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삼국지연의도 이야기 8

단도부숙(單刀赴肅)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촉오 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진나라 진수(陣壽:233~297)의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하고 〈한진춘추(漢晉春秋)〉와 〈삼국지주(三國志注)〉를 참고로 하고 14세기 작가 나관중(1330?~1400)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 놓은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金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민화전이 최근 강진에서 열렸다. 한국민화뮤지엄에서 열린 ‘석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석지(石芝) 채용신(蔡龍臣)은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렸던 초상화가로서 삼국지연의도를 단순히 삼국지연의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말 우리민족이 품고 있던 간절하고 원대했던 뜻을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삼국지연의도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자. -편집자 주-

단도부숙(單刀赴肅) : 관우가 혈혈단신으로 노숙의 잔치에 가다

단도부숙의 배경이 되는 이야기는 앞서 있었던 ‘서성탄금’보다 약 10년 정도 전에 벌어진 일이다. 단도부숙을 설명하자면 적벽대전 직후로 돌아가야 한다.

조조군은 크게 패하여 철수를 했고 손권의 오나라는 조조군을 때려 잡기는 했지만 정작 중요한 형주 땅을 유비측에게 넘겨주고 만다. 결국 결정적 싸움은 조조와 손권이 벌였고 유비측은 철수하는 조조군의 병장기를 수거하고 나아가 군사적 요충지인 형주성을 낼름 접수한 것이다. 게다가 유비는 적벽대전이후 새끼 봉황, 일명 ‘봉추’라 일컬어지는 천하의 기재 방통을 부군사(副軍師)로 얻는 겹경사를 맞는다.

형주라는 큰 성을 얻게 된 유비는 삶이 윤택해지자 재테크를 꿈꾼다. 처음 제갈량이 제시했던 천하삼분지계의 첫 단추 ‘형주성 점령’이 성공하자 이제는 눈을 왼쪽으로 돌려 서천땅을 공략하기로 마음먹는다. 당시 서천의 주인은 종친인 ‘유장’이라는 사람이 굳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능력있는 신하들이 그를 배신하고 유비에게 지도를 갖다 바치며 타이밍만 맞으면 성문도 열어줄 것처럼 준비를 하고 있는게 아닌가.

서천을 한 입에 삼킬 수 있는 여건이 성숙하자 부군사 방통은 유비에게 무력동원을 종용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유비가 확답을 피하고 우물쭈물 즉답을 회피했다.

“그동안 오십 평생을 남의 집에 빌붙어 살다가 이제야 터전을 하나 마련해서 숨 좀 쉬게 됐는데 어찌 땅을 더 넓히고 싶지 않겠소만. 유장은 나와 종친이라 차마 빼앗지 못하겠소.” 속에는 능구렁이 100마리는 들어앉아 있을 것 같은 유비가 뜬금없이 착한 척을 했다. 유비 자신은 끝까지 인의의 화신이 되어야겠고 누군가가 종친인 유장을 제거하려고 나서야 마지못해 출전을 하겠다고 폼을 잡을 모양인지라. 답답해하던 방통이 먼저 말을 꺼낸다.

“거! 주군 참 답답하시네. 결정적인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할 때 못 내리는 그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또 어디 있습니까? 아들 아프다고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가 망한 원소가 그랬고, 싸워야 할 때 술로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말도 빼앗기고 방천화극도 도난당한 여포가 그렇게 망하지 않았습니까? 평소 높은 안목과 밝은 눈을 갖고 계신 줄 알았는데 어찌 이리 망설이십니까! 지금 기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좋은 시절은 오지 않습니다”

방통의 핀잔이 귀에 거슬렸는지 유비가 결단을 내렸다. “그리 합시다! 내 부군사의 말을 듣고 유장을 치리다”

단도부숙도(單刀赴肅圖) 관우가 노숙이 초청한 잔치에 갔다가 실컷 즐기고는 오히려 노숙을 인질삼아 탈출하는 장면이다. 도부수를 동원해 관우를 제거하려던 오의 계책은 보기좋게 실패하고 만다.

유비의 결단에 힘을 얻은 방통은 일사천리로 유장 제거작전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유비는 형주방위에 주력군인 관우, 장비, 조운을 모두 두고 2군 전력으로 서천 정벌에 나선다. 물론 그만한 병력과 장수, 부군사 방통이 있다고 하지만 최소한의 군사 지식이 있다면 주력은 공격작전에 보조전력은 수비 작전에 써야하는 것을 유비는 간과했다. 유비는 알고 보면 심리전의 달인일 수는 있었지만 군대에 대해서는 경험에 의해서 싸우는 초보 장군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껏 유장을 치겠다고 해놓고는 정작 유장을 만나자 측은한 생각이 들었는지 유비가 도통 유장을 칠 생각을 안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장송, 법정, 맹달 등 유장의 성에서 호응을 하기로 했던 사람들의 계획이 탄로나면서 오히려 역습을 당해 애꿎은 방통만 어이없이 잃고 말았다. 와룡과 봉추 하나만 얻어도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했는데 새끼 봉황은 날개도 펴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생을 마감했다. 유비는 그제서야 때늦은 후회를 했다. 그래도 운이 좋은 사람은 다 하늘이 나서서 도와주는 법. 유비의 위기를 알았는지 장비와 조운, 제갈량이 차례로 합류하면서 유비군은 비교적 쉽게 서천을 빼앗을 수 있었다. 그러나 부군사 방통을 잃고 얻은 수확이었기에 더욱 가슴이 아픈 유비였다.

한편 관우를 제외한 주력이 서천으로 이동한 사이 형주를 외롭게 지키게 된 관우는 그 어느때 보다 책임감이 요구됐다. 이때 유비가 서천을 취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손권측에서는 형주를 되찾기 위한 작전에 들어간다.

그 첫 번째 작전은 ‘제갈근 인질작전’ 이었다. 오나라는 제갈량의 형이자 오나라 고관인 제갈근에게 식솔을 인질로 삼은 뒤 형주땅을 찾아오면 인질들을 풀어주겠다는 협박을 했다. 물론 다 제갈근과 손권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는데 제갈근의 사정을 들은 제갈량은 유비에게 계책을 알려주며 장사, 계양, 영릉 세 군(郡)을 오나라에 주라고 했다. 이에 유비는 편지를 작성 후 관우에게 이 편지를 제시하라고 하며 협상을 마무리 했다. 한편 제갈근은 말 한마디로 형주의 절반이나 되는 땅을 찾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형주로 갔다. 형주에 도착한 제갈근은 유비의 편지를 관우에게 꺼내놨다. 그런데 편지를 다 읽기도 전에 관우가 안 그래도 빨간 얼굴이 불타듯 달아올르며 불호령을 내렸다.

“그 따위 얕은 꾀로 나를 놀리는 것이오? 선생의 가솔은 안전할 것이니 걱정마시오. 다만 승상의 형이라 이쯤해서 봐주는 것이오만 다음에는 이 칼이 선생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외다.”

관우의 호통에 제갈근은 더 이상 협상의 진전이 없을 것으로 알고 다시 오나라로 돌아갔다. 손권은 자초지종을 듣고는 관우의 무례함에 이를 갈더니 다음 작전을 준비한다.

굳이 작전명을 붙이자면 ‘술 잔치에 초대해 관우 운장 때려잡기’ 쯤 되려나? 작전의 내용을 들어보자면 아래와 같다.

우선 육구라는 곳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크게 잔치를 열어 관우를 초청한다. 그 다음 관우가 그 잔치에 오면 좋은 말로 달래서 땅을 내놓게 한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매복 시켜둔 도부수(刀斧手)로 습격해 때려 잡고, 곧이어 군사를 일으켜 형주를 점령하면 된다.

얼핏 보면 아주 치밀(?)한데다가 손권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어주는, 가슴에 팍팍 와 닿는 계책이었다. 손권은 즉각 시행하라며 작전을 재촉했다. 마치 형주 땅이 눈 앞에 들어온 것 같은 손권이었다. 오나라의 초청장은 곧 관우가 있는 형주로 전해졌고 이 초정장을 받아든 관우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분명 좋은 뜻은 아니겠지만 내가 가지 않으면 나를 겁쟁이로 볼 게 아니겠느냐? 배 한 척에 여남은 명만 데리고 갈 것이다. 칼 한 자루만 차고 잔치에서 노숙이랑 노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구나! 하하하!”

며칠 뒤 칼을 품은 잔치를 벌이고 있는 육구에 정말로 관우가 나타났다. 호랑이굴에 제 발로 왔으니 계책이 절반은 성공한 셈이라 오나라 측 무장들은 공을 세워볼 생각에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런데 술자리가 길어지면서 노숙은 슬그머니 형주땅 반환문제를 언급했고 관우와 술자리 대화에 날이 서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살짝 험악해지려던 찰나, 관우가 왼손에 큰 칼을 잡고 오른손으로 노숙의 손을 움켜 잡더니 짐짓 술에 취한체 했다. 그러더니 슬슬 술판을 마무리 하려는 듯 “흥을 깨는 얘기는 그만하고 나중에 형주로 노숙공을 초청할테니 그때 논의합시다.”

관우의 숙취연기는 점점 무르익어갔고 노숙은 점점 사색이 돼 갔다. 관우가 언제 언월도를 휘두를지 몰라 불안해 하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강변으로 끌려갔다. 한편 노숙의 명만 내려지면 곧 달려들 준비를 했던 도부수들과 장수들도 속이 타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 같아서는 관우와 주창, 관평을 한 번에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인데 그랬다가는 먼저 노숙이 두동강 날 참이라 손 놓고 구경할 수 밖에 없었다.

관우는 강변에 도착해 배에 오르기 직전에야 노숙을 놓아주며 “오늘 술 잘 마셨소이다!”하며 호탕하게 웃어재꼈다.

결국 수많은 병사를 동원하고 비싼 술 먹여가며 관우를 초청했건만 오나라는 아무것도 건진 것이 없었다.

단도부숙 그 뒷 이야기

연이은 작전이 실패하자 오나라는 후사를 도모하자는 뜻으로 관우의 딸과 손권의 아들 간 정략결혼을 추진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관우가 “호랑이의 딸을 개의 자식에게 줄 수는 없다”며 모만하게 거절한다.

그러자 화가 극에 달한 손권은 여몽을 대장으로 삼아 형주공략전에 나선다. 이 작전은 그동안 진행된 말장난과 같은 작전과 달리 제대로 된 군사작전이 펼쳐지면서 관우는 봉수대를 차례로 빼앗기더니 적에게 허망하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다. 결국 60세를 일기로 아끼는 양아들 관평과 함께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를 따르던 주창은 관우가 참수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관우를 따라 자결을 한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