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잔은 교육생들의 활기를 불어넣어준다며 내게 교육생들이 바꿔질 때마다 한 차례씩 강단에 서줄 것을 요청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가 농업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무슨 말을 한단 말입니까?”
한사코 거절하는데도 타잔은 막무가내로 졸랐다.
“아, 딱딱한 흑염소 얘기만 하다보니까 재미가 없당께요. 그저 아무 얘기라도 좋으니까 좀······.”
난감한 일이었다. 사흘에 혹은 나흘에 한 차례씩 해달라는 타잔의 요청을 거절하기가 어려워 끝내 허락을 하고 말았다.
교육생들은 내가 불화를 그린다고 하니까 신기한 듯 내 얼굴을 요모조모 뜯어보는 것 같아서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타잔은 교육생들에게 나를 그럴 듯하게 소개를 했다.
“에또, 여러분들이 지루할 것 같은께 이번 시간에는 법능 선생님을 한 번 모셔보도록 하것습니다. 이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불모, 즉 부처님을 그리시는 분이구만요. 절에 가면 각 건물마다 탱화며 벽화가 그려져 있는디 바로 그런 그림을 그리는 분이다 그말 인디, 이런 분 만나보는 것도 처음이지요? 나는 불교신자가 아니구만요. 또 불교를 알리고 포교활동을 위해서 이 자리에 법능 화사 이분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니까 참고하시고 재밌는 얘기를 경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이럴 때 불교에 대한 얘기를 꺼내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싶어 오래 전 동광사에서 윤 모 교수가 들려주었던 얘기를 해주었다. 어쩌면 이것이 불교를 알리는 일이기도 했다.
“지게를 짊어지고 농사를 짓던 시절의 얘깁니다. 그러니까 상당히 오래 전의 얘긴데요, 동광사란 절 옆에는 형무소가 있었고 그 부근에 배처사란 사람이 살고 있었답니다. 자식을 많이 낳아서 일곱이나 되었는데…….”
일곱 자식을 낳았다는 말에 교육생들이 두 눈을 휘둥그레지다 못해 혀까지 내밀며 왁자하게 웃었다.
“자식이란 키울 때 고생해도 많으면 좋답니다. 암튼 옛날에는 많이 낳아서 키웠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 때에는 피임도 않고 그저 생긴 대로 낳고 살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배처사는 밑이 째지게 가난한 사람이어서 역전에 나가 지게 품팔이로 근근이 살아가고 있었답니다. 그가 세를 들어 사는 집주인 박노인은 아주 부자여서 집도 여러 채 되었지만 논밭도 많아 떵떵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박노인이 배처사의 살아가는 것을 보니까 한 칸짜리 방에 일곱 명이나 되는 자식들과 오골오골 살면서도 항상 얼굴이 밝더라는 겁니다. 게다가 부인이 막내를 낳고나서는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 앓는 소리가 밖에까지 흘러나오고, 이제 코딱지나 겨우 뗐을 어린 자식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온갖 잡일을 하고 지내는 것이어서 한심스러울 정도인데도 배처사는 늘 얼굴이 평화롭더라는 겁니다.
박노인은 참 신통할 일이다, 생각하며 유심히 관찰을 해보니까 배처사의 입에서 늘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떨어지지 않더랍니다. 아내가 약 한 첩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시난고난 앓아누워 지내는데도 아내더러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니 박노인이 보기에 배처사야말로 좀 부족한 데가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하루는 배처사가 방에서 나오다가 그만 문지방에 머리를 되게 찧었는데, 어찌나 세게 찧었던지 쿵 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런데 배처사가 어쿠, 하고 비명소리를 내고나서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중얼거리더랍니다. 박노인은 그 모습을 보고 어떤 신선한 충격 같은 것이 느껴져서 배처사를 불렀습니다.
‘어야, 나하고 얘기 좀 하세.’
그러자 배처사는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머리를 조아리더란 겁니다. 박노인은 며느리를 시켜 맛있는 음식상을 차려놓고 물었습니다.
‘자네가 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어렵게 사는 것 같은데 뭐가 감사할 일이 있어서 맨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사는가 몰것네. 자네 부인이 아파서 끙끙거려도 감사하다, 문지방에 머리를 찧어도 감사하다고 하니 그것이 어찌 감사할 일이던가? 자네 얼굴을 보면 항상 근심걱정이라곤 없는 사람처럼 보여서 내 그것을 묻고자 불렀네.’
그러자 배처사는 ‘아, 그야 감사하니까 절로 감사하다는 말이 나오지요. 마누라가 골랑골랑해도 죽지 않고 살아있응께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요? 만약에 마누라가 덜컥 죽기라고 한다면 어린 자식들은 에미 없이 불쌍하게 될 것이고 제 신세는 뭐가 되겠습니까요? 이마빼기를 되게 찧었지만 머리 구조가 잘 되어서 아프기만 할 뿐 아무런 일이 없으니 이 또한 다행한 일이어서 감사한 일이지요. 땅뙈기라곤 손바닥만한 것조차 없지마는 지게라도 지고 나가서 한 푼이라도 벌어올 수 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할 일이 있겠습니까요?’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박노인은 비로소 눈이 번쩍 뜨여지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자기 자신은 먹고 사는 데 걱정이 없을 만큼 부자인데도 감사하는 마음은 쥐뿔도 없고, 이것도 불만, 저것은 걱정, 그렇게 살아왔다는 것을 느낀 박노인은 ‘내가 지금까지 세상을 잘못 살아왔구나.’ 싶었답니다. 배처사에 비해 감사할 마음을 몇 천배 더하고 살아야할 자신이 이 일 저 일 불만투성이로 살아왔다는 점에서 크게 느낀 것이지요.
박노인은 배처사 앞에 무릎을 꿇고 ‘정말로 내가 자네에게 감사하네. 자네는 내 아들과 비슷한 나이지만 내가 스승으로 여기겠네.’ 하며 절을 하더랍니다. 배처사도 황급히 일어나 맞절을 하며 ‘이러시면 안됩니다.’ 해도 절을 마친 박노인은 며느리를 불러 먹을 갈게 한 후, 붓으로 증서를 써주었습니다. 어디에 있는 논과 어디에 있는 집을 준다는 증서를 쓴 박노인은 ‘이게 다 나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자네에게 보은의 뜻으로 주는 것이네.’하고 말하더란 것입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배처사가 ‘천부당만부당하는 일입니다. 제가 이렇게 사는 것은 제 복이 이 정도여서 그런 것이지 내 복이 아닌 것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절대 받을 수가 없으니 거두어 주십시오.’ 하고 한사코 거절하더랍니다. 그러자 박노인은 ‘자네는 이것을 받을 충분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네.’ 하며 기어이 건네주고는 한약방에서 한약 두어 첩을 지어 부인에게 전하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부인은 산후조리가 잘 되어 말끔히 나았는데, 그 후로도 박노인은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했는가 하면 취업을 시켜주기도 하고 얼마간 현금도 쥐어주곤 했답니다.”
내 말이 끝나자 교육생들은 박수를 쳐대며 좋아했다.
“거 참, 인생살이 한 수 배웠수다.”
“나도 당장 집에 가면 그렇게 살아야 쓰것구만요.”
누구나 한 마디씩 반응을 보이는 것이어서 그 얘기를 할 때마다 정작 신나는 사람은 나였다. 수업 시간에 수업은 하지 않고 얘기를 해주면 좋아하는 모습이란 어린이나 어른이나 하나 다를 게 없었다. 어쨌든 나는 묘하게도 강사 아닌 강사 신분으로 교육생들 앞에 서는 일이 자주 있게 되었는데, 막상 해보니 많은 사람을 접하는 것도 그리 싫은 일은 아니었다.
지난주에는 특이하다면 특이한 교육생들이 입교했다. 그들은 산전수전을 다 겪었는지 진지하게 교육을 받았는데, 교육받던 첫날 7명의 교육생들이 개별적으로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는 토론시간이 있어 흥미로웠다.
이 과장이라는 사람은 군청 공무원으로 퇴직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사람이었다. 사무관 승진을 하지 못해 만년 계장으로 살아온 그는 퇴직금을 일시불로 타지 않고 연금으로 죄 돌려놓아 사는 데는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도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찾아온 사람이었다. 굳이 나이 들어 축산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욕심으로 밖에 비처지지 않았지만,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 막내 딸 학비가 한 달이면 2~3백만 원씩 들어가다 보니 절박한 처지가 돼버린 것이었다.
교육생 중에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문대학 교수를 지낸 민 교수란 사람도 있었다. 비록 시골에 있는 전문대학 교수이긴 했지만 학생 수가 3천 명이나 되는 학교였다. 더구나 그는 태권도과 교수였기 때문에 학생들과 함께 베트남, 일본, 대만 등지를 다니며 국위를 선양하는 일이 많았고, 국내에서도 온갖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 그런데 3년 전부터 학교 이사장으로 있는 설립자가 자주 법정에 서는 일이 잦았다. 새로 임용된 수 명의 교수들로부터 각각 1억씩을 수수했다는 죄목이었다. 그러더니 끝내 거액의 공금횡령죄까지 추가되면서 법정구속이 되고 말았다. 교과부에서 감사가 내려오는가 싶더니 몇 달 뒤에는 학교 폐쇄 명령이 내려졌다. 몇 달 동안 동료 교수들과 천막농성을 벌였지만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이었다. 재적생들은 인근대학의 동일학과나 유사학과로 떠나갔고 하루아침에 학교는 찬바람만 씽씽 불었다.
대학교가 폐쇄되자 민교수의 실직은 당연한 일이었다. 때마침 뭔가 구원의 줄을 잡아보려고 국회의원 선거에 뛰어들어 참모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시자 몇 푼 수당을 받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자신이 미는 사람이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더라면 3급 별정직 보좌관은 따 놓은 당상이었지만 그만한 복이 그에겐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도 갈 곳은 있었다. 그의 늙은 노모는 시골에서 혼자 전답을 벌며 살고 있었는데, 선산발치에 천여 평의 귀한 밭이 있었다. 외삼촌이 2만 평 군유지 땅을 임대해서 흑염소를 키우고 있다는 사실도 큰 힘이 되었던 터라 흑염소를 키워보겠다고 교육원을 찾아온 거였다.
읍내에서 은행나무 술집을 운영하다가 교육생으로 들어온 미혼여성도 있었다. 이태 전 어느 가을 날, 노신사와 그를 모시는 몇 사람이 술집을 찾아왔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술에 취한 노신사는 노래 한 곡을 부르고나더니 밑이 째지게 가난한 나머지 월사금을 내지 못해 중학교 때 집을 나갔다는 과거를 들려주었다. 그 때 한없이 이어지는 강둑을 걸으면서 불렀던 노래가 ‘봄날은 간다’였다. 그렇게 고향을 등진 후 미군 하우스 보이로 일하기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노신사는, 사우디 사막에서 농장을 일궈 ‘사막 속에서 기적’을 일으켰다고 했다. 무 배추를 심어 한국에서 온 노무자들에게 제공한 것이었다. 거액을 번 노신사는 그 후 간척지 70만 평을 사서 이제 원도 없고 한도 없이 많은 땅을 가지게 되었다는 거였다. 은행나무 여자는 그 때 그 말을 듣고 그동안 알뜰살뜰 모아 두었던 목돈을 털어 5만 평의 야산을 선뜻 구입했다. 그리고 술집을 때려치운 후 축산 교육원을 찾아온 거였다. 그녀의 꿈은 자연 속에서 흑염소를 기르는 축산인이 꿈이었다.
주식에 실패한 회사원도 있었다. 그는 잘 나가던 회사의 과장이었지만 한 때 주식으로 3억 원 가량 벌기도 했다. 그 후 그가 산 주식마다 하한가를 맞는 바람에 깡통계좌가 되고 말았다. 오기가 발동한 그는 빚을 내기 시작했다. 집과 토지를 잡혀가며 종자돈을 만든 그는 아예 단타에 매달렸다. 300만 원, 혹은 500만 원의 종자돈으로 수십 억 원을 벌었다는 그 주인공이 써낸 책을 탐독하며 계속 단타를 하는 바람에 수억의 빚까지 지고 말았다. 점심을 김밥으로 때우며 종일 컴퓨터에 매달렸지만 역시 주식은 신의 영역인가 싶었다. 친구 돈, 형제간 돈, 처갓집 돈까지 다 말아먹은 그는 끝내 가정까지 깨지고 말았다. 처음 그가 축산 교육원을 찾아왔을 때에는 술과 담배에 잔뜩 찌든 모습이었다.
칠십이 넘은 노인도 있었다. 그 오창구라는 노인에게는 4남매가 있었지만 홀로 지내오고 있었다. 부인과 사별한 지 7년 째였다. 노인은 건축 일을 하면서 흑염소 식당을 하는 쌍금댁과 한 달에 한 두 차례 만나면서 외로움을 달래곤 했다. 두 사람은 이제 더 이상 따로 지내지 말고 함께 지내자며 해로를 약속했다. 오 노인은 쌍금댁에게 무엇을 해줄까 고민하다가 건축 일을 그만 접고 흑염소를 키워볼 요량으로 교육원을 찾아온 거였다. 오 노인은 흑염소를 키우고 쌍금댁은 그 흑염소를 재료로 식당을 운영하며 알뜰살뜰 살아 볼 심산이었다.
군의원 선거에서 낙선을 하고 온 사람도 있었다. 자네 같은 사람을 안 찍고 누굴 찍것는가? 평소 애경사를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당선될 것으로 예측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모임을 갖고 있는 청년회에서는 청년회 자금에서 일부 지원해 주기도 했고, 초등학교 동창 모임인 뿌리회 역시 회의 안건으로 상정해 공식적으로 지지성명을 해주기도 했다. 일가친척들은 선거운동에 보태라며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러나 개표 결과는 참담함 그것이었다. 선거가 끝난 후 1년 동안은 일체 바깥출입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충격이 컸지만 사람들이 무섭고 두려웠다. 모두 가면을 쓰고 자신을 대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 인생에 이젠 선거란 없다, 독하게 맘먹고 배신하지 않는 짐승들과 살겠다고 찾아온 교육생이었다.
“사람은 밑바닥을 쳐야 다시 일어서는 법이지요.”
타잔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일자무식이었는데도 흑염소에 관한 한 박사였다. 그런 타잔을 보면서 교육생들은 그가 가르쳐준 대로 하면 타잔이 소유하고 있는 흑염소 숫자만큼 쉽게 얻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저한테 농업기술센터에서 벤처농업대학이라는 학교를 소개해 주었구만이라. 거그서 성공담을 발표하게 되었는디, 소가 1천 두, 밭이 30만 평의 소유자들 앞에서 흑염소 1천 두는 게임이 되지 않았구만이라. 그 때 지가 100년 후의 한국 축산이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해 5분간 말할 기회가 있었는디, 축산 농업을 이론적으로만 가르칠 것이 아니라 실재 경험담을 들려 줄 교육기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습니다. 제 말에 감동을 받았는지 농수산식품부에서 요로코롬 교육원을 지어주니까 여러분과 마주하게 된 것이구만이라.”
타잔이 침을 튀겨가며 말을 이어갔다.
“흑염소란 것은 우리 인간에게 보배로운 짐승이구만이라. 풀만 묵게 해주면 젖과 살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약용이 되기도 하지라. 인간은 언제나 변하제마는 짐승은 한결 같어라우. 특히 흑염소는 무릎까지 눈이 차도 새끼를 낳아서 데리고 오는디. 눈을 맞으면서도 잠을 자는 게 흑염소지라. 노루, 멧돼지 등 산짐승은 봄에만 새끼를 나니까 이를 응용해서 길러야 하는디요, 좌우지간 자연초를 먹여야 하기 땜새 초원에서 키워야 합니다. 사료를 먹이지 않고 99.99%를 자체사료로 충당했을 때라야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으셔야 된다 그 말입니다.”
타잔은 교육생들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아니 꿈과 이상의 목표가 돼버리고 말았다. 적어도 타잔은 축산업계에서 영웅이었는데, 교육원 원장 노릇을 하면서 직접 강의를 도맡아 하다 보니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축산 교육생 중에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아예 교육원에서 눌러 사는 이도 있었는데, 그가 철식이란 젊은이였다. 그는 국사봉 농장에서 지내는 것이 무척 즐거운 모양이었다. 흑염소를 키우는 법을 직접 체험해 보는 것도 좋았지만, 그러나 아직 야산을 구입하지 못한 처지였다. 도시에서 벽돌 쌓는 일을 하다가 실연을 당한 나머지 귀향을 한 것인데, 흑염소를 키울 야산이 그리 쉽게 매물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얘들아! 얼름얼름 풀을 막 뜯어묵어라이. 오후에는 비가 온닥 하더라.”
마치 자기가 농장 주인이라도 되는 양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흑염소떼를 몰고 나가는 철식이의 발걸음이 몹시 가벼워 보였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한줄기 비라도 쏟아 부을 요량인지 시커먼 구름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비가 오기 전에 흑염소에게 풀을 먹이려는 그는 농장 일을 자기 일처럼 해냈다.
오전이 지나자 자동차 시동 소리가 들려왔다. 교육생들은 반드시 점심을 밖으로 나가 흑염소탕을 먹었다.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도 고사하고 인근의 흑염소식당을 찾아다니며 흑염소탕을 먹는 것이었는데, 그 이유는 흑염소의 유통과 판매현장을 실습하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고 있으면 된다요? 함께 가서 한 그릇 치우고 오게 어서 나오시오.”
“그냥 다녀오십시오. 자주 이러시면······.”
“아, 숟가락 하나만 더 올려놓으면 될 것인디, 어서 갑시다.”
그런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이번엔 특이한 곳으로 안내했다. 교육생들도 무작정 원장이 안내하는 대로 잠자코 따라갔는데, 포장된 도로가 있기에 망정이지 국사봉 농장 못지않은 산중이었다.
이윽고 소형버스에서 내렸을 때 주변의 풍광이 그럴 듯했다. 사방팔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어서 완전히 고립된 느낌을 주는 그곳에 둥싯둥싯 솟은 바위틈으로 청류가 흐르고 있었고, 대형 정각이 대궐 한 귀퉁이처럼 서 있었다. 신선들이 놀 수 있음직한 분위기였는데, 그 곳에서는 아예 흑염소를 마리 당 팔고 있었다. 그래서 수육으로 먹고 탕을 끓여 먹어도 고기가 푸짐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수자를 헤아려보면 탕만 먹으나 마리로 먹으나 가격이 똑 같았다.
“자주 손님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파는 것이 편하지라. 누구나 주문을 받아서 파니께요.”
흑염소집 아주머니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훔치며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랑께 한 달이면 몇 마리나 파느냐 그 말입니다.”
교육생 중 누군가가 판매량을 꼬치꼬치 물었다.
“이 산중에서 얼매나 되간디라우? 대충 한 달에 20여 마리 쯤 팔지라우.”
그 말에 교육생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놀란 시늉을 했다.
“일 년이면 몇 마리여? 200마리가 넘는 거 아녀?”
“놀래시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지라우. 직접 키워서 파니께 이문이 쬐깐 남지라우. 장에서 사다가 장사하믄 뭐가 남것는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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