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시조시인 윤광제의 삼국지연의도 이야기 7

서성탄금도

서성탄금(西城彈琴) : 서성에서 거문고를 뜯다

삼국지연의는 중국의 위촉오 세 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진나라 진수(陣壽:233~297)의 정사(正史) 〈삼국지(三國志)〉를 토대로 하고 〈한진춘추(漢晉春秋)〉와 〈삼국지주(三國志注)〉를 참고로 하고 14세기 작가 나관중(1330?~1400)의 상상력을 가미해 만들어 놓은 소설이다. 원래 이름은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이며, 《수호전(水滸傳)》, 《서유기(西遊記)》, 《금병매(金甁梅)》와 함께 중국 4대기서(四大奇書)의 하나로 꼽힌다. 삼국지는 중국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삼국에서 모두 사랑을 받는 명작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특별한 민화전이 최근 강진에서 열렸다. 한국민화뮤지엄에서 열린 ‘석지 채용신의 ‘삼국지연의도 특별전’이 바로 그것이다. 석지(石芝) 채용신(蔡龍臣)은 고종 황제의 어진을 그렸던 초상화가로서 삼국지연의도를 단순히 삼국지연의에서 주목할 만한 장면을 그린 것에 그치지 않고 조선말 우리민족이 품고 있던 간절하고 원대했던 뜻을 담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에 민화를 풀어주는 남자 ‘윤광제 시조시인’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삼국지연의도의 비밀을 함께 풀어보자. -편집자 주-

서성탄금(西城彈琴)은 탄금주적(彈琴走賊 : 거문고를 뜯어 적을 물리치다)이라는 다른 명칭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림을 설명하는 명칭으로는 탄금주적, 또는 서성월야탄금퇴위병西城月夜彈琴退魏兵 : 서성에서 달밤에 거문고를 타서 위나라 병사를 물리치다)이라는 표현이 더욱 쉽게 다가온다.

서성탄금(西城彈琴)

삼국지연의의 이야기도 서서히 끝을 향해 달려간다.

조조부터 시작된 위나라의 이야기는 조조(155~220)가 65세에 죽고 뒤를 이은 아들 조비(187~226)가 재위 7년 만에 40세의 젊은 나이에 죽으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위나라에서는 새로운 위왕으로 조비의 아들 조예(당시 21세 추정)를 앞세워 중원의 질서를 다잡겠다고 대관식을 거행한다.

한편 강력했던 조조와 조비시대가 가고 새로운 위왕 조예의 정권 장악력이 그의 아비와 할아버지만 못하다고 판단을 했는지 촉에서도 서둘러 중원탈환을 위한 준비를 한다. 시대를 떠나 전장으로 나서는 신하가 황제에게 바치는 글 중 으뜸으로 치는 제갈량의 ‘출사표(出師表)’는 바로 이 때 만들어진다. 지금도 월드컵이나 올림픽 등 국제대회에 나설 때면 감독이 ‘출사표를 던지다’는 표현을 쓰는데, 제갈량의 출사표에서 그 유래를 찾는다.

위군(魏軍)이 오기 전에 출동시킨 관흥(關興)과 장포(張苞)의 군대가 매복을 했다는 의미이다

중원 회복을 위해 촉은 30만 대군을 이끌고 출전을 한다. 이에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던 조예의 위나라는 촉보다는 적지만 그래도 20만 명에 달하는 대군을 방어전에 투입했다.

이미 1세대 장군들은 상당수 전사하거나 늙고 병들어 역사의 현장에서 그 이름을 확인하기 어렵게 됐다. 그래도 노구를 이끌고 빛나는 활약을 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촉나라 오호대장군중 한 명인 70세의 조운 자룡이었다. 조운은 개전초기에 위나라 병역(兵役) 명문가(名文家)로 이름난 한덕이라는 장수와 일전을 벌여 현역 장군 한덕과 그의 아들 4명을 모조리 죽여 한 순간에 멸문(滅門) 시켜버렸다. 촉은 기세를 몰아 하나 둘 위나라의 성을 장악해 갔다.

그런데 좋은 일에는 마(魔)가 낀다고 했던가? 승전가도를 달리던 촉에서 맹달이라는 장수를 사마의에게 잃으면서 승전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히 식고 말았다. 제갈량은 분위기 반전을 위해 가정(佳亭)을 마속(馬謖)에게 맡기고 다시 전투를 이어간다. 그런데, 애초에 제갈량이 지키라고 했던 곳을 무시하고 무조건 높은 곳이 유리하다고 믿고 산꼭대기로 진을 옮긴 마속은 식수 부족으로 곤란을 겪더니 병사들이 갈증으로 힘들어하는 틈을 타서 들이닥친 위군에 의해 수많은 병사를 잃고 진지마저 빼앗기면서 촉은 더 이상의 진격작전을 수행할 수 없게 됐다.

가정전투 한 번의 실패로 촉군의 전황은 급격히 나빠져 철군을 해야 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도 봤듯이 군대에서 펼쳐지는 수많은 작전 중에서도 철수작전은 상당히 어려운 편에 속한다. 전황이 기운 상태에서 본대가 가지고 있는 병력과 장비를 최대한 손실없이 본국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까운 작전이다. 지금처럼 원거리 무기와 이동수단이 발달했다면 이동시간을 줄이는 방법이라도 강구해보겠지만 삼국지의 배경이 되는 시기에는 사기에 따라 병력이 급격히 무너지고 철수(撤收)가 아닌 패주(敗走)로 변하기 십상이었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질서 정연하게 전투력을 유지하면서 도망가는 것은 철수이고 생존을 위해 무질서하게 병력이나 장비가 흩어지면서 도망가는 것이 패주라고 할 수 있겠다. 제갈량을 비롯한 전쟁을 보는 식견이 있는 장수들은 패주가 아닌 철수를 위해 가장 강한 군대를 뒤에 두고 본대가 이동할 시간을 벌기 위해 고심을 했다.

급한 대로 제갈량은 휘하의 병력들을 분산 배치하면서 최대한 철수작전 실행을 위한 준비를 펼치면서 5천의 병사를 이끌고 가까운 곳에 있는 서성(西城)으로 갔다. 그런데, 전령이 급하게 달려와 아뢴다.

“승상! 사마의의 15만 대군이 서성을 향해 몰려오고 있습니다.”

전령의 청천벽력과 같은 보고에 공명은 크게 놀랐으며. 휘하 장수들의 낯빛 또한 백짓장처럼 하얘졌다. 현재 5천의 병사와 함께 서성에 들어왔지만 그 중 절반은 군량을 싣고 성을 벗어나 실제 전투가능 병력은 2천5백에 지나지 않았다. 놀람도 잠시 어느새 차가운 이성으로 돌아온 제갈량은 급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깃발은 최대한 감추고, 병사들도 몸을 숨길 것이며 길목을 지킬 몇 명을 제외하고는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성문은 활짝 열고 20명의 병사를 백성으로 변장시켜 물을 뿌리고 성문 앞을 쓸게 하라. 위병이 가까이 오더라도 절대 소리내지 말라! 알겠느냐?”

제갈량의 황당한 지시에 부하 관원들과 병사들은 눈만 꿈벅이며 한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한 관리가 어렵게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을 했다. “이 지시대로 하면 되겠습니까? 다음은 어찌하오리까?”

이에 제갈량은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라. 다 계책이 있느니라!”하며 병사들을 단속했다. 잠시 후 제갈량은 흰 학창의를 입고 윤건을 쓴 뒤 동자 둘을 데리고 성루에 올라 성 밖을 지켜봤다. 얼마 후 사마의의 위군이 나타나자 거문고를 뜯기 시작했다. 서성 앞에 나타난 사마의는 전투 중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런 황당한 모습에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 ‘과연 저 성으로 돌격을 해도 되는 건가? 지금까지 겪어본 제갈량은 한 번도 도박같은 전투는 하지 않았고 철저히 이기는 싸움만 하는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뭔가 대단한 준비를 하지 않고는 저렇게 성문을 활짝 열고 평온하게 거문고를 뜯을 수는 없을 것이다.’ 라고 판단한 뒤 전군의 말머리를 돌려 물러났다.

두 동자가 시중을 들고 있는 가운데 제갈량은 성루에서 거문고를 뜯고 병사 둘은 성문 앞에서 비질을 하고 있다.

그림을 보면 앞서 설명한 내용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기에 중복된 내용은 제외하겠다. 일단 좌측 상단에 있는 깃발들이 모여있다. 이는 제갈량이 위나라 군대가 오기 전에 출동시킨 관흥(關興 : 관우의 큰아들)과 장포(張苞 : 장비의 큰아들)의 군대가 매복을 했다는 의미이다. 성문 앞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병사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조선군의 모습이며 성(城)의 모습도 조선의 일반적인 성곽 모습을 보인다. 기회가 되면 전라병영성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특이한 그림이라면 도망가는 위나라 군대의 가장 앞에서 북두칠성 모양의 별자리를 그린 깃발이 눈에 띈다. 이것은 초요기의 일종으로 군사가 전진하거나 행진할 때 대장이 장수들을 부르거나 지휘할 때 쓰던 깃발이다. 이를 통해 당시 조선시대 군대의 행군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림의 설명대로 사마의가 이끄는 위군은 철수를 했고, 그 사이 촉군도 비교적 안전하게 전장을 이탈할 수 있었다.

초요기는 군사가 전진하거나 행진할 때 대장이 장수들을 부르거나 지휘할 때 쓰던 깃발이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군대의 행군 모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급하게 도망가는 사마의 중달(司馬懿仲達 : 중앙하단에 붉은 옷을 입은 사람).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는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중달이 바로 이 사람이다.

읍참마속(泣斬馬謖) : 눈물을 머금고 마속을 베다

제갈량은 이후 병사들을 수습해 차분한 가운데 질서정연하게 후퇴를 했고 조운 자룡이 후위를 맡아 본대가 충분히 철수할 시간을 확보한 뒤 아무런 피해없이 철수작전을 마무리 했다. 이 철수작전이 끝나고 촉은 실패한 한중 공격작전과 성공한 철수작전에 대한 ‘논공행상’을 벌였다. 우선 철수작전의 성공을 이끈 조운에게 황금 50근과 비단 만 필을 상으로 내리게 했으나 조운이 오히려 사양하며 “한중 공격작전에 실패했으니 죄가 있을 진데 어찌 상을 받겠습니까? 황금과 비단을 곳간에 두어 훗날을 도모하는데 쓰시는 것이 옳을 줄 아룁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제갈량은 조운의 인품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전보다 더 존경하며 흠모했다.

한편 이 작전실패의 책임을 물어 제갈량은 스스로 승상의 자리에서 우장군으로 좌천을 요청했으며 이번 작전 최대의 실패를 가져온 마속에게는 참(斬)형을 내렸다. 평소 촉 진영에서 백미(白眉 : 흰 눈썹)로 이름난 문신(文臣)인 마량(馬良)의 동생이라는 후광과 병법깨나 읽었다고 하며 제갈량을 따르는 모습을 기특하게 여겨 귀하게 썼으나 결국 큰 잘못을 저질러 막대한 피해를 입히니 아끼는 마음은 있으나 죄를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마속은 참형에 처해졌고 ‘제갈량이 눈물을 머금고 아끼는 장수 마속을 베다’라는 뜻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고사성어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다음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