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욱의 도사리와 말모이④
시루떡과 물편
‘떡 도르라면 덜 도르고 말 도르라면 더 도른다’는 속담이 있다. 비슷한 것으로 ‘말은 보태고 떡은 뗀다’는 말도 있는데, 사람들이 그만큼 남의 말을 전해 소문내기를 좋아한다는 뜻이다. ‘도른다’는 것은 몫몫이 나누어 집집마다 보내 주는 것을 뜻한다. ‘떡에 밥주걱’은 떡시루 앞에 밥주걱을 들고 덤비는 사람처럼 무슨 일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떡으로 치면 떡으로 치고 돌로 치면 돌로 친다’는 말도 있다. 선의(善意)에는 선의로, 악의(惡意)에는 악의로 대한다는 뜻으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와 통하는 말이다. 그런데 떡으로 치는 것은 치는 것이고, 또 맞으면 아플 텐데 그것도 선의로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은 좀더 두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떡 해 먹을 세상’은 통이 크게 세상으로 떡을 해 먹는다는 것이 아니고 뒤숭숭하고 궂은 일이 자주 일어나는 세상을 뜻하는데, 떡을 해서 귀신에게 고사라도 지내지 않으면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귀신은 떡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마찬가지로 ‘떡 해 먹을 집안’은 마음이 서로 맞지 않아 화합하지 못하고 어려운 일만 잇따라 생기는 집안을 말한다. 재수가 없거나 못마땅할 때 ‘떠그랄’이라는 욕을 할 때가 있는데, ‘떠그랄’은 ‘떡을 할’이 바뀐 말이다. 또 ‘떡이 별떡 있지 사람은 별사람 없다’는 속담이 있다. 떡에는 별의별 떡이 다 있지만 사람은 비슷비슷해서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아닌게 아니라 떡에는 정말 가짓수가 많다. 시루에 찌고, 안반에 치고, 번철에 지지고, 소댕에 부치고, 손으로 빚어서 만드는 떡의 계보(系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사람이 이 많은 떡을 언제 다 먹고 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드는 것이다. 안반은 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 번철은 지짐이나 부침개를 만들 때 쓰는, 솥뚜껑을 뒤집은 것처럼 생긴 무쇠 그릇으로 쉽게 말해 프라이 팬이고, 소댕은 솥뚜껑 비슷한 것이 아니라 진짜 솥뚜껑이다. 안반을 쳐서 만드는 떡은 안반떡, 안반에 치지 않고 절구에 찧어서 만드는 떡은 절구떡이라고 한다.
떡가루를 켜를 지어 시루에 안쳐 찐 떡인 시루떡은 떡의 대표 선수라고 할 만한 떡이다. 시루떡이 아닌 모든 떡, 이를테면 절편이나 송편, 인절미 따위를 몰몰아 물편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시루떡이 얼마나 중요한 떡인지를 알 수가 있다. 켜를 짓지 않고 찐 시루떡은 무리떡이라고 하는데, 무리는 물에 불린 쌀을 물과 함께 맷돌에 갈아 체에 밭아서 가라앉힌 앙금을 말한다. 무지개떡은 쌀가루에 여러 색깔을 넣어 색깔에 따라 켜를 지어 만든 시루떡, 설기는 쌀가루에 계핏가루나 잣가루로 켜를 지어 만든 시루떡인데, 우리가 잘 아는 백설기는 다른 고물 없이 쌀가루만 시루에 안쳐 쪄 낸 시루떡이다. 갖은시루떡은 시루에 떡가루를 격지격지 깔고 사이에 녹두, 계핏가루, 석이버섯, 밤, 귤병(橘餠), 붉은팥, 거피팥 같은 것을 넣어서 만든 화려한 총천연색 시루떡이다. 귤병은 꿀이나 설탕에 조린 귤을 가리킨다.
시루떡은 메시루떡과 찰시루떡으로 나뉘는데 이는 떡을 메떡과 찰떡으로 나누는 것과 같다. 메떡은 끈기가 적은 멥쌀로 만든 떡, 찰떡은 차진 찹쌀로 만든 떡이고, 멥쌀과 찹쌀을 섞어 만든 떡은 메찰떡이다. 찹쌀을 다른 잡곡밥, 특히 차좁쌀에 비교해 이찹쌀이라고도 하는데, 이찹쌀로 만든 떡은 조차떡이나 조찰떡이라고 한다.
시루떡을 찌려고 시루를 솥에 얹을 때, 김이 새지 않게 하려고 시루와 솥 사이의 틈에 쌀무거리나 밀가루를 반죽해 바르는 것을 시룻번이라고 하는데, 언제나 배가 고팠던 어린 시절, 그것을 먼저 떼어 먹으려고 아이들끼리 다투던 기억이 어슴푸레하게 난다. 무거리는 곡식 같은 것을 빻아서 체에 쳐서 가루를 내고 남은 찌끼를 가리킨다.
흰떡은 멥쌀가루에 고수레하여 시루에 쪄서 안반에 놓고 떡메로 친 떡인데, 이것으로 가래떡이나 개피떡, 산병(散餠), 절편 따위를 만든다. 고수레는 쌀가루를 반죽할 때 끓는 물을 가루에 훌훌 뿌려 섞어서 물기가 고루 퍼지게 하는 일을 뜻한다. 고수레떡은 고수레하여 반죽한 덩이를 시루에 쪄 낸 것으로 섬떡이라고도 하는데, 고수레떡을 떡메로 쳐서 흰떡을 만드는 것이다. 섬떡은 고수레떡 말고도 한 섬의 곡식으로 만든 아주 많은 떡을 뜻하기도 한다.
가래떡은 썰어서 떡국을 끓이는 떡이고, 아주 굵게 뺀 가래떡은 홍두깨처럼 굵다고 홍두깨떡이라고 한다. 흔히 개미떡으로 잘못 알고 있는 개피떡은 흰떡이나 쑥떡을 얇게 밀어 팥이나 콩으로 소를 넣고 반달같이 만든 떡이다.
흰떡이나 인절미를 만들 때 안반에 놓고 한번에 쳐서 낼 수 있는 떡의 양을 모태라고 하고, 안반에 놓고 가락을 맞추어 썰고 난 나머지의 떡을 모태끝이라고 하는데, 모태끝이 옆에 둘러서서 군침을 흘리고 있는 조무래기들의 차지가 되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다. 떡의 부스러기는 고무라기라고 한다. 그러면 조무래기는 어른들의 부스러기인가, 절대 아니다.
기억해 둘만한 도사리들
고무라기 : 떡의 부스러기
도르다 : 몫몫이 나누어 집집마다 보내 주다
모태 : 흰떡이나 인절미를 만들 때 안반에 놓고 한번에 쳐서 낼 수 있는 떡의 양
시룻번 : 시루를 솥에 얹을 때 김이 새지 않게 하려고 시루와 솥 사이의 틈에 바르는 쌀무거리나 밀가루 반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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