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기자의 강진고을 이슈>
정치사의 거인인가, 비운의 정치인인가
강진군 다산초당 부근 손 전 고문의 허름한 흙집에 끊임없이 관심이 쏠리고 있는 이유는 왜일까.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 손 전 고문이 흙집정치를 한다느니 토굴정치를 한다느니 孫(손)전성시니 하는 새로운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다. 정계를 떠나겠다고 선언한 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이 18년간 기거한 다산초당 옆에 스스로 귀양살이를 자처한 손 전 고문이다.
그런데 그의 집 문턱에 야권 중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만났다느니 못 만났다느니 이러한 설들이 정치권에 큰 이슈가 되는 이유, 그 이유는 아마도 손 전 고문이 현실적으로 야권의 잠재적 대권주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손 전 고문이 정계를 떠났다고는 하지만 손 전 고문은 이미 호남은 물론 영남에서도 상당한 지지층을 갖고 있는데다 경기도지사까지 역임하였으므로 수도권에서도 지지도가 높다. 따라서 손 전 고문의 파괴력은 본인의 칩거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정치권에 돌아올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를 두는 까닭이다.
이처럼 현재 야권의 잠룡으로서 그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손 전 고문은 사실 새정치민주연합당이 아닌 민자당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손 전 고문의 정치입문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있던 중 1993년 지금의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 시작됐다.
손 전 고문은 1980년 세계교회협의회 장학금을 받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로 유학을 떠났으며, 1988년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손 전 고문은 귀국 후 각종 노동운동을 전개하고 참여하면서 민주화 및 인권을 위한 활동을 재개하였다. 이후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냈고, 1990년부터 1993년까지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손 전 고문은 학생시절부터 해온 민주화 운동, 노동운동, 인권운동. 빈민운동 등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행동에 옮기는 진보적 삶을 교수 시절에도 계속 이어갔으며, 최장집 교수 등 진보적인 학자들과 두터운 친분을 쌓으면서 한국 사회의 미래에 관하여 토론하기도 했다.
그러나 손 전 고문은 최형우 장관의 소개로 YS를 통해 정계에 입문하였고. 나중 보사부 장관과 경기지사를 지내면서 성공한 업적을 평가받았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이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자. 그는 엘리트 지식인으로서 탄탄대로가 앞길에 놓여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자생활, 민주화운동 등 소외되고 약한 자들의 외침을 외면하지 않고 직접 뛰어들어 함께했던 사람이다. 일찌감치 본인이 선택했던 삶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나중 그가 말한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닐까 싶다. ‘저녁이 있는 삶’이란 정치인의 슬로건이라고 하기엔 대단히 감성적인 문장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거기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진정한 세상을 꿈꾸었던 청년 손학규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손 전 고문의 정치행보에 대해서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식의 설이 매번 중요한 시기에 오갔지만, 손 전 고문의 큰 생각은 그의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에서 쉽게 이해된다. 손 전 고문은 정치입문 시 서강대 학생들 강의시간에 “내가 어떤 감투를 쓰게 되는지 보다는 어떤 정치인이 되는지 지켜봐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또 손 고문의 진보적 정치 행보 일화를 들자면, 서강대 교수시절 3김 중 유일하게 DJ만 초청하여 강연을 하게 한 점과, 새누리당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매년 DJ를 찾아뵙고 햇볕정책을 지지했다는 점이다.
다시한번 짚어보자면, 손 전고문은 1993년 정치에 입문하여 경기 광명 지역 국회의원으로 16대 총선까지 내리 3선을 했다. 1996년 김영삼 전 대통령에 의해 보건복지부 장관에 임명되어 최연소 장관이라는 기록을 남겼으며, 2002년에는 민선 3기 경기도지사로 당선됐다. 이때까지 손 전 고문은 여당에서 정계의 탄탄대로를 걸으면서 이전 민주화운동으로 인해 고초를 받았던 것과 완전 다른 삶을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손 전 고문은 여당의 편안한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2007년 3월 19일 한나라당과 결별하고 범여권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부터 손 전 고문에게는 '당적 이탈' '정치 철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니며 본인의 정치행보에 결과적으로 많은 시련을 안겨주었다.
손 전 고문은 대학시절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철저하게 몸담고 살아온 사람이며,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시절 고 조영래 인권변호사, 고 김근태 의원과 함께 ‘서울대 운동권 3인방’으로 불리면서 학생운동에 열정을 보였던 사람이다. 또한 그로 인해 심한 고문과 모진 매질, 생사를 넘나드는 고초를 당한 사람으로서 예초 민자당에 발을 들여 놓은 자체가 이미 정치인생의 불운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손 전 고문의 2007년 한나라당 탈당은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후보가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으로 압축돼 가던 때였다. 이때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는데, 당시 손 전 고문은 “낡은 수구와 무능한 좌파의 질곡을 깨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새 길을 창조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떠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어쩌면 일찍부터 야권성향을 띠며 인권운동에 몸담았던 손 전 고문으로서는 본인의 정도의 길, 제자리로 돌아온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손 전 고문의 생각은 지난 7월 31일 정계은퇴 기자회견문에서 잘 나타나 있다. “1993년 정치에 입문한 이래 분에 넘치는 국민의 사랑과 기대를 받았습니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하여 ‘시베리아’ 땅으로 나선 이후 민주당과 함께 한 저의 정치 역정은 순탄치는 않았지만 보람 있는 여정이었습니다. 민주당에 대한 저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고백합니다”고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에서 당적을 옮긴 손 전 고문은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는 상대였던 정동영, 정세균 후보들이 손 전 고문을 향해 한나라당 출신이라며 공격을 하는 시련 속에서도 2008년 1월에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표로 선출된 다음 민주당과의 통합을 주도하여 통합민주당을 창당하였다. 그러나 그해 4월 통합민주당의 18대 총선을 이끌었으나 299석 중 81석을 얻는 데 그치고 말았다. 손 전 고문의 ‘정치 철새’라는 꼬리표는 중요한 시기에 상대의 먹잇감으로 전략되기에 좋았다. 결국 정치권에서 당적 이탈이라는 꼬리표는 이후 손 전 고문에게 계속적으로 아킬레스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손 전 고문이 민주당에서 전면에 나설 때마다 지지율이 오르다가도 상대의 공격에 맥없이 추락해버리며 경쟁력을 잃는 시련을 겪었다. 그리하여 손 전 고문은 그해 7월 6일 통합민주당 대표직을 사임하면서 반성의 시간을 갖겠다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 춘천으로 떠나 칩거에 들어갔었다. 2년 동안 춘천에서 칩거를 하며 반성의 시간을 가졌던 손 전 고문은 2010년 8월 15일 춘천을 떠나며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라는 글을 발표하면서 정계에 복귀했다.
당시에 발표한 전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가 한나라당을 통해서 정치에 참여하고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또 민주당에 합류한 정치 행적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저는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개혁의 회오리바람이 전국을 휩쓸 때 정치에 입문했습니다. 나도 개혁에 동참한다는 명분이 있었고, 실제로 그런 자부심도 있었습니다. 물론 민주화운동을 함께 한 대다수의 동지들이 민주당(당시 평민당)에 있었지만, 저는 민주화운동이 뿌리는 같다는 점에서 김영삼 대통령의 개혁이 민주화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김영삼 정부 개혁정치 이후의 한나라당의 민주세력이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결과적으로 그것은 민주 진영으로부터의 이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나라당에서 더 이상 제 신념과 가치를 펼 수 있는 천명이 없음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벽과 같았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자면 민주화운동을 위해 변함없는 신념을 가지고 제 일생의 가장 큰 부분을 바쳤던 저로서는 한나라당 탈당은 숙명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선정은 오직 백성을 기준으로 나라를 다스린 데서 나왔습니다. 말로만 백성을 어여삐 여긴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자를 만들고, 기구를 만들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책을 펴냈습니다. 세종대왕은 진실로 실사구시의 살아있는 실천가였습니다. 오직 국민만을 생각하고 실질적으로 국민들 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사구시의 정치가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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