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김선태 시인(목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거침없고 당당한 해학과 익살의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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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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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태 시인(목포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거침없고 당당한 해학과 익살의 詩

 

섬의 리비도

--그러나 민중의 한과 슬픔을 애잔하게 노래한 시

 

강진출신 김선태 시인은 1993년 광주일보 신춘문예와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다. 시집으로 간이역, 작은 엽서, 동백숲에 길을 묻다, 살구꽃이 돌아왔다를 펴냈으며 문학평론집으로 풍경과 성찰의 언어, 진정성의 시학 등이 있다. 애지문학상, 영랑시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을 수상했다. 강진고을신문 선정 제1회 문화예술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김선태 시인은 이번에 시집 「그늘의 깊이」를 문학동네에서 발간한 바 있는데, 시집 중에서 「섬의 리비도」부분을 발췌, 독자 여러분께 소개한다. 지성과 에스프리가 번뜩이는 고급 시가 아니라,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고 해학과 익살을 느끼게 하면서도 바닷가 사람들의 한과 슬픔을 애잔하게 노래한 시들이다. 편집자주

 

섬의 리비도․1

-산다이

서남해 섬마을에는 산다이가 지천이지요 산다이란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며 노는 놀이판이지요 추석이나 설에 마당이나 놀이방에서 벌이는 명절 산다이나 누군가 죽어 초상집이나 무덤가에서 벌이는 장례 산다이도 산다이지만 고기를 잡거나 밭일을 하거나 나무를 벨 때 하는 노동 산다이처럼 하여튼 흥이 동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산다이도 쌔고 쌨지요 산다이가 벌어지면 섬 전체가 들썩대지요 사람이며 바다며 산이며 들판이 온통 질펀한 놀이판으로 바뀌지요 이때만큼은 무슨 도덕 따위일랑 훌훌 벗어버리고 오로지 본성을 따라가지요 슬픔도 기쁨도 사랑도 미움도 죄다 한 데 녹아들지요 산 사람이며 죽은 사람이며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에야디야자 에야디야자 에헤여 에야 에야자디어라 산아지로구나”* 한덩어리가 되어 돌아가지요 그렇게 질펀하게 놀다 보면 남녀가 자연스레 눈이 맞아 부부의 연을 맺는 경우도 허다했다지요 남편 잃은 아낙들이 오죽하면 “산다이 땜시 이 징한 세상을 산다잉” 했겠어요 정녕 그렇다면 시시때때 노래방으로만 몰려가는 오늘날 산다이야말로 우리가 돌아가야 할 놀이의 본향 아닐런지요

 

* 가거도 민요 「산아지 타령」 후렴구. 가거도에서는 ‘산다이’를 ‘산아지’라고 부른다.

 

섬의 리비도․2

-진도 다시래기

 

노래와 춤의 땅 진도에는 다시래기라는 희한한 장례풍습이 아직 남아 있지요 죽음을 삶의 끝으로 내몰지 않고 새로운 시작으로 끌어들이는 제의이지요 그래서 마을에 호상이 나면 초상집은 한바탕 축제의 마당이 됩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도 잠시일 뿐 노래하고 춤추고 굿판을 벌이는 놀이마당이 밤새 펼쳐지지요 의례히 숙연한 애도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외지인들이 보면 깜짝 놀라기도 하고 때론 무례하다 혀를 끌끌 차기도 하지만 이는 진도 사람들이 대대로 죽음을 맞아들이는 방식일 뿐 하나도 이상할 것 없습니다 다시래기는 모두 다섯 마당인데 그 중 두 번째 거사-사당놀이는 압권이지요 봉사인 거사의 마누라 사당이 몰래 중과 바람을 피우는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발칙한 언사와 외설적 행위는 하도나 노골적이고 질퍽해서 초상집은 온통 웃음바다가 되지요 관 속의 망자까지도 못 참겠다 벌떡 일어나 뛰쳐나올 판이지요 특히나 사당이 아기를 출산하는 장면은 죽음의 아픔을 딛고 새 생명의 탄생을 보여주는 상징이니 다시래기의 참뜻인 ‘다시 나기’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슬픔과 절망의 공간에 탄생의 기쁨과 희망이 공존한다는 것 그 드라마틱한 반전의 한가운데 언제나 성(性)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얼마나 성(聖)스러운지요 그러니 이 신명나는 축제야말로 망자를 위한 최대의 예의요 축복이 아닐까요 사람이 죽자마자 화장터로 내달리는 이 무례의 시대에는 더욱 그렇지 아니할까요

 

* 다시래기 : 다시래기의 어원은 ① 다시나기, ② 다시락(多侍樂), ③ 대시래기(待時래기) 등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①은 ‘다시 낳다’, ②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즐긴다’, ③은 ‘망자의 영혼이 집에 머물다가 떠나는 시간을 기다리는 과정에서 노는 놀이’의 뜻을 각각 지니고 있다.

 

섬의 리비도․3

-대바구

 

대바구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지요? ‘대신 박아주는 놈’이라는 뜻이지요 아니 점잖지 못하게시리 거 무슨 상스런 소리냐고요? 처음 들을 때만 그렇지 깊이 들여다보면 그리 상스럽지도 않습니다요 비록 지금은 명맥이 희미하지만 대바구는 전라도 어느 섬에 남아 있는 희한한 혼인 풍습이지요 남자가 부족한 탓에 생긴 어쩔 수 없는 성적 욕망의 해소책이기도 하고요 알다시피 섬 남정네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이자 무덤이지요 그야말로 인생재해 인명재해이니 섬에 떼과부가 많을 수밖에요 그러니 섬으로 시집가는 여자들이야말로 과부가 될 서러운 운명을 타고났다 해도 무리가 없었겠지요 허나 그네들 모두가 청상과부로 수절해야 한다면 아무래도 너무나 잔인한 처사가 아닐까요? 성적 욕망을 주신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기도 하고요 이를 짠하게 여긴 남정네들이 마음에 드는 과붓집에 몰래 스며들어 남편을 대신하곤 했다지요 마을 사람들은 물론 본처까지 알고도 모르는 척 눈을 감아주었다지요 그야말로 성경에 나오는 긍휼과 나눔의 실천이 따로 없지요 그러니 윤리와 도덕, 제도와 관습의 울타리마저 넘어버린 대바구를 두고 꼭 짐승이나 다름없다 돌을 던지겠는지요?

 

섬의 리비도․4

-가거도 떼과부

 

풍랑 거칠기로 소문난 가거도에는 유독 떼과부가 많다지요 고기잡이가 삶 자체인 남정네들이 거친 풍랑과 싸우다 그만 불귀의 객이 되고 만 일이 허다한 탓이겠지요 헌데 졸지에 청상과부가 된 여인네들의 본능은 어찌 다스렸을까요? 행여 홍어장수 문순득이로 표류하다 돌아올지도 모를 남편을 기다리며 끝까지 수절했을까요? 설마 그럴 리가요 섬 여인네들의 욕망도 풍랑 못잖게 들끓었을 텐데요 하여 가거도 마을 이장들이 중신애비 되어 고안해낸 기막힌 비책이 따로 있었으니 한번 들어보시지요 풍어의 가거바다에는 사철 고기잡이배들이 까맣게 떠 있지요 집을 떠나온 지 오래인데다 배를 타느라 울렁증에 걸린 선원들에게 간절한 것은 술과 여자, 독수공방으로 지칠 대로 지친 떼과부가 이제나 저제나 그리운 것은 남정네들의 품, 궁하면 통하듯이 그들이 먼발치서 서로를 바라보다 눈이 딱 마주친 게지요 선원들이 잡은 고기 중에 제일 좋은 것을 선물로 보내면 과부들은 약속한 날짜에 맞춰 그걸 요리하여 술상을 차려놓고 두근두근 기다렸지요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이 밤새 서로의 배를 타고 놀았으니 이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허나 동이 트면 무슨 거짓말같이 훌훌 털고 남남으로 돌아섰다니 이들의 몰래 사랑법이야말로 쿨하기 비할 바 없지요 비록 하룻밤 풋사랑이긴 해도 서로의 처지를 짠하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 때론 코끝이 찡해지지요

 

섬의 리비도·5

-밤달애 망자의 말

 

워매워매 참 달도 밝네 그려 그랑께 오늘밤이 내 출상 전야인가 사람들이 죽은 나랑 남은 처자석들 달랠라고 떠들썩하게 밤샘놀이를 벌리는 모양인디 하이고 관 속에 가만 누워 듣고 있을랑께 오금이 쑤시고 입이 근지러워 도저히 못 참을 것 같아 한 마디 하고 갈라요

 

여보시요 동네 사람들, 바쁠텐디 나 죽었다고 이렇게들 와서 거들어주고 울어주고 웃어주고 놀아줘서 참말로 고맙소 노상 슬픔을 바다에 묻고 살아온 우리들인디 새삼시럽게 초상집이 울음바다가 될 필요 있것소 나같이 오래 산 늙은이가 죽으면 경사로다 축제를 벌리는 것이 대대로 우리 동네 전통 아니것소 그랑께 오늘밤은 만사작파하고 한판 신명나게들 놀다 가씨요∼잉 그래사 나도 기분 좋게 저승길에 들것소

 

저기 무당님들, 아까 거사-사당놀이 할 때 말이요 음담이 어찌 그리 질펀하고 노골적인지 아따 배꼽 빠질 뻔 했소 관 틈으로 빼꼼히 내다보니 마을 여인네들도 차마 민망해설랑 얼굴을 돌립디다 특히나 사당과 중이 몰래 관계를 갖는 장면에서는 젊었을 때 바람피우던 생각이 나서 할멈한테 찔끔 미안도 했지만 깐딱하면 죽었다가 불끈 도로 살아날 뻔 했소 그라고 진도댁이 부른 육자백이와 흥타령은 이녁 허리같이 낭창낭창합디다 그 구성지고 걸쭉한 소릴랑 저승 가서도 절대 못 잊것소

 

여보 할멈, 평생토록 고생만 시켜 미안하고 또 미안하시 나 먼저 간다고 서운해 하지 마소 우리 아들네미 딸네미들아, 너무 슬퍼들 마라 죽는 것이 별거시라냐 그냥 잠 잘 때 꿈꾸는 것이랑 다를 거 없어야 그라고 메느리야, 늙은 씨압씨 수발드느라 여태까장 겁나게 고생 많았다 니가 겉으로는 서럽게 울지만 속으로는 기뻐할 줄 내 다 안다 그라니 다들 인자는 살아생전 맺힌 것들 훌훌 풀어버리고 오늘밤 즐겁게 놀아라 무담시 슬픈 척 하지 말고 저 동네 사람들이랑 어울려 웃고 춤도 추고 그래라∼잉

 

그라고 마지막으로 저승사자님들, 나 저승 가면 염라대왕님한테 뭔 벌을 받을랑가는 모르것소만 그건 저승 가서 따질 일이고 맨날 궂은 일 하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텐디 기왕에 오늘밤 이승 잔치판에 들른 김에 한번 날이 새도록 걸판지게 놀다나 갑시다요

 

* 밤달애 : 신안군 비금도의 장례 풍습. ‘밤(夜)’과 ‘달래다’에서 어간 ‘달래’의 옛말인 ‘달애’가 결합된 복합어.

 

섬의 리비도․6

-해안초소의 꽃

 

다도해 절경마다 해안초소가 즐비했는데요 섬으로 기어드는 간첩을 잡으려고 전경들이 보초 근무를 섰지요 그런데 이 초소 주변에는 해당화도 원추리도 피지만 그보다는 진짜 꽃들이 사시사철 피어났다지요 그게 대체 무슨 꽃이냐고요? 막막한 섬에서 날마다 바다만 바라보는 전경들을 위해 피는 풋풋한 섬 처녀 꽃이지요 이 꽃들은 섬 총각들은 거들떠도 안 보고 애오라지 해안초소를 향해서만 자발적으로 피어났지요 전경들이 손짓만 해도 선착순으로 피었다지요 밤이고 낮이고 다투어 꽃을 피웠다지요 어떨 때는 물질하여 따온 귀한 전복도 가져오고 또 어떨 때는 산에서 따다 담근 산딸기주도 몰래 감춰오고 하여튼 있는 것은 아낌없이 가져다 바쳤다지요 술이 얼근 취해 한바탕 산다이 판이 벌어지고 나면 다들 산으로 바닷가로 쌍쌍이 흩어져선 초소가 텅텅 비기 일쑤였다지요 허나 섬 처녀 부푼 가슴 같은 시간은 썰물처럼 빠져나가 복무를 마친 전경들이 하나둘씩 섬을 떠나갔지요 무정하게시리 뒤도 안 돌아보고 섬을 빠져나갔지요 그때마다 울음바다엔 꽃 이파리들이 참 서럽게는 떠다녔다지요 해안초소의 꽃들은 매양 그렇게들 피었다가 졌다지요 지금이야 섬과 뭍이 가까워져 지난 이야기가 되었지만 그 시절 이미자의 ‘섬 처녀’도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도 이를 배경으로 나온 유행가 아니겠어요 이게 죄다 천형 같은 섬에서 벗어나고 싶은 일념 하나로 피어난 섬 처녀 꽃들의 비원 아니겠어요

 

섬의 리비도․7

-형사취수(兄死娶嫂)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데리고 사는 일을 형사취수라 하지요 헌데 고구려 적에나 있었다는 케케묵은 이야기를 왜 꺼내냐고요? 서남해 어느 외딴 섬에는 이 믿기 어려운 풍습이 어렴풋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 첨단문명시대에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기 전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들여다보면 참 눈물 나지요 각시가 둘이라 좋겠다 야릇한 웃음을 흘리는 일도 냉큼 사라지지요 어떤 이는 형의 유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라 하고 어떤 이는 일손을 보태기 위해서라지만 아무래도 그보다는 생활고를 덜기 위해서가 아니겠어요? 재혼이라면 몰라도 일찍이 남편을 바다에 묻고 여인네 몸으로 자식들 건사하며 사는 일이 섬에서 어디 그리 쉽겠어요? 아무리 궁리를 해도 해결책이 없는지라 형사취수를 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이야기지요 그러니 이를 두고 야만적이라느니 비윤리적이라느니 비난만 할 수 있나요? 되려 이 고구려 적 시간을 사는 여인네들을 감싸 안고 등이라도 사분사분 두드려주는 게 좋지 않을까요?

 

섬의 리비도․8

-흑산도 작부들

 

작부라면 주저 없이 흑산도 작부들을 떠올리겠네

 

새파랗게 비리고 보드라운 살집의 어린 것도 어린 것이지만 그보다는 세파를 두루 만나 곰삭을 대로 곰삭은 젓갈처럼이나 깊은 맛과 향내를 풍기는 흑산도 늙은 작부들에게 속절없이 마음 이끌리겠네

뭍에서 청춘을 다 덜어낸 텅 빈 조각배로 떠밀려와 이제 더는 갈 곳 없이 유형의 섬에 닻을 내린 그네들

거친 풍랑과 싸우다 돌아온 사내들 위해 밤새 해당화로 붉게 피어나 그 어혈의 삭신들 넉넉하고 따뜻한 자궁으로 품어주고 시김새 치런치런한 산다이 가락으로 풀어내어선 이른 새벽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그네들

정작 이녁들 몸은 난파선처럼 부서지고 떨어진 그물처럼 숭숭 구멍 뚫려 너덜너덜해져선 종내는 섬처럼 까맣게 애간장 타버린 그네들 정든 누님 같은 그네들

작부라면 그런 맛과 멋쯤 풍성하게 지녀야 하지 않겠나

그쯤 되어야 그 옴팍하고 아늑한 자궁에 숨어들어 한세상 모진 풍파를 견뎌봄 직하고 그 서글프도록 아름다운 가락의 그늘에 누워서야 비로소 아픈 몸과 맘 달랠 볼 수 있지 않겠나

 

섬의 리비도·9

-뜀뛰기 강강술래

 

비금도에는 뜀뛰기 강강술래가 있지요 강강술래면 강강술래지 뜀뛰기 강강술래는 또 무어냐고요? 그야 그냥 강강술래가 아니라 뜀을 뛰면서 힘차게 돌아가는 강강술래이지요 그것도 여자들만이 아니라 남녀가 함께 어울려 노는 강강술래이지요 더욱이 처녀 총각들이 평소 맘에 둔 상대와 짝을 지어 손에 손을 잡고 가랑이를 벌리며 펄쩍펄쩍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 내려오는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뭔가 이상야릇한 느낌이 들지 않나요? 눈길이나 손길로 전해져오는 촉감도 촉감이지만 뛰다가 서로의 엉덩이에 수도 없이 몸이 닿게 되는 건 또 어떻고요 그렇게 땀범벅이 되도록 정신없이 놀다보면 어느 새 흥분되고 연정이 싹터 올라선 그대로 부부의 연을 맺게 되는 경우가 많다니 강강술래치곤 참 유별나지 않나요?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일명 짝짓기 놀이라고들 하지요 허나 짝을 구하기 어려웠던 섬 총각들의 속내를 들춰보면 꼭 흥겹고 재미있는 놀이라고만 할 수 없지요 그런 지혜를 발휘해서라도 장가를 들어야겠다는 참 짠하고도 절실한 연애방식이니까요

 

섬의 리비도·10

-좆여

 

다도해 어느 섬 기슭엔 좆여가 있다 만조 때는 바닷물 속에 잠겼다가 간조 때 불쑥 드러나는 모양새가 꼭 발기한 좆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좆여에는 석화 같은 온갖 조개들이 붙어 있고 해초들이 무성한 음모처럼 나풀거린다 물고기들도 이곳을 은신처로 삼는다 그래서인지 사시사철 낚시꾼들로 바글거리고 해녀들도 즐거워라 주변을 헤엄치며 물질을 한다 허옇게 거품을 문 파도들이 끊임없이 좆여를 기어오르며 애무를 한다 제 좆같은 시커먼 몸뚱어리 하나로 조개며, 해초며, 물고기며, 해녀를 건사하는 좆여는 거대한 석불이다 그 존재감 하나로 다도해 풍경이 질펀하다 우뚝하다

 

섬의 리비도·11

-방아섬 남근석

 

선녀들이 내려와 엉덩방아를 찧었다는 관매도 방아섬 정상에는 거대한 남근석 하나가 우뚝 솟아 있지요 무슨 버섯처럼 생긴 이 자연산 바위는 관매도 일대의 섬 여인네들에게는 신앙의 상징으로 통하지요 아이를 갖게 해 달라 빌면 아이를 점지해주고, 고기가 많이 잡히게 해 달라 빌면 만선이 되게 해주고, 나이 들어 풀이 죽은 남편의 거시기에 힘을 불어넣어 달라 빌면 빳빳하게 일으켜 세워 주지요 어디 그뿐입니까 먼 바다로 고기잡이 나갔다 돌아오는 뱃사람들에겐 등대 구실까지 해준다니 그야말로 살아 있는 생불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래서 관매도 여인네들은 갯일을 하다 힘이 들면 시시때때 남근석 쪽을 바라보면 위안을 얻는다지요 지금도 배를 타고 방아섬 주변을 지날 때면 처녀들은 부끄러워 노을처럼 얼굴 붉히고 아주머니들은 그 우람한 모습을 우러르며 물비늘 가득한 웃음바다가 되고 맙니다

 

섬의 리비도·12

-조도군도 젖무덤

 

올망졸망 섬들이 새떼처럼 흩어져 잠방거린다는 조도는 한때 ‘좃도가리’ 혹은 ‘좃대가리’라는 말로 서러운 멸시를 받았지요 헌데 그 멸시를 그냥 멸시해도 좋을 만큼 황홀한 젖무덤들이 떠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느닷없이 왠 젖무덤이냐고요? 한번쯤 도리산 전망대에 올라가 조도군도를 빙 둘러보세요 청둥오리 떼 같은 섬들이 일시에 봉긋한 젖무덤으로 바뀝니다 누구 것이 더 탐스럽고 매혹적이냐 자랑하듯 널려 있는 젖무덤들 앞에서 그만 입이 쩍 벌어집니다 얇은 비단 물안개라도 끼는 날이면 보일락 말락 더욱 애간장을 태우지요 그 황홀경에 눈이 먼 남자들은 아예 배를 빌려 타고 가설랑 젖무덤을 기어오르려고도 하지요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시커먼 돌섬으로 바뀌고 맙니다 아득한 시원의 조도 바다에는 아직도 팜므파탈이 살고 있습니다 그것도 떼를 지어 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거친 파도들에게 젖을 물린 채 온몸을 뒤틀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 좃도가리 : ‘조도+갈+이’의 연첩어로서 ‘조도 갈 사람’을 뜻한다. 예전엔 조도 가는 뱃길이 멀고 험해서 목포에서 배가 하루 한 차례밖에 없었는데, 안내원들이 선승을 재촉하며 외치던 말이다. ‘좃대가리’는 이 말을 한 번 더 뒤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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