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재현을 설명하기에 앞서 우리는 혜곡 최순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혜곡 최순우는 어떤 인물인가. 그러니까 1934년 최순우는 개성에 있는 개성부립박물관을 우연히 들어가게 된다. 삶의 이정표를 잃고 방황하던 때였다. 박물관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옥색 두루마기 남자를 발견했는데, 그는 기모노를 입은 여자들에게 박물관을 설명하고 있었다.
“개성은 고려의 도읍지였습니다. 이 박물관은 주로 고려 유물을 전시하는 향토박물관입니다.”
옥색 두루마기 남자는 최순우를 발견하더니 입장권을 사지 말고 그냥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박물관 안은 90평 남짓 크기였는데, 전시장 한 가운데에 가슴 높이의 진열장이 놓여 있었고 그 안에 청자가 한 점 있었다. 용의 머리에 꼬리는 물고기여서 특이한 청자였다.
“이것은 청자어룡형주전자입니다. 상상의 동물인 어룡(魚龍) 모양으로 만들어진 주전자이지요. 꼬리를 열고 물이나 술을 붓고 입으로 따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원래 어룡은 화재를 예방하는 상징으로 대개 건물의 용마루 끝에 장식되었는데, 12세기에 들어와서는 고려 도공들은 어룡 같은 상서로운 상상의 동물 모양으로 주전자와 향로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남아 있는 어룡 주전자는 이 한 점 뿐입니다. 보십시오. 얼마나 훌륭한 기법과 아름다운 빛깔입니까? 걸작 중에 걸작이지요.”
그런데 어룡주전자 곁에는 깨진 기왓조각이 한 점 있는 것이어서 적잖이 실망이 앞섰다. 그런데 옥색 두루마기는 자랑스럽게 청자기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고려 의종 때, 그러니까 1157년에 만들어진 것인데, 정작 의종은 무신난 때 폐위되어 거제도로 쫒겨갔다가 경주에서 살해되었습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왕이었지만 술과 여자를 탐해서 원성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왕은 호사취미도 유난해서 지붕을 청자로 덮을 정도였습니다. 청자기와를 하나하나 만들려면 고도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데 그 기술은 고려국에만 있었습니다. 청자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고려와 중국뿐이었는데 중국에서는 청자기와를 만들었다는 기록도 없고 청자기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도 아주 귀한 유물이지요. 다만 이렇게 깨진 조각으로만 몇 점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아쉽기만 합니다.”
고려사에는 의종 11년 4월 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대궐 동쪽에 이궁(離宮)을 완성하였고, 또 민가 50여채를 허물어 태평정(太平亭)을 짓고 태자에게 명하여 현판을 쓰게 했다. 정자 남쪽엔 연못을 파고 관란정(觀瀾亭)을 구축했으며, 그 북쪽으로는 양이정(養怡亭)을 세우고 청자로 덮었다는 내용이다.
최순우는 바로 그 옥색두루마기가 고유섭 씨라는 것을 몰랐지만 박물관이 생각했던 것보다 흥미로는 곳이라는 생각했다.
훗날 최순우는 고려청자에 대한 자료를 꼼꼼히 찾았다. 그러던 중 일제강점기 총독부박물관 연구직원 오가와 게이기치(小川敬吉)가 1936년에 발행된 <도자(陶磁)>에 쓴 글을 발견했는데, 강진군 대구면 일대에서 청자파편이 발견된다는 보고를 받고 확인차 내려갔다가 수동리에서 만난 소학교 어린이에게서 청자기와 하나를 입수했다는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1964년 5월 중순, 최순우와 정양모는 대구면 수동리를 찾았다. 거기에서 그들은 이용희를 만나게 된다. 훗날 청자장(靑磁匠)이 된 이용희(현재 무형문화재 제36호)였다. 이용희 집에서는 청자기와편이 니오곤 했는데, 팔지말라고 했음에도 이용희 부인은 몰래 팔려다가 드디어 두 사람은 집에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안마당 뿐 아니라 부엌 바닥에도 청자파편이 흙 사이에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온 집안이 청자파편 투성이였다. 최순우는 놀란 이용희에게 국립박물관 직원임을 알려주고 나서 집 주위를 실측하고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9월22일 최순우는 정양모․ 이준구․ 김동현 등 학예관들과 함께 사당리 117번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마당에 시굴갱을 파기 시작했다. 이용희는 인부로 채용되어 일을 돕도록 했다. 파들어가자 암키와, 암․ 수 막새기와 하나가 10분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땅을 더욱 파내려가자 각종 청자기와가 쏟아졌다. 거의 원형에 가까운 것들도 있고, 서(西) ․ 누(樓) ․ 남면(南面) 등 지붕의 위치를 가리키는 글자가 음각된 것도 있었다. 제작 연대를 알 수 있는 정해(丁亥) ․ 임신(壬申) ․ 갑신(甲申) ․ 기사(己巳)가 새겨진 것도 나왔다. 바로 이곳이 개성 만월대 부근에 있었다는 양이정을 덮은 청저기와를 만든 가마터임을 알 수 있었다.
10월 5일과 6일, 각 일간지는 청자기와와 가마터 발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밝혀진 청자기와의 전설’ ‘청기와 900년만에 베일을 벗어-밝혀진 도요지’ ‘햇빛 보게 된 불멸의 문화재’ ‘고려청자 전 품목을 발굴’ ‘청자의 갖가지 수수께끼와 속모습을 해결’ ‘고려청자 문화의 요람 강진군 대구면’이라는 제목으로 연일 보도경쟁이 벌어졌고, 청자는 온 국민의 관심을 끌면서 한국 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재로 발돋음하기 시작했다.
이후 국립박물관에서는 이용희의 집 170평을 비롯해 대구면 일대 187.500평을 사적 제68호로 지정하고, 1980년대 중반까지 20년에 걸쳐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워매, 청자 나왔네!”
1976년 11월 밀알회 주최 세미나 석상에서 도예가 조기정은 「고려청자와 강진」이라는 주제 발표를 했다. 그때 그는 “임진왜란 때 일본이 우리나라의 도공들을 납치해서 시요(始窯)한 것이 오늘 날에는 세계 제1의 도자 생산국으로 군림하게 되었으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도자 부문만의 수출액이 우리나라 전 수출액을 상회하였다”고 말하자 참석했던 군수 이하 모든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후 1977년 1월에 고려청자 사업을 강진군 특수산업으로 확정되었고, 가마 축조와 기계 설비에 소요되는 경비 500만원을 둔비에서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이해 6월 15일 청자 재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관민합동으로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를 구성했고, 6월 18일 청자 재현 가마솥을 걸고 강진요 제1호 기공식을 거행했다.
강진요는 1973년 사당리에서 발굴한 청자가마터의 원형을 본뜨는 한편 일부 과학적인 수정을 보태 작업장을 지었다. 그리고 조기정, 이용희 두 사람이 지휘감독을 하는 가운데 공장장 손양호, 성형사 안열수, 조각사 김광철, 정형사 홍성준 윤재진 등 7명의 도공들이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77년 12월 27일 오후 3시, 600년 동안 불길이 꺼져있던 강진 고려청자 가마터에 불길이 당겨졌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하나의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 그것을 지켜보는 도공들의 눈빛은 하늘을 향해 기원하는 것 같았다.
쪽빛 하늘빛과 같은 푸른 청자가 만들어지게 일월성신께서 돌보아 주십시오. 도공들은 그렇게 빌었고, 화목 불가마는 초벌구이 800℃에서 본벌구이1.300℃ 내지 1.500℃를 오르내리며 200여점의 청자를 굽기 시작했다.
드디어 1978년 2월 3일 오후 1시는 역시적인 날이자 시간이었다. 국내외 보도진들과 일반인 등 6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요출이 진행되었다. 조기정과 이용희 두 사람이 가마 안으로 들어갔다.
“워매, 청자 나왔네!”
이용희는 감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가마 안에서 소리쳤다. 600년 동안 잠자던 청자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청자빛 그릇이었다.
이날 극적인 상황은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방송 등 매스컴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대한뉴스 1171호에도 실감나게 보도되었다.
강진청자는 40년 전 이렇게 재현되었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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