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숙 기자의 횡설수설
소치 올림픽 폐막식을 보면서
2월 24일 새벽 3시가 넘은 시간, 소치동계올림픽 폐막식도 막을 내렸다. 17일간의 대장정이라고들 말하는 올림픽기간 내내 나는 잠을 설쳤다. 러시아 소치보다 우리나라 시간이 다섯 시간이 앞서기 때문에 거의 밤 12시가 넘은 시간부터 새벽시간대에 경기가 펼쳐졌고 즐겨봤기 때문이다.
폐막식 중 러시아 금메달리스트들이 입장하는 순서에서 유난히 한 사람의 모습을 자꾸 찾게 됐다, 러시아로 귀화하여 금메달 3개 동메달 1개를 따내며 러시아의 영웅이 된 안현수, 그러니까 빅토르안이 된 쇼트트랙 선수다. 러시아 국기가 게양되고 러시아 국가가 흘러나왔다. 러시아 선수들이 모두 자기나라의 국가를 자랑스럽게 따라 부르고 있는 모습 사이로 빅토르안 선수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잠깐이지만 TV로 비쳐진 그의 모습이 한 사람에게 과연 국가가 앞서는가 국가에 사람이 앞서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소치올림픽 기간 내내 많은 사람들이 안현수 선수를 입에 올렸다. 얼마나 큰 심적 고통, 상처를 받았으면 국적을 바꾸고 귀화까지 할까. 내가 내린 그에 대한 시선은 그랬다. 자신의 일이 아무리 소중하다 하더라고 국적을 바꾸면서 까지 추구하려고 마음먹는다는 것. 결코 쉬운 결심은 아니라 생각되는 점이고 그래서 소치올림픽 내내 그를 보면서 슬펐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동물의 우화가 있다. 동굴 안에 사람이 갇혀 있는데, 손발이 꼼짝할 수도 없으며 한 쪽 방향만 볼 수 있도록 묶인 것이다. 그는 등 뒤 불빛에 의해 벽에 비치는 그림자만 평생 보고 살 수밖에 없다. 그는 그 그림자를 보며 그것이 실재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허망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그가 풀려나 동굴 밖의 세계를 직면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런 사람에게 동굴 밖의 세상을 제대로 알려줄 수 있다면, 불빛이 아닌 태양의 존재 즉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동굴의 우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동굴에 갇힌 사람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한 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뒤를 돌아보는 것이다. 지금까지 봤던 것이 그림자였음을 깨달은 그가 동굴 밖으로 나간다. 결국 바깥세상에서의 밝은 빛에 눈이 부셔 괴롭지만 그는 진실을 깨닫고 행복을 맛본다. 그런데 그가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묶여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그러나 동굴 속의 사람들은 거짓을 말한다며 오히려 그를 비난한다.
많은 조직들이 그렇다. 관습에 젖은 리더들의 일방적인 방식에 의해 행해지고, 그 안에 속해 있는 조직원들은 무조건 따라야 하는 힘의 논리에 의해서 많은 것들이 뒤덮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어느 누가 선뜻 이건 아니라고 용기 있게 맞서지 못하는 현실이고, 그래서 결국 불가사의한 곳으로 뛰쳐나가는 사람이 생기는 것 아닐까. 어쩌면 그의 초인적인 행동은 이미 오늘의 결과를 예견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번 소치올림픽에서 그러한 한 선수의 비애와 성공, 그리고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심정에서 우리의 사회가 좀 더 성숙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기에, 정홍원 총리의 말 “안현수 선수가 한.러의 관계를 끈끈하게 엮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말이 무척 반갑게 들린다.
동계올림픽에 등장하는 경기종목들 조차 생소한 나는 미끌거리는 빙판 위를 활보하는 그들이 모두가 초인으로 보이는 17일간이었다. 폐막식장에 한꺼번에 모인 그들 모두는 어깨에 날개가 달린 천사가 아니라 발에 날개가 달린 천사들로 비치는 것은 혼자서는 잠깐도 서있기 힘든 빙판 위를 칼날 같은 신발을 신고 날아다니는 점에서다. 그 칼날의 신발을 신고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피겨스케이팅에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아주 오랫동안 행복했었기에 그녀의 은메달은 얼마나 가슴 아팠는가. 메달을 따낸 선수들은 물론이고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들이 그저 자랑스러운 날들이었다. 그 중에서는 나는 쇼트트랙의 팀추월이라는 경기에 한동안 매료될 것 같다. 바다의 심연 속을 유연히 헤엄쳐나가는 세 마리의 은빛 물고기 같았던 그들의 빛나는 은메달 때문이다. 또 보고 또 보아도 감격스런 경기였다.
소치올림픽 폐막식에서 흘러나오는 장엄하면서도 아름다운 음악에 젖어 러시아 대문호 12명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체호프, 푸시킨, 아흐마토바, 솔제니친,등 작가들의 이름과 책 속의 주인공들이 빙판 위를 장식할 때 나는 또한번의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다. 러시아가 문학, 미술, 음악, 건축양식, 발레 등 많은 예술분야에서 뛰어난 나라이고 세계적인 엄청난 문호들이 다수 배출된 문화의 나라라는 점을 새로이 인식되는 폐막식이었다.
잠못이루고 보았던 소치동계올림픽의 폐막이 막을 내리며 이제 2018년 평창올림픽을 기다리게 됐다. 이번 소치올림픽을 통해 러시아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듯, 평창올림픽을 통해 대한민국이 전 세계에 멋지게 알려지기를 기대하는 밤으로 이어진다. '평창의 깨어남', '함께 꾸는 평창의 꿈' 으로 이어지는 아리랑을 들으며 나는 이 감동을 그대로 안고서 평창으로 옮겨가는 꿈을 꾸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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