다. 그리고 소를 세 마리 사 주었다.
“소를 키우되 쇠죽을 먹여서 키워보시오. 그러면 더 비싼 값으로 팔릴 수가 있을 것이요.”
대우 스님은 그와 헤어진 후 하루에 다섯 번씩 전화를 걸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소를 15년간 키웠고, 끝내는 성공해서 지금은 3천 마리의 소를 키울 뿐 아니라 여러 차례 TV에 성공사례로 방영까지 했다.
“그 사람을 시작으로 불우한 사람들에게는 소를 한 마리씩 사서 줍니다. 아마 30여 명 정도가 소를 키우고 있습니다.”
대우 스님이 곁에 서서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사방은 고요했다.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풍만한 잎사귀들이 뒤채며 속살거리듯 움직였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임도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상부까지는 등산로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임도의 끄트머리에 웬 지프차가 있었는데 낯익어 보였다. 연구논문을 쓰기 위해 한 달에 한 두 차례 다녀가곤 하는 지방대학 축산과 민교수의 지프차였는데, 차 안에서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말소리 또한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교수님. 애들이 치킨보다도 산에서 키운 닭을 잘 먹을 걸 보니 다행이에요.”
뜻밖에도 회진댁의 목소리였다.
“그보다도 엄마의 정성 같은 걸 더 느끼는 것 같애요. 회진댁이 올 때마다 애들이 그저 좋아하는 걸 보면 얼마나 흐뭇한지 모르겠습니다.”
“애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교수님이 이혼을 한 바람에 엄마 없이 크니까 안쓰럽다는 생각만 들더라구요.”
“그런데 타잔이 알면 난리가 날 것 같은데, 이제 저도 농장엘 그만 와야 할까 봐요.”
교수는 회진댁과의 관계가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흑염소를 연구하겠다고 다녀가는 데 남편인들 뭐라 하겠어요? 그냥 맘 편히 다니세요.”
그러나 나는 밤에 잠을 뒤채지 않을 수 없었다. 낮에 보았던 믿기지 않는 장면 때문이었다. 나는 슬그머니 차량을 피해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문득 나도 모르게 뒤를 무심코 내려다보는 순간, 못 볼 것을 보고만 것이었다. 지프에서 두 사람이 내린 것 같더니 바로 곁에 있는 굴참나무 밑으로 쏜살같이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굴참나무는 칡넝쿨로 우거져 있어서 흡사 동굴처럼 보이는 곳으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설마하니 더위를 피해 칡넝쿨 속으로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그런데 모른척하고 몇발짝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
회진댁의 짧은 비명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두 남녀는 말없이 부둥켜안고 서로 혀를 나누었을 것이고, 이윽고 남자의 손이 여자의 젖가슴에서 배꼽으로, 배꼽에서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갔을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목덜미를 끌어당겼을 것이고, 남자는 여자의 바지를 벗겨 내렸을 것이었다.
“아, 아!”
나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남의 비밀을 아는 순간부터 고통은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자꾸만 그 장면이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어느 순간 회진댁의 해맑은 얼굴이 가면을 쓴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일주일 남짓 지나서었다. 교육생들이 일정을 모두 마치고 출소를 한 날이었는데 외출나간 회진댁이 돌아오지 않자 타잔의 역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이 사람이 해가 다 저부렀는디도 어딜 가서 아직까지 집에 안 돌아오고 있당가?”
그는 뭔가 이상한 느낌이 있었는지 김치 한 가닥에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기까지 하며 회진댁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아이들 밥 차려주고 숙제 도와주는 일은 여강이 알아서 했기 때문에 전혀 불편은 없는데도 고함까지 지르더니 그녀를 다그쳤다.
“여강이 너도 네 올케언니 어디 간 지 모른다구? 어딜 갔는지 핸드폰도 안 받고 있당께.”
“금방 돌아오시겠지요, 뭐.”
그런데, 그 순간 타잔의 입에서 어금니를 오도독 가는 듯한 살벌한 말이 흘러나왔다.
“이년, 들어오기만 해봐라. 죽여버릴탠니께.”
“오라버니.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러세요?”
“넌 몰라도 돼!”
“무슨 일이 있어요? 올케언니한테 무슨 일이 생겼느냐구요?”
“술이나 더 가져와!”
타잔이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이미 한 병을 다 마셨는데도 술을 더 갖다 달라고 다그쳤다.
“오라버니답지 않게 무슨 일이세요?”
그녀가 퉁명스레 대하면서도 술을 더 갖다 주자 이번엔 아예 다모토리로 마셔댔다.
그런데 밤이 이슥해서였다. 타잔 부부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야, 이년아! 어서 털어 놔.”
타잔의 목소리는 강했다.
“당신, 뭣을 털어놓으라는 것인지 몰것소이?”
“솔직히 고백하면 용서할 수도 있어. 그러니 좋은 말 할 때 털어 놔.”
타잔이 거듭 재촉했다.
“그냥 눈이나 붙이세요. 남 잠 못 자게 어지간히 볶으고······.”
회진댁이 아무렇지도 않는 일을 가지고 성가시게 한다는 말투였다.
“내가 시방 모든 일을 다 알고 물어보고 있는디 계속 오리발을 내놓을 것이여?”
자백이든 고백이든 어떤 말을 듣지 않고서는 한 발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내가 뭘 했다고 날 잡아먹으라고 그러세요?”
“이년이 그래도 오리발을 내놓네?”
“으이고, 징상스러운 인간······.”
회진댁이 울부짖었다. 그런데 다음 순간이었다.
“윽!”
뭔가 내리치는 듯 둔탁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녀의 입에서 짧게 비명소리가 흘러나왔다.
“쥑여라······.”
“그래, 이년아 죽어라!”
다시 타잔의 주먹이 그녀의 면상을 내리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그녀의 입에서는 비명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되게 맞은 모양이었다.
“아,부,지이······잉잉잉.”
이번엔 잠에서 깨어난 두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너희들은 저 방에서 잠이나 자!”
“아부지, 엄마 좀 때리지 마세요, 잉잉잉.”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더욱 커지는가 싶더니 이번엔 여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다가 언니를 죽이겠어요.”
“저런 년은 죽어도 싸다.”
“그렇다고 폭력을 쓰면 어떡해요? 어머나, 저 피 좀 봐!”
이때 타잔이 우당탕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더니 마당 한가운데 퍼질고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그는 땅바닥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다가 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학교 보내기 위해 밖으로 나온 회진댁의 얼굴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예 눈을 뜨지 못할 만큼 푸른 멍이 눈 밑에 자리하고 있었고, 입술은 터져 있었다.
그녀는 계란으로 눈두덩을 문질러대며 가끔씩 흐느끼고 있었다. 간밤에 밤새도록 타잔으로부터 들볶기다가 기어코 얻어터지고만 회진댁은 억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그녀는 푸른 멍을 얼굴에 매단 채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염소 새끼막에 들어가 새끼들을 돌보았다. 남편에게 죽도록 얻어맞고도 말 한 마디 대꾸하지 않은 채 죽으라면 죽은 시늉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타잔은 여전히 분을 삭이지 못하고 아예 일손을 놓아버리고 있었다. 그리곤 국사봉 꼭대기까지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했다. 밑바닥을 모를 분심이 치솟아오를 때마다 막혀오는 숨을 내쉬느라 가쁜 숨을 내쉬다가 깊은 숨을 내쉬기도 했다.
하지만 사단은 기어이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터졌다. 이틀 동안에도 타잔은 회진댁에게 실토를 하면 용서해주겠다며 들볶는 눈치였다. 아침이면 두 사람 다 잠을 제대로 못잔 탓으로 눈두덩이 부을 대로 부어있었다.
그런데 이틀이 지났을 때 초저녁부터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물건을 내던지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드디어 회진댁이 앉아서 맞고만 있지 않겠다는 듯 대드는 눈치였다.
“아나, 쥑여라! 이 짐승만도 못한 놈아!”
“이 년이 내 멱살을 다 잡네!”
“그래, 이놈아! 나 그 교수하고 붙어먹었다! 어쩔래!”
독기를 품은 회진댁이 죽자 사자 덤비는 모양이었다. 아무래도 무슨 사단이 일어날 것 같아 밖으로 나갔다. 그 순간,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타잔이 문짝을 넘어뜨리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회진댁이 타잔의 배 위로 올라타더니 다시 멱살을 쥐어흔들며 나 쥑여, 나 쥑여, 하고 울부짖었다. 회진댁의 발광에 타잔은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둔 채 헛웃음만 치는가 싶더니 벌떡 일어났다. 그녀가 가랑잎처럼 픽 옆으로 쓰러졌다.
“이 년이 손톱만치도 반성하기는커녕······.”
쓰러진 회진댁을 힐끔 내려다보던 타잔이 방 안으로 성큼 뛰어 들어가더니 엽총을 들고 나왔다. 엽총의 총구를 회진댁의 가슴팍을 향해 쏘려는 자세를 취하는 순간, 그녀는 오른쪽 어깨를 움직이며 낮은 포복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제발 저 총 좀······.”
그러나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잠금장치를 푼 타잔이 방아쇠를 잡아당기고 말았는지 ‘타아앙!’ 하고 총소리가 터져 나왔다.
“오라버니이!”
여강의 악 쓰는 소리가 총소리만큼 크게 들려왔다. 그녀는 타잔의 손에 들려진 총을 빼앗아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진짜 죽여 버리고 싶어!”
핏발선 눈으로 회진댁을 날카롭게 쏘아보던 타잔이 이번엔 연장공구가 가지런히 걸려 있는 곳에서 한 자루 낫을 꺼내들더니 울부짖었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옴짝달싹도 하지 않는 회진댁의 등에 냅다 꽂을 기세였다. 이미 총을 맞고 죽었을지도 모를 회진댁에게 다시 낫을 꽂겠다고 울부짖는 타잔의 모습은 악마 그것이었다.
“아아! 미치고 환장하것네!”
참으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총과 낫의 흉기가 삼라만상이 이제 서서히 잠들려는 시각에 사람의 목숨을 끊겠다고 광기를 부리는 모습이었다. 타잔은 괴성을 지르다가 낫조차 내동댕이치고는 그대로 고꾸라지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땅바닥을 손바닥으로 때리다가 머리를 짓찧으며 울부짖는 그 모습 또한 지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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