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송하훈 장편소설 십계10

“참, 내 머리를 누가 깎아준 줄 알아?”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묻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내 머리에 손이 올라갔다.

“정말 한줄기 바람처럼 떠돌아다니다가 달마산 미황사를 가게 되었어. 병풍처럼 기암괴석으로 둘러싸여진 아름다운 절이더군. 당장 머리 깎고 입산수도를 하고 싶을 만큼…….”

나는 허리를 굽혀 눈을 한주먹 집어 들고 어적어적 씹어 먹었다. 갑자기 일어난 갈증이 해결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 미황사에서 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어.”

“그래서요?”

“실은 그 스님은 과거에 알았던 사람이었어. 10년 전 쯤 문학소녀였던 나는 어느 날 눈에 확 띄는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타다 남은 종이에 사연을 쓴 편지였어. 그래서 여러 차례 편지를 주고받았지. 나중엔 전화도 서로 하게 되었는데 1년 뒤 서울역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어. 어떻게 생겼을까, 굉장히 궁금했는데 막상 만났을 때 그 남자는 이미 만취가 된 상태더군. 나를 발견한 그는 곧장 서울역 앞 광장을 빠져나오더니 차량들이 질주하는 대로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었어. 기대를 하고 나갔는데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많은 술을 마시고 저 모양일까, 기가 막히더군. 지나가던 차마다 비상라이트를 켜는가하면 경적을 울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로 한복판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버리더군.”

그녀는 지금도 그때 일이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한숨을 한차례 내쉬었다.

“ 그 사람은 당장 경찰관의 손에 의해 파출소로 끌려가게 되었는데 그냥 되돌아갈 수가 없어 따라갔지. 경찰관에게 통사정을 하자 마음씨 좋은 경찰관은 일장 훈시를 하고 나서 풀어주더군. 그래서 그 남자를 끌다시피해서 모텔로 안내를 한 다음 숙박비를 계산하고 나오려는데 불길한 예감이 스치는 것이었어. 다시 모텔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열려니까 문이 굳게 잠겨져 있더라구. 문을 두드려도 아무 응답이 없길래 주인아주머니와 함께 들어가 보았지. 분명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고 있어야 할 그 남자가 방에 없더라구. 무심코 욕실문을 열어보니까 세상에……. 동맥을 끊었는지 피가 낭자한 욕조에 알몸으로 누워있는 것이었어. 응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옮긴 후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는데, 다음 날 그 남자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성장과정을 고백하는 것이었어.

‘나는 계모 밑에서 모진 학대를 받으며 자랐소. 계모는 아예 죽어 없어지기를 바랬으니까.’

그는 추연한 기색으로 옛일을 떠올리면서 굶고 맞고 욕설을 들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일을 하나하나 말했는데, 나조차 눈물이 나오더군.”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그가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가 겪었을 눈물의 세월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지만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그런데 몇 해 전 어느 날, 아버지와 계모를 함께 꽁꽁 묶은 다음 집에 불을 질러버렸는데 살려달라고 악을 쓰는데도 그 길로 도망쳐버렸다더군. 다행히 마을 사람들에 의해 구출되었지만 그 남자는 이내 잡혀서 철창신세를 져야만 했어. 그렇게 전과자가 되어버린 그는 나를 만나는 날 자살을 꿈꾸었던 거였어. 결국 내가 살려준 꼴이 되어버렸지만…….”

그녀는 멀거니 빈 하늘을 한 차례 치어다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게 좁은가 모르겠더군. 미황사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인사를 하고 마악 나오려는데 어디서 본 듯한 얼굴의 스님이 절 마당에 서 있질 않겠어? 바로 그 남자가 승려가 된 신분으로 날 바라보고 있더군. 그런데 나를 본 그 남자, 아니 그 스님은 다짜고짜 머리를 깎아야 한다며 가위로 내 머리카락을 싹둑싹둑 잘라버리더군. 그래야 내 몸 속의 끼가 잠재워진다나. 나중에는 눈썹까지 면도로 밀어버리고 나서 한다는 말이 아예 젖가슴조차 머리털처럼 밀어버리면 좋겠다는 것이었어.”

“그래서 머리를 깎게 되었군요.”

“머리를 깎고 나니까 막상 중이 되지 못했으면서도 이상하게 내가 뭐라도 된 양 달뜬 기분이 들더군. 마치 잿빛 승복을 걸쳐 입은 것처럼 신분이 확 달라져버린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파계라는 것을 한 번 해보자, 이렇게 마음을 먹고 스님에게 말했지.

‘스님, 달마산 좀 구경시켜 주세요.’

했더니 순순히 응해 주더군. 달마산 정상으로 오르니까 갑자기 내 몸이 불덩이처럼 서서히 뜨거워지기 시작했어. 바다를 건너 불어오는 바람도 내 몸을 식히지 못했지. 나는 무작정 옷을 한 올 한 올 벗기 시작했는데, 멀거니 지켜보던 스님이 전광화석처럼 나를 찍어누르더군.”

“허, 허헛!”

나는 신음 대신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막상 일을 끝내고났을 때 스님은 내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군. 설마 내가 그런 행동을 보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거지. 그러면서 그 순간 대원사(大原寺)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더군.”

“대원사에서도 어떤 스님을 파계시키고 말았나요? 결국 마구니가 따로 없군요. 바로 여강씨 같은 분이 마구니이지 누굴 마구니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내가 따지듯 말했지만 그녀는 그저 웃기만 했다. 어디 그런 일을 두고 웃을 일인가?

“……대원사 얘기마저 들어 봐. 그 때 나는 까만 머풀러를 목에 매고 대원사를 찾았는데, 누가 보면 영락없이 사랑하는 애인이라도 잃어버린 차림새였어. 위아래 모두 까만 옷이었으니까. 대원사에 들어섰을 때 점심참이 넘어간 시간이었지. 배가 몹시 고픈 나는 공양간을 기웃거리다가 동자출가를 한 스님을 만나게 되었어.

‘스님, 배가 고픈데 공양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나는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그 동자스님은 두 말없이 밥을 얻어다 주더군. 개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우고 나서 우리는 자연스레 얘기를 나누게 되었지. 불교란 한 마디로 무엇이냐? 참선이란 또 무엇이냐? 이런 질문을 던졌는데 동자스님은 나름대로 척척 대답을 해주더군. 우리는 친숙한 사이라도 되는 것처럼 경내를 빠져나와 호젓한 산길을 걷게 되었어. 얼마쯤 걷자니 묵정밭 하나가 나타났을 때 동자스님이 잠시 쉬었다가 가자며 먼저 앉더군. 나 역시 그 곁에 앉았지.

‘부처님께서는 우리 중생들을 구하기 위해······.’

나는 동자스님의 말을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듣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가 내 몸을 덮쳐오는 것이었어. 나는 동자스님이 하는 대로 가만히 있었지.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았어. 하늘은 그야말로 쪽빛이었는데, 한쪽에서 뭉게구름이 굼실굼실 피어오르고 있더군. 저 하늘 멀리 서방정토는 있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자스님의 가슴이 새처럼 팔딱팔딱 뛰는 것을 알 수 있었어. 내 몸 위에 한동안 가만히 엎드려 있던 동자스님이 벌떡 일어나더군. 나는 그 스님이 무안할까봐 두 팔을 벌려서 살포시 껴안아 주었지. 그 순간, 그 동자스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아예 엉엉 울어버리더군.

‘날 이해해 줄 수 있죠?’

그 말에 나는 더욱 힘을 주어 껴안으며 말했지.

‘그럼요. 저는요 스님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하필이면 그 때 그 동자스님이 떠올랐는지 모르겠더라구.”

그녀의 목소리가 차츰 가라앉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얼굴이 후끈후끈 달아올랐는데, 그녀가 행여 알까봐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러고 보니 그대는 정말 마구니군요. 승려가 된다는 것은 어쨌든 부모 형제를 버리고, 친구와 일가친척을 버리고 도를 구하기 위해서인데, 그런 구도자를 농락하고 파계시켜도 좋다는 겁니까?”

그녀는 내 말을 듣기만 할 뿐 고개를 들어서 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을 퍼부을 기세였다.

“우리가 부처를 그리는 목적이 뭡니까? 그대가 그리는 바보부처건, 내가 그리는 탱화이건 왜 그리는 겁니까? 그 그림을 보고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왜 그 같은 행동을 하는 겁니까? 과거야 어쨌든 이제는 이미 불가에 몸담고 있는 청정한 비구승을 함부로 파계시켜도 되는 거냐구요? 아니면 어린 동자승을 놀리기나 하구 말입니다.”

나는 핏대를 올려가며 불덩이를 쏟아내듯 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 절에는 김보살이란 여자가 요사채 한쪽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여느 절에나 흔히 있는 공양주 보살은 아니었기 때문에 하는 일이 전혀 없이 그저 금붕어처럼 지내는 여자였다. 요양을 하기 위해 절에서 지낸다고는 하지만 전혀 병색은 엿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화장기 없는 맑은 피부에 건강미가 넘쳐흘렀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라고 곧이들을 수 없을 만큼 그녀는 젊어보였다.

그녀가 종일 정적만이 감도는 절 생활을 하면서도 산신 기도 하나는 아주 열심이었다. 아침 공양을 마치기가 무섭게 산신각에 올라가 산신탱화를 향해 수없이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산왕대신(山王大神)!”

김보살의 목소리는 그녀의 피부처럼 맑고 투명했다. 그런데 이마를 마룻바닥에 짓찧으며 오체투지(五體投止)로 절을 해대는 몸짓이 여간 요란스러웠다. 볼기 살을 통째로 드러내는 꽉 끼인 꽃무늬 반바지 때문에 맷방석만한 엉덩이가 번쩍 치켜 올라갔다가 어느 틈에 내려오곤 해서 숫제 쿵덕쿵덕 움직이는 디딜방아였다.

그런데 일주일 남짓 지났을까. 산천초목은 물론 법당의 부처님까지 주무시는 오밤중이면 물을 끼얹는 소리가 방문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용왕각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요사채 앞을 지나 흐르는데, 허드렛물을 쓰기에 용이할 만큼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다. 나는 창호지문을 침으로 뚫은 다음 눈알을 들이댔다.

물을 끼얹는 주인공은 김보살이었다. 초저녁에 손발이며 이빨까지 닦고 방으로 들어간 김 보살이 다시 밖으로 나와서 몸을 씻고 있었다. 옷을 모조리 벗고 씻기에는 요사채와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아, 그런데 그녀는 쪼그리고 앉더니 치마를 허리께까지 말아 올린 다음 가만가만 사타구니께로 손이 내려가는 게 아닌가. 달빛에 비춰지는 그녀의 둥근 엉덩이가 하늘 높이 떠오른 보름달 그것이었다. 여자의 엉덩이가 그토록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그녀는 오밤중이면 반드시 밖으로 나와서 아랫도리에 물을 끼얹는 것이었는데, 나는 밤마다 훔쳐보았다. 이상하게도 잠이 들 무렵이면 그녀의 엉덩이가 눈앞에 어른거리는 것이어서 도무지 눈을 붙일 수가 없었다. 기어이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깊은 잠에 빠질 수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토요일 오후, 그녀가 한 사내를 만나는 것을 목도하고 말았다. 등산복 차림의 한 사내가 절 입구에서 서성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 틈에 그녀가 나타나 함께 옛 절터로 향하는 산길을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 뒤로 등산복 사내는 매 주 토요일이면 나타났고, 그녀는 함께 사라졌다가 해가 설핏해지면 도둑고양이처럼 절로 들어왔다.

그날도 나는 잠시 작업을 마치고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천년을 살았다는 천년수(千年樹)가 우람하게 자리 잡고 있는 그 아래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아래쪽 돌무더기가 있는 곳에서 남녀가 도란거리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많이 듣던 목소리여서 가만히 쪼그리고 앉아 귀를 곧추세웠다.

“당신 먹으라고 사온 쇠고기야.”

“밤낮 풀만 먹고 사니까 고기 생각이 더 나던걸요.”

등산복 사내와 김보살이 마주 앉아 야외용 가스랜지로 고기를 굽고 있었다.

“참, 주지 스님께 고급 승복은 선물했겠지?”

“그럼요. 다음엔 무슨 선물을 해야 할까요?”

“알았어. 내 준비를 할 테니까 걱정 말라구. 절에서 계속 잘 지내려면 주지 스님께 잘 보여야 한다구.”

등산복 사내가 고기를 굽다 말고 김보살의 엉덩이를 두어 번 툭툭 쳤다.

“이혼은 언제 할 거예요?”

“조금만 기다려.”

등산복 사내가 젓가락으로 익은 고기 한 점을 김보살 입에 갖다 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김보살의 목소리에 는 하얗게 독버섯이 돋아 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절간에 숨어 지낸다는 것이 숨통 막힌다구요.”

“나도 이혼하기 전에 들통날까봐 여간 조심하고 지낸다구.”

실로 기막힌 관계였다. 아니, 그보다도 귀신 곡하게 아슬아슬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분명 남자는 등산복에 배낭을 매고 아내에게 등산을 간다며 집을 나섰을 터였다. 산 속으로 들어간 남편의 뒤를 무슨 재주로 뒤좇을 것이며 절에 숨어 지내는 여자 또한 무슨 재주로 알아낼 것인가. 고시공부 한다는 젊은이들이 깊은 암자로 들어와 지내는 경우는 보았어도 여자를 절에 숨겨놓고 밀회를 즐기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내 자리도 없이 이렇게는 살 수 없다구요.”

김보살이 사뭇 고기를 씹으면서도 눈을 흘겼다.

“이제 도장 찍는 일만 남았다니까 그러네.”

“말은 필요 없어요.”

“알았어. 어서 고기나 먹어.”

그런데 김보살의 고기 욕심은 컸다. 등산복 사내가 구어내기가 바쁘게 냉큼냉큼 먹어치웠다.

“자, 소주도 한 잔 하면서······. 소화제로다가······.”

사내가 이번엔 소주를 가득 부은 잔을 건네자 그녀가 단번에 들이켰다. 배가 불러오는지 젓가락질이 뜸해지자 등산복 사내가 웃옷을 벗어젖히더니 그녀 곁에 바짝 다가갔다.

사내의 손은 어느 틈에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누가 보면 어쩔려구.”

“깊은 산중에서 보긴 누가 본다고 그래.”

“이러지 마. 내가 벗을께.”

불쑥불쑥 솟은 섭돌이 많아서였을까. 김보살이 치마를 훌쩍 허리께로 넘긴 후 붉은 팬티를 휴지조각처럼 벗어 던졌다. 그리고 기마자세로 엎드리자 바로 오밤중마다 훔쳐보았던 그 보름달 같기도 하고 그 옛날 시골 지붕 위에 올려 진 박 같기도 한 여자의 엉덩이가 하늘을 향해 솟구쳤다. 그 엉덩이는 아침나절 산신각에서 꽃무늬 반바지를 입고 쿵덕쿵덕 방아를 찧듯 절을 해대는 그 뒷모습과 똑 같았다. 사내는 그 엉덩이를 향해 달려들었고, 이윽고 엎드렸던 김 보살이 고개를 획 돌렸다. 사내가 냉큼 이제 막 터져 나오는 여자의 비명 소리를 입으로 틀어막았다.

두 사람은 마구 함께 달려가고 있었다. 김 보살의 젖가슴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달려가는 등산복 사내와 그의 혀끝을 깨물며 달려가는 그녀의 가쁜 숨소리가 시나브로 높아지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다음 날, 그녀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산신각을 오르내렸고, 목탁소리에 공양을 했으며, 해질녘이면 가까운 산길을 돌아오는 것으로 산책을 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노인으로부터 다급한 무전이 날아왔다.

“여기는 헛목이다, 상목 나와라, 오바.”

“말씀하세요, 오바.”

타잔이 응답하고 있었다.

“돼지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다. 아마도 상목으로 갈 것 같은디, 오바.”

“알았습니다, 오바.”

타잔이 렝민타 5연발총에 장전을 하며 바짝 긴장을 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이제 그 산신령이란 놈이 기어이 나타나기는 나타나는 모양이었다. 무전기는 다시 날아왔다.

“하목에서 상목으로 뛰어가고 있다. 반드시 명중시키라.”

그 녀석이 어서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돼지가 산을 넘어간다. 빨리 쫓아야 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동해서 샛터골로 가라. 그리고 거기서 목을 잡아사 써!”

허겁지겁 샛터골로 달려가자니 무릎까지 빠지는 눈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이 힘들었다. 거센 댑바람이 불 때마다 눈보라가 일어나 시야를 가리면서 더욱 오한을 느끼게 만들었다.

노인이 지정한 목은 한 시간 넘게 걸렸고, 배가 몹시 고파왔다.

“돼지가 다시 방향을 틀어버렸어. 시방 멧돼지가 상목으로 올라가고 있다! 아니, 산을 넘어가고 있다!”

노인의 말대로 거대한 멧돼지 한 마리가 산등성을 힘차게 넘어가고 있었다. 온 산이 눈으로 뒤덮여 있고, 이따금 눈보라가 일어나는 야산에서 오직 힘차게 움직이는 물체는 멧돼지뿐이었다.

노인의 지시대로 산등성을 힘겹게 넘어갔다. 간신히 산등성을 넘어서자 다시 배가 몹시 고파왔다. 꼬르륵 소리가 연신 들려오기까지 했다. 다시 무전이 날아왔다. 멧돼지가 산등성에서 어디론가 사라진 것 같은데 옆으로 샜다는 거였다.

타잔이 앞장서서 노인이 지정해준 목을 향해 앞장서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한 발 한 발 걷기도 힘든 판이어서 제풀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따라오든 말든 아랑곳없이 뛰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과연 별명처럼 타잔은 타잔이구나’ 하고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젊었을 때 월출산 구름다리를 하루에 일곱 번 오르락내리락 했던 사람이지.”

한 번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도 힘든 판에 일곱 번씩이나······.

“그런데 그냥 왔다 갔다 했던 게 아니고 어깨에 쇠파이 등 자재를 매고 다녔던 사람이었다구. 그러니 사람이 아니지.”

여강은 자신의 오라버니더러 사람이 아닐 만큼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이니 눈밭에서, 그것도 산등성을 동물처럼 빨리 달리니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결국 타잔은 앞장서서 달려가듯 가는 반면에 나와 그녀는 걸음이 자꾸만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노인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돼지가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노인이 절벽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는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 뛰어내린다 해도 즉사할 수밖에 없을 만큼 깊은 절벽이었다. 멧돼지는 급히 피한다는 게 절벽으로 몸을 던진 모양이었다. 충격을 이겨내지 못한 멧돼지는 전혀 꿈쩍도 않고 있었다.

“내려가서 반드시 잡아사 써.”

황대장이 먼저 산등성을 타고 멧돼지를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 이틀간의 대장정이 끝나는가 싶었는데 멧돼지가 가까스로 몸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몇 발짝 걸어 나갔다. 한 차례 픽 쓰러지더니 이내 일어난 멧돼지는 이번엔 하목으로 뛰기 시작했다.

다 잡아놓은 멧돼지였다. 그는 피를 흘리며 뛰기 시작했으므로 뒤쫓기가 쉬웠다. 뛰어내릴 때 다친 몸에서 피가 흐르는 모양인지 선홍빛 핏자국을 눈 위에 선명히 뿌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을 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