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우면 농어민과 서민, 영세상인, 중소기업부터 타격을 받게 마련이다. 농사와 가계운영, 사업이 위기에 처한 서민과 영세 사업자들이 손을 벌릴 곳은 결국 사(私)금융권 뿐이다. 신용도 담보도 없는 이들에게 제도 금융권이 돈을 빌려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당장 농사가 어렵고 가계가 무너지고 사업이 부도나는 판에 금리를 따지긴 어렵다. 일단 위기를 막느라 고리채를 끌어다 쓰지만 살인적인 고금리를 감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빚독촉에 시달리다 가산과 사업체 모두를 빼앗기거나 폭력배의 위협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정부 조사에 따르면 국내 사금융 시장 규모는 매년 급증하는 추세이고, 성인 인구의 상당수가 사금융을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사금융권에서 빌린 돈의 이자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하고 있고, 법정 제한이자율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이용자의 50%는 무등록 대부업체나 공인중개사 대표 등 개인에게서 빌렸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사채(私債)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지 말해주는 통계다. 경제가 어려울 수록 사채의 ‘덫’에 걸리는 사람들은 늘어날 수 밖에 없다. 무등록 대부업체가 수만개로 추산되고 일본에서까지 사채 자금을 들여왔다는 보도도 있었다. 일반인들의 휴대폰에 사채를 쓰라는 문자 메시지가 날마다 날아드는 세상이다.
불법사채의 뒤에는 대부분 폭력배와 공인중개사 대표 등 사기꾼들이 버티고 있다. 빚을 갚지 못하는 서민과 영세사업자들은 무자비한 폭력과 협박, 모욕에 시달려야 한다. 가족이나 친지까지 괴롭히고 살해 위협마저 서슴지 않는다. 지난 2008년 자살한 탤런트 고(故) 안재환씨도 사채에 쫓긴 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요 원인으로 드러났다. 일본 대부업자의 자금을 끌어와 연간 580%의 고금리로 1천여개 중소업체들에 730억원을 불법대출한 일당들도 폭력조직과의 연계가 의심된다고 한다. 살인적 고금리와 무자비한 폭력이 난무하는 사채시장을 보면 한국 사회가 무법천지 아닌가라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힘없는 서민과 영세 업자들이 이 같은 폭력과 불법의 먹잇감으로 노출돼 있으니 말이다. 이처럼 만연한 불법사채를 뿌리 뽑으려면 지엽적인 일과성 단속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종합적이고 지속적인 단속 아니면 힘들다. 처벌도 강력해야 한다.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금융 이용자 대부분이 농어민과 서민, 영세 사업자라는 점을 고려해 불법사채 업자들은 민생사범 차원에서 다뤄야 한다. 또 불법사채와 연계돼 자행되는 폭력, 협박 행위는 조직폭력배 수준으로 엄단(嚴斷)할 일이다. 독버섯처럼 번지고 있는 불법사채 광고도 철저히 추적해 근원부터 차단하려는 선제적 노력이 필요하다. 이메일이나 인터넷, 휴대전화, 각종 광고 등에 넘쳐나는 불법사채 광고의 희생자는 청소년이나 직장 여성 등인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필요하다면 관련법도 신속하게 정비해야 한다. 고금리를 감당할 수 없을 게 뻔한 농어민과 서민들에게 불법사채를 안기고 폭행과 협박을 일삼는 악행(惡行)을 아예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 사채 피해를 입은 서민과 영세 사업자들을 구제할 수 있는 적극적인 대책도 검토해야 한다.
이 같은 종합적인 대책이 있어야 집요하게 번지는 불법사채란 ‘악(惡)’의 뿌리를 뽑을 수 있다. 농어민과 서민들의 삶을 파탄내는 불법사채를 발본색원(拔本塞源)할 수 있는 근본 대책이 하루 속히 시행되길 학수고대(鶴首苦待)한다.
다음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