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제왕인 독수리, 그러나 까치에게는 쩔쩔 매는 광경…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차고 오르는 위용은 하늘의 제왕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맹금류 중에서도 덩치가 크기 때문에 날개 짓하는 모습은 더욱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 독수리는 몽골의 혹독한 추위를 피해 머나먼 한국까지 날아온다. 철원평야, 낙동강하구, 우포늪 등지에서 독수리 떼를 발견할 수 있는 독수리는 그러나 텃새인 까치 때문에 체면을 여지없이 구기고 만다. 날카로운 부리로 까치 정도는 당장 잡아먹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못한다. 독수리는 사냥을 하지 않고 죽은 사체만을 먹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오는 맹금류는 34종 가량 되는데, 유일하게 독수리만큼은 사냥을 하지 않고 성격도 사납지 않기 때문에 까치나 까마귀 등 한국의 텃새들에게 종종 쫓겨 다니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특히 까치는 독수리의 등에 턱 올라타서 쪼아대는가 하면 독수리 곁으로 의젓하게 걸어가는 까치의 모습에서 독수리의 체면이 이만저만 구겨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철원지방에 사는 주민들은 겨울철 독수리가 찾아올 때면 으레 자기 몸집의 10분의 1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까치에게 쫓겨 다니는 독수리를 보고 기가 막혀 혀를 끌끌 차곤 한다. 양을 치는 개가 순하디순한 양을 모는 것 같다고들 말을 할 정도인데, 동물의 사체를 보고 몰려들었다가도 까치에게 눈치를 보며 먹이를 먹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독수리는 하늘의 제왕도 아니요, 똑같이 하늘을 나는 매와는 전혀 다르다. 황석영이 쓴 그 유명한 소설 <장길산>에서 첫 대목에 매와 수리가 싸우는 사건이 나오고 이어 구렁이와 싸우는 사건이 나오는데 여기에서도 독수리가 아닌 매였다.
-- 매가 수리를 향하여 일격을 가하려고 달려들 때에,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목청을 합쳐 고함을 질렀다. 허공에서 매와 수리의 깃털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수리는 매의 거세어진 기세에 당하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더니, 상대를 버리고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매가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힘을 얻어 수리 뒤를 바짝 쫓아갔다. 수리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방향을 바꾸는데 매는 위로부터 곤두박질치면서 수리의 머리를 쪼았다. 치명타를 입은 수리가 물에 처박혔고, 매는 다시 위로 드높게 날아올랐다. 환성이 크게 일어났고 매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자랑스럽게 맴돌더니 지친 듯이 마을 어귀의 당솔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장길산>의 매는 장산곶매인데, <해동청 보라매> 등의 매처럼 독수리는 용감무쌍함과는 전혀 다르다. 독수리의 독을 한문으로 해석하면 <대머리 禿(독)>자를 쓴다. 물론 독수리의 머리에는 털이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머리 바로 아래 목덜미 위쪽에 털이 없다.
사냥을 하지 않는 새 독수리는 맹금류 가운데 가장 못난 새인지 모른다. 사냥을 하는 대신 독수리는 동물의 사체를 먹고 산다. 사냥을 못하니 자연 썩은 고기나 먹어야 할 팔자이다. 다른 짐승들은 먹고 살기 위해 자신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당하는 위험을 감수해 가며 목숨 걸고 활동을 하는 대신 독수리는 거저 동물의 사체만을 발견해 힘을 전혀 쓰지 않고 생존하는 것이다.
현재 독수리는 멸종위기의 천연기념물이다. 그래서 낙동강 주변 지역의 동물수가 줄어들다보니 독수리의 주된 먹잇감인 동물 사체도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래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독수리가 한국의 겨울을 보내는 철원에서는 독수리의 먹잇감을 위해 돼지 사체를 통째로 밭에 뿌려 놓기도 하고 있다.
독수리와 티벳의 천장(天葬, 조장)
티벳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천장을 지낸다. 천장이란 사람의 시신을 천장대(天葬臺 : 산꼭대기에 있다)에 경운기로 옮긴 후 천장사들이 육신을 망치로 부수는 일이다. 스님의 간단한 의식이 끝나면 천장사들이 사람의 머리가죽은 물론 팔 다리의 가죽을 벗기고 나서 망치로 부수고 나면 독수리들이 우르르 몰려든다.
독수리들은 시체를 맛있게 먹는데, 독수리조차 먹기 힘든 두개골은 머리뼈를 부수는 과정에서 아주 먹기 좋게 하연 보릿가루가 뿌려지기도 한다.
티벳에서는 왜 독수리들에게 시체를 먹이는 천장을 하는 것일까? 그것은 티벳 땅이 건조해서 시체가 썩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화장(火葬)을 하려고 해도 목재가 없기 때문에 할 수가 없는 여건이다. 그래서 천장은 독수리와의 관계 속에서 빠르고도 쉽게 시체를 처리하는데, 사람은 죽자마자 독수리들로 인해 곧장 하늘로 올라가는 셈이다.
/송하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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