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레모 사내가 젓가락으로 고기를 집어 들더니 내 입 속으로 넣어주었다. 역시 기막힌 맛이었다. 기름기라곤 전혀 없는 멧돼지고기는 쫀득쫀득 씹는 맛이 그만이었다. 황대장이 양주를 한 병 들고 와 한 잔 씩 따라주며 말했다.
“멧돼지 사냥은 희로애락이 있는 스포츠지. 멧돼지를 잡을 때의 기쁨은 천하를 얻는 기분일 정도로 좋은데, 이 때를 희(喜)라고 하지. 멧돼지를 몇날 며칠이고 구경조차 못하면서 고생만 죽어라 하고 있을 때를 노(怒), 멧돼지가 그 아까운 사냥개를 물어뜯어 죽였을 때가 애(哀), 멧돼지를 끌고 내려와 무용담을 나누었을 때가 낙(樂)이라고 하지.”
그의 말에 베레모 사내가 나섰다.
“형님. 제가 무용담을 한 번 얘기해 볼까요?”
“아니, 막내한테도 무용담이 있나? 지난 번 사냥개가 죽은 얘길 하려구?”
“사람 우습게보지 마십시오. 이래봬도 멧돼지를 창으로 잡아본 경험이 있습니다.”
“설마? 구석기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창으로 멧돼지를 잡을 수 있나!”
“개만 있으면 잡을 수 있지요. 문제는 개지요, 개. 개가 멧돼지를 포위한 다음 주변을 빙글빙글 돌 때 멧돼지 옆으로 다가갑니다. 그리고 냅다 심장을 향해 창을 날리는 거지요.”
“아니, 멧돼지 이빨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라서 그 녀석 곁으로 바짝 간단 말이여?”
타잔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그러자 베레모 사내는 씩, 웃고 나더니 오른팔로 창을 던지는 시늉을 해보이며,
“자, 보세요! 이렇게 창을 쓰윽 날리지 않습니까. 창이 꽂히는 순간, 멧돼지는 길길이 날뛰는데, 바로 이 순간이 가장 짜릿하지요. 온 몸의 털이 다 빳빳해지는 기분이니까요. 하지만 급소 맞은 멧돼지가 죽을 때까지 잘 피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면서 멧돼지처럼 펄떡펄떡 뛰어보였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여러 사람이 창으로 잡을 때는 제가 먼저 선창이야! 하고 찌르면 두 번째 사람이 재창이야! 하면서 찌르고, 세 번째 사람은 삼창이야! 하고 찌르는데 마치 구석기 시대에 돌화살촉으로 짐승을 잡는 기분이 난다니까요!”
“말을 듣고 보니 나도 창으로 잡아보고 싶구만 그래.”
황대장의 말에 베레모 사내는 우쭐해 있었다. 그러자 타잔이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리고 나서 말했다.
“나도 사냥께나 한 사람이지만 창으로 멧돼지를 잡아본 일이 없어. 그러나 다른 모든 동물들은 맨손으로 다 잡아보았지.”
“누가 형님 솜씨를 따라잡을 사람이 있답니까? 며칠 전에도 맨 손으로 노루를 잡은 형님 아닙니까?”
베레모 사내가 흠모하는 눈빛으로 타잔을 바라보았다.
“형님. 제가 무용담을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냥개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이지라. 제가 아무리 창 솜씨가 뛰어난다 해도 개 없이는 못한당께요. 그란디 그 때 죽어버린 ‘쎄리’ 얘기는 뭘라고 끄집어 내요? 지금도 속이 상해 죽것는디······.”
“‘쎄리’는 명견이었지. 바로 눈앞에서 짖어대는 용기도 가상했지만 귀가 귀찮아 멧돼지가 도망가려고 하면 날쌔게 뒤로 돌아가 정강이를 물어뜯는 명견이 아니던가.”
“쎄리 말이 나온께 괜히 눈물이 다 나올락 하네. 그 녀석이 다른 녀석들과 함께 멧돼지를 포위하고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 옆으로 다가가 냅다 심장을 향해 창을 날렸던 거 아닙니까.”
그 때 타잔이 소주잔을 건네며 술을 권했다.
“한 잔씩 더 묵어!”
그러나 베레모 사내는 마저 말을 이어나갔다.
“멧돼지는 창에 꽂히는 순간 난리를 피우지요. 온 몸으로 길길이 날뛰는디 그 때는 진짜 조심을 해사쓰지라. 멧돼지가 죽을 때까지만 잘 피하면 사냥을 끝나는 거 아닙니까.”
베레모 사내는 두 팔을 흔들며 멧돼지가 신음을 하는 몸짓을 해보였다. 그 때 여강이 한숨처럼 말했다.
“사냥의 여신이자 달의 여신인 아르테미스가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멧돼지 사냥을 하는 모습이 생각나는군.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멧돼지를 향해 창을 막 던지려는 그림인데, 사냥하는 아르테미스란 작품이지. 세 마리의 개 중에서 한 마리는 멧돼지의 등에 올라타서 등을 물어뜯고 있었고, 또 다른 개는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지. 산과 숲의 요정 오레아스들도 화살이나 창으로 찌르려하고 있었는데, 또 하나의 요정은 멧돼지를 향해 달려드는 개의 줄을 움켜쥐고 있었고. 그런데 그때 나뭇가지 뒤에 숨어서 지켜보는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꼭 그 모습인 것 같아. 결국 축생의 마음이겠지······.”
축생의 마음이라니, 이 말은 또 무슨 말인가? 언제는 짐승을 잡는 일이야말로 보살행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축생의 마음이란 말은 무슨 말인가.
나는 짐짓 화가 난 목소리로 따지듯 물었다. 사냥을 찬양하던 마음이 왜 또 바뀌어졌단 말인가.
“십계(十界)란 말이 있지.”
“왜 갑자기 십계란 말이 나옵니까? 축생의 마음을 묻고 있는데······.”
“인간의 마음은 역시 지옥의 마음에서 천상의 마음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
“그 말은 또 무슨 말입니까?”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인간의 마음이 아귀의 마음, 축생의 마음, 아수라의 마음, 끝내는 인간의 마음, 그리하여 천상의 마음, 연각의 마음, 보살의 마음, 부처의 마음으로 혼합되어 있다는 것인가.
그러나 어떤 마음을 갖고 있든 간에 그 마음으로 끝나지 않고 업으로 전이된다는 사실쯤은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었다.
“우리가 저 짐승들을 맛있게 먹고 있지만, 우리 육신 또한 요깃거리에 불과한 것······.”
그녀는 낮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이 절 저 절을 떠돌아다닐 때였지. 깊은 계곡에서 음독을 한 여인의 시체를 본 적이 있었어. 참혹하게 시신은 썩고 있더군. 온갖 벌레들이 침범해 살을 죄다 발라먹고 있더라구.”
“왜 갑자기 음식을 먹는 자리에서······.”
엉뚱한 말을 지껄이는 그녀에게 톡 쏘아붙이려고 했지만 꾹 참았다. 그녀는 피식 웃고 나서,
“여러 스님들이 열반에 들면서 왜 자신의 육신을 숲 속에 던져버리라는 말을 했는지 이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아.”
“참, 궤변도 잘 하시는군요. 언제는 환생을 못해서 몸부림치는 짐승을 구제해주는 일이 곧 사냥이라고 큰 소리 치더니······.”
“글쎄······. 그러나 짐승을 잡을 때는 짐승의 마음이 된다는 것이고, 그러고 보면 인간은 십계 속에서 갈팡질팡하며 산다는 것이지.”
멧돼지고기와 함께 다모토리로 술을 마셔대던 황대장, 타잔, 베레모는 어느 틈에 헌 덕석을 깔아놓고 윷놀이를 시작하고 있었다.
문득 경운화사의 말이 떠올랐다. 백련사에서 함께 일했을 때 내게 들려주었던 얘기였다.
“내가 노승한테 들은 얘긴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사람들이 어떤 절에 와서 닭고기를 삶아 먹더라는 게야. 그것도 부처님 공양 솥에 넣고 말이지. 그래서 노승은 놀란 나머지 ‘저러다간 신장님들이 가만 안 있을텐데······’하고 가슴을 졸였다더군. 그런데 그날 밤 꿈을 꾸는데, 온통 검은 옷을 입고 하얀 칼을 찬 신장님들이 여럿이 마차에 올라타더니 말 한 마디 않고 말 엉덩이에 채찍을 가하면서 바람처럼 절을 떠나는 게 아니겠어. 그 중 한 신장님만 그들과 함께 가지 않고 절 입구에 남아 혼잣말로 중얼거렸는데, ‘다 떠나는데 나라고 남아있을 수는 없지’하고 산문 밖으로 나가더라는 게야. 순간 노승은 절을 지키는 신장님들이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결국 그 절은 얼마 못가서 망했다더라구. 신장님이 떠나면 절은 망하고 만다는 말처럼.”
갑자기 윷놀이판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풍선처럼 터져나왔다.
“또 모다!”
한쪽 편에서 연거푸 모를 세 차례나 한 탓에 이미 승부가 끝나버린 모양이었다.
그 때 웬 차량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사내 한 사람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왔다. 칼자국이 왼쪽 뺨에 선명하게 나 있어서 인상이 여간 고약스런 친구였다.
“형님, 계시오?”
그 사내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면서 타잔을 부르더니 멧돼지처럼 으르렁거렸다.
“형님. 참말로 서운하구만이라우. 그깟 멧돼지 고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하요? 잉?”
칼자국 사내는 초장부터 말투가 시비조였다. 전작이 있었는지 이미 만취한 모습인데도 차를 몰고 국사봉까지 달려온 모양이었다.
“내가 뭘 유세한다고 그런가?”
타잔이 점잖게 나무랬다.
“내가 첨부텀 욕심부립디여? 그저 뒷다리나 하나 주라고 안 합디여?”
“다 몫이 정해져 버렸다고 안 하등가? 나중에 잡으면 줄 테니까 오늘은 그만 내려가소.”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제. 형님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무엇이 그리 서운했는지 그는 게거품을 물었다. 말투도 반말조였다.
“아따, 이 사람아! 자네가 전화했을 때 필요 없다고 해서 처분해 버린 것이라니까.”
“뭣이여? 처음엔 필요 없다고 말은 했지만 혹시 필요할 지도 모르것다고 다시 전화를 했어? 안 했어?”
칼자국 사내가 핏발을 세우며 삿대질을 했다. 얼마나 울화통이 났는지 금방이라도 주먹을 날리고도 남을 태세였다.
“오늘은 일이 그렇게 되았응께 여그서 뚝 멈추세.”
타잔은 어디까지나 어르려는 태도였고, 사내는 처음부터 뭐가 꼬였는지 말끝에 칼날이 서더니 기어이 목구멍에서 안 할 말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씨발 말이여! 사람이 사람 같지 안 보인 갑네!”
칼자국 사내가 바닥에 침을 찍 뱉었다.
“정만이 이 자식, 말하는 것 좀 보게.”
어느 틈에 타잔의 목소리에 노기가 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쯤에서 끝이 났으면 좋았으련만 칼자국 사내는 객기를 참지 못하고 전광화석처럼 주먹을 날려버리고 말았다.
“씨발! 좋잖은 멧돼지 고기 갖고!”
칼자국 사내가 벽력 같이 고함을 치는 것 같더니 순간 타잔의 몸이 휘청거렸다. 타잔의 코에서 붉은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나 같은 놈은 사람 취급도 못 받고 산께 나 여그서 죽어뿔랑마.”
허리를 굽히는가 싶더니 이번엔 조금 전에 멧돼지의 배를 가를 때 썼던 칼을 집어 들었다.
“이 새끼!”
칼자국 사내가 칼을 높이 치켜든 순간, 타잔의 오른 발은 허공을 가르면서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어쿠!”
그가 썩은 짚뭇처럼 허망하게 고꾸라졌다. 타잔이 발로 그의 목덜미를 짓눌렀다.
“너 여기서 죽어볼거여?”
“혀 형님, 살려주씨오.”
그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지 캑캑거렸다.
“한 번만 더 못된 짓거리를 했다 싶으면 뼈다귀도 못추릴 지 알아.”
타잔이 발을 빼내자 그가 납작하게 엎드리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나는 비닐하우스에 걸린 수건을 타잔에게 건네주었다. 타잔은 코피를 닦고 나더니 칼자국 사내를 일으켜 세우며 의자에 앉혔다.
“자, 한 잔 받아. 그리고 내 몫으로 남겨둔 멧돼지 다리를 가져 가소. 그깟 멧돼지 고기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 칼부림까지 하는가?”
타잔이 소주를 음료수 잔에 가득 딸아 주자 칼자국 사내는 맹물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다 마시고 난 그가 입술을 손등으로 쓱 문지르더니 술병을 치켜들었다.
“형님도 한 잔 받으셔야지라.”
그가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베레모 사내도 칼자국 사내에게 한 잔 권했다.
“비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법이여.”
그는 송구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소주잔을 단숨에 비웠다.
그 때 회진댁이 닭죽을 끓여서 동이만큼 큰 물통에 가득 담아가지고 나타났다.
“술만 드시지 말고 속 좀 푸세요.”
회진댁이 닭죽을 한 그릇씩 떠서 모두에게 건넸다. 배가 부를 터인데도 다들 단숨에 한 그릇을 먹어치웠다.
“아악!”
그런데 여강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그릇을 떨어뜨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내가 뒤를 힐끔 바라보았을 때 칼자국 사내가 식칼을 들고 가만가만 타잔의 등 뒤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쥑여버릴 것이여!”
그가 지옥의 사자처럼 부르짖으며 식칼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살인하는 모습까지 보는가 싶었다. 식칼이 등에 꽂이는 순간, 붉은 피가 거침없이 뿜어져 나올 것이고 타잔은 장기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고 대수술도 소용없이 끝내 목숨을 잃을 것이었다. 그런데 짧은 순간, 텅 소리가 나기에 눈을 떠보니 식칼이 통나무 도마 위에 내리꽂히고 있었고, 다시 텅 소리가 나더니 칼자국 사내의 몸이 허공에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타잔이 나둥그러진 그의 멱살을 움켜쥐고 아랫배를 연거푸 주먹으로 내리 찔렀다.
“으윽!”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그런데도 타잔은 여전히 멱살을 잡은 채 면상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갈겼다. 그의 머리는 온통 피 칠갑이 되었고, 아예 눈조차 뜨지 못한 채 고개가 늘어졌다. 실로 눈 깜박할 사이였다.
열흘 후 아침나절에 경찰서 백차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농장에 나타났다.
“박격포씨 있습니까?‘
때마침 흑염소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타잔이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무슨 일로 절 찾는당가요?”
“밀렵한 일로 우리를 성가시게 하등마는 또 말썽을 피우셨습니까?”
키가 큰 경찰관이 타잔을 노려보며 말했다.
“제가 뭔 잘못이라도······.”
“이빨이 두 개나 부러졌다며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일단 파출소까지 동행을 해주셔야겠습니다. 이름이 박격포씨니까 이름값 하느라고 남을 박격포처럼 때린 겁니까?”
“아, 정만이 동생이 신고를 했능갑소이. 방정만이 말입니다.”
“고소인이 꼭 처벌해 달라고 하는군요.”
“그 녀석이 그러등가요?”
타잔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그리고 순순히 경찰관을 따라 경찰차에 올랐다. 그런데 세 시간 쯤 지나 파출소에서 잠시 다녀가라는 전화가 왔다. 새로 지은 건물의 파출소는 거미줄 하나 없이 깨끗했지만 정작 근무를 하는 사람은 달랑 두 사람 뿐이었고 타잔이 조사를 받느라 접의식 의자에서 앉아 있었다.
“무슨 일로 저를 불렀습니까?”
뻔히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체 물었다. 그러자 타잔을 조사하던 경찰관이 턱짓으로 의자에 앉으라고 하더니 음료수병을 내놓으며 입을 열었다.
“참고인으로 좀 불렀습니다. 지금 박격포씨는 피해자에게 중상을 입혀놓고도 자꾸 정당방위였다고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그 때 선생께서는 현장에 있었습니까?”
“네.”
“피해자 오정만씨는 일방적으로 맞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당시 상황을 본데로 말씀해 주시죠.”
경찰관은 조금 전 주소, 성명, 주민등록번호 등을 기재한 후 컴퓨터 자판기에 두 손을 올리고 내 말을 기다렸다.
“말씀드리지요. 처음에 오정만이 회칼을 집어들고 찌르려 했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네.”
“어떤 자세로 찌르려 했습니까?”
“먼저 오씨가 박격포씨를 주먹으로 때리고 나서 갑자기 회칼을 집어들고 어깨 너머로 치켜들었습니다. 그리고 내리찍으려는 순간 박격포씨의 발이 먼저 오씨의 면상을 걷어찼습니다. 오씨는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는데요, 없었던 일로 하자며 둘은 화해를 했고 서로 술까지 마셨습니다.”
“그런데 왜 박격포씨가 폭력을 행사하게 되었습니까? 본대로 얘길 해주세요.”
“우리는 두 사람이 화해를 했거니 싶어 서로 그 뒤로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는데, 회진댁이라고 박격포씨 부인이 닭죽 그릇을 땅바닥에 쏟아부으며 비명을 지르기에 힐끗 뒤돌아보았습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는데 오씨가 이번엔 식칼을 들고 타잔을 찌르려 했습니다.”
“그 식칼을 보면 알 수 있겠네요.”
“회칼은 작고 길쭉하게 생겼고, 식칼은 크고 두껍게 생겨서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 그 칼들은 박격포씨 집에서 사용하는 것들입니까? 오정만씨가 따로 품고 온 것이 아니고…….”
“그렇습니다. 모두 현장에 있었던 칼을 사용했습니다.”
나는 본대로 사실대로 말했고, 경찰관은 빠른 속도로 조서를 만들어나갔다.
“그런데 왜 오정만씨는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을 할까요? 물론 이빨 두 개가 빠진 건 사실이지만 칼을 두 차례나 들고 상대방을 찌르려 했다는 것은 살인미수가 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경찰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무래도 오씨가 사용한 두 개의 칼을 증거물로 확보해야만 되는 모양인지 서둘러 나를 태우고 국사봉 농장으로 달렸다. 그리고 내게 틀림없이 그 당시 사용한 칼들이 맞느냐고 확인 한 후 가방에 넣은 경찰관은, 필요하면 다시 부르겠다며 나를 돌려보냈다.
타잔도 정당방위에 해당되었는지 조사만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내게 몇 번이고 미안하다는 말을 해왔다. 그러나 타잔이 부러 시킨 일도 아닐뿐더러 그 또한 큰일을 당할 뻔한 사건이어서 무슨 말을 하겠는가.
그런데 누군가가 택시를 타고 국사봉 농장을 찾아오더니 다짜고짜 악을 써댔다.
“내 서방 살려 내거라!”
머리를 산발한 채 악을 써대는 사람은 전혀 얼굴을 알지 못하는 한 아낙이었다.
“이놈아! 내 서방 살려 내거라!”
아낙은 거듭 핏줄을 세워가며 소리를 질렀는데 듣자 하니 타잔에게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틀 전 타잔에게 안 죽을 만큼 얻어맞은 칼자국 사내의 여편네가 쫓아온 모양이었다.
“죽지 않았응께 다행인 줄 알고 어서 돌아가시오.”
타잔이 화를 지그시 참으며 점잖게 타일렀지만 막상 타잔의 얼굴을 보자 칼자국 여편네는 땅바닥에 퍼질고 앉아 더욱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이빨만 두 개가 부러진 것이 아니여! 무슨 죽을 죄를 지었다고 팔 다리도 못쓰게 사람을 개 패듯이 팼당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아가는디 우리 식구 다 굶어죽게 생겼다, 이놈아!”
아무래도 칼자국 여편네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될 성 싶었던지 타잔이 다가가 그녀의 어깻죽지를 잡고 일으켜 세웠다.
“내가 때리고 싶어서 때린 것 아닌께 어서 돌아 가시오!”
“놔! 이놈이 어디다 손을 대는 것이여!”
칼자국 여편네가 이번엔 타잔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나까지 쥑여라! 너 돈 많고 주먹 쎈께 나까지 쥑여라! 어서 쥑여!”
그녀의 입에서 게거품이 일었다.
그 때 여강이 재빠르게 다가와 두 사람을 떼어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정작 탱화는 그리지 않고 사냥꾼들을 따라가지는 않나, 지옥에서나 볼 수 있는 칼싸움이나 보지 않나, 이런 나를 환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갑자기 환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바닷가 아름다운 별장에서 내가 그림만을 그리기를 원하지 않았던가. 비록 사진으로 밖에 보지 않았지만 그 얼마나 아름다운 별장이었고 화실이었던가. 그녀가 꿈꾸는 세상이 바로 그 곳이었다. 나는 그림을 그리고,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차를 나르고…….
그녀는 암자에서 조석으로 예불을 모시며 사는 비구니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강원에서 배운 불교의 진리를 절을 찾아오는 신도들에게 들려주고, 그들을 지옥으로 가는 아래가 아닌, 부처가 되는 위를 향할 수 있도록 인도하는 스님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과 함께 살 수 없다면 차라리 스스로 그리고 말겠다고 나선 사람이었다. 금단청을 하거나 부처의 얼굴을 그려야만 살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날아갈 듯 생긴 대웅전 벽면을 붓 한 자루로 벽화를 그리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녀의 붓 끝에 의해 심우도가 그려지고 설산동자가 그려지며 달마가 그려지고 있다.
-지금 법능화사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 줄 알기나 하신지요?
-제가 어째서요?
-지옥으로부터 올라가서 천상을 향해 가야할 화사께서 짐승을 잡겠다고 사냥을 하다니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더구나 칼부림이나 하는 지옥의 사람들과 함께 하다니요?
-제가 한 것은 아닌데요?
-바로 그 곳이 지옥이 아닌가요? 그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기억이 안 나신가요? 저랑 함께 바닷가 별장에서 그림만 그리며 살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다 지나간 얘기가 아닙니까?
그녀는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뒷걸음질을 친다. 내가 손짓으로 멈추라고 했지만 이내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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