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 첫 아침을 맞는 명절로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이다. 새로운 기분과 기대를 가지고 웃어른들을 찾아뵙고 인사하며 덕담을 나누는 풍습이 어찌 아름답지 않을 수 있을까. 설날이 되면 멀리 있는 친척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장농속 한복을 꺼내 입고 아이들은 복주머니를 달아 즐거이 절을 하고 덕담과 세뱃돈을 받는 재미가 쏠쏠했었다. 평소에 먹기 힘든 기름지고 맛난 음식들에 행복했었고 모두가 함께여서 더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지금 곱씹어도 어제와 같으니 참 아름다운 추억이다.
‘설’이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설다’, ‘낯설다’ 의 의미로 새로움 익숙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견해와 한 해를 새로 세운다는 뜻의 ‘서다’ 에서 생겼을 것이라는 견해가 있다. 마지막으로 설이라는 말이 17세기 문헌에 ‘나이’, ‘해’ 를 뜻하는 말로 쓰인 것으로 보아 ‘나이를 하나 더 먹는 날’ 의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니 새로운 해와 나이를 맞는 날을 기념하기 위해 이름 붙인 것만은 분명하다.
설에 관련한 옛 기록은 삼국시대부터 찾아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는 261년에 설맞이 행사를 하였으며, 신라에서는 651년 정월 초하룻날에 왕이 조원전(朝元殿])에 나와 백관들의 새해 축하를 받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새로운 해를 축하하는 의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설은 일제 강점기에 양력을 기준으로 삼으면서 강제적으로 쇠지 못하게 한 때도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통에 의해 별 실효가 없었다. 이러한 정책은 광복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제도적으로 양력설을 공휴일로 삼았으나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여 음력설이 공휴일이 되었다가 1989년부터 민속의 날을 ‘설날’로 개칭하고 사흘의 연휴 기간으로 늘려 양력설과 동등하게 대우하였다. 1991년부터는 신정 휴일을 사흘에서 이틀로, 1999년부터는 하루로 줄임으로써 음력설이 양력설과의 오랜 경쟁에서 우위를 지녀 본격적인 설날로 다시 정착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설날이 돌아오면 집집마다 아녀자들은 켜켜이 쌓아두었던 놋그릇을 꺼내 닦는 일이 연례 행사였다. 당시에는 놋그릇 닦는 세제가 없기 때문에 산 아래 제각에 기와 장을 몰래 가져다 곱게 빻아 채에 쳐서 재와 섞어 놋그릇을 반짝 반짝하게 닦아 제사 모실 준비를 했었다. 남정네들은 마을 안팎을 대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모아 태우곤 했다. 불에 탄 쓰레기들이 타닥거리면서 타는 소리에 모든 잡귀가 놀라서 연기 따라 훨훨 사라진다 하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설날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라 하고, 어른들을 찾아뵙는 일을 세배라 하였다. 아이들이 입는 새 옷을 세장(歲粧)이라고 하고, 이날 대접하는 시절 음식을 세찬(歲饌)이라고 하는데, 세찬으로는 떡국을 먹었다. 나는 세찬으로 먹었던 어릴 적 어머니께서 끓여 주신 닭고기를 넣어 담백했던 떡국이 늘 생각난다. 촌닭으로 끓이는 어머니의 떡국은 어찌나 개미가 있는지 고기로 끓인 떡국이 따라할 수 없는 맛이었다. 닭을 토막 내서 뜨거운 물에 데쳐 기름기와 잡냄새를 제거해 맛을 낸 고소한 국물 맛이 늘 머릿속에 있다.
예부터 임금님 상에 올리는 떡국은 꿩고기로 끓었다고 한다. 꿩이 귀하고 잡기 힘들어 대신 닭으로 끓인 떡국에서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얄팍하게 옆으로 모양을 내어 본래보다 더 크게 보이게 어슷하게 썰은 떡국도 옛 조상들의 부족했지만 풍성한 명절을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니 이 작은 것들마다 우리네 이야기가 담기지 않은 것이 없다. 고소하게 끓여진 떡국에 화룡점정(畵龍點睛)으로 기름칠 하지 않은 생김을 은근한 불 위에 살짝 닿을 듯 말 듯 구워서 사각사각 소리 날 때 바스라지게 해 국물 위에 솔솔 뿌려 얹어먹으면 그 어울림이 따라올 맛이 없다. 우리 어머니의 비결대로 설날이면 사돈댁에서 보내준 촌닭으로 육수를 내어 떡국 끓일 준비를 한다. 떡은 꼭 직접 방앗간에서 뺀 떡으로 준비한다. 밀가루가 섞이지 않아 딱딱해지지 않고 국물 맛도 개운한 비결이 바로 직접 뺀 떡국이다. 살짝 구운 김가루를 얹어 이제는 내가 우리 손주들에게 끓여주고 있는데 맛나다며 잘 먹는 그 모습을 보면 이 이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할머니의 떡국을 나처럼 기억해줄까 하는 생각에 애틋해진다.
설날에 하던 놀이로는 윷놀이, 널뛰기, 연날리기 등이 있다. 얼마 전에 설날이 다가온다며 손주 녀석이 휘황찬란한 연을 들고 왔다. 어찌나 색감도 화려하고 웬만한 충격에는 끄떡없어 보이게 튼튼하고 크기까지 커다란지 보는 이마다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는 연이었다. 이런 것은 어디에서 난거냐고 물으니 중국에서 주문해서 비행기를 타고 온 녀석이란다. 값도 싸고 크기도 큰데 다른 나라까지도 무료 배송이라고 설명하는 걸 듣자니 이런 것이 격세지감(隔世之感)인가 싶었다. 어릴 적에 동생들과 같이 만들어 놀던 창호지 연이 떠오른다. 바쁘신 아버지를 졸라 대나무를 얇게 낫으로 잘라주시면 잘 엮어서 남매들이 협동해서 귀퉁이는 밥풀로 붙이고 긴 꼬리를 달아서 오밀조밀 만들었었다. 하루 종일 논두렁을 뛰어다니며 날리던 그 가오리연이 연의 전부인줄 알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미세먼지로 밖에 나갈 때는 마스크를 필수로 하고 외국에서 온 화려한 연을 날리고 있다. 이마저도 도시에서는 탁 트인 공간이 많지 않아서 멀리 나가지 않으면 날릴 수도 없다고 투정부리는 아이를 보니 좀 안타까워진다. 문방구에 들러서 아이들이 좋아할 윷놀이가 보여 구입해와 방법을 알려주니 온가족이 둘러앉아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모두가 즐겁게 함께할 수 있는 전통 놀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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