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고을신문 : 가업을 잇는 사람들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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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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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업을 잇는 사람들 7
강진읍 광고마을 차재훈씨

가업을 잇는 사람들 7

 

강진읍 광고마을 차재훈씨

아버지의 수작업시대를 현대판 광고업으로 변화시키다

 

강진읍 남성리25-3번지에 위치한 광고마을(대표 차재훈46)은 고인이 되신 차재훈씨의 아버지 차병훈(43년생 작고)씨가 청미사라는 간판을 달고 광고업을 했던 곳이다.

차재훈씨는 4남중 아버지의 광고업을 이어 유일하게 고향 강진에서 살고 있는 둘째아들이다. 아버지의 광고업이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어서 아버지의 일을 학창시절부터 거들면서 자랐기 때문에 간판 일은 어떤 직업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일이었다.

아버지 차병훈씨가 청미사라는 간판 업을 시작한 것은 극장 근처에 살던 인연과도 맞물린다. 그림을 잘 그리고 글씨를 잘 썼던 아버지 차병훈씨는 극장 포스터 그림을 그렸었고, 이후 청미사라는 간판을 달고 영업을 했다. 옛날 간판일은 지금하고 달리 완전 수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한사람의 기술이었기 때문에 일손이 많았다.

아크릴 성형간판은 아크릴로 글씨를 만든 다음 잘라내서 글씨에다 입체를 붙여서 그것을 성형판 아크릴 위에 놓고 글씨를 붙였다. 그 성형판을 다시 나무틀을 짠 다음 조립을 해서 구루마에 실어가서 시공을 하는 작업이다. 당시에는 목조건물이 많았기 때문에 일반 못을 단단히 박고 철사를 엮어서 간판을 고정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강진고를 다녔던 차재훈씨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도 아버지의 일을 따라다니며 심부름을 했는데, 간판일이 아버지 혼자서는 할 수 없어 항상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썬팅은 아버지 혼자 하는 일이었다. 썬팅 비닐지에 아교를 녹여서 풀이나 콜라, 사이다 등을 혼합하면 접착제가 되었다. 그것을 유리창 뒷면에 붙이면 아버지가 다시 칼질을 하면서 글씨를 만들었다. 그러면 정면에서는 바른 글씨가 되고 글씨를 파는 쪽에서는 반대의 글씨가 나왔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청미사는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어서 그런대로 수입이 되는 일이었습니다”라며 “당시 강진에 간판 업을 하는 곳이 네곳이었는데 수입이 괜찮은 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미사를 비롯하여 청운사, 제일사, 또 아버지 차병훈씨 아래서 배워 따로 개업을 한 현대광고 등이다.

차재훈씨는 광주에서 간판 집에 취직하여 7년 정도 일을 하기도 했으며, 이후 부산과 서울에서 몇 년간 다른 직업을 가졌으나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아 1999년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가게 청미사에서 일을 했다. 2,000년에 아버지에게서 독립하여 광고마을을 개업하여 하던 중 아버지의 고혈압과 당뇨병 등이 합병으로 발병하여 입원하게 되었고, 6개월간을 투병생활을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차재훈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의 청미사 자리로 광고마을을 옮겨 지금까지 하고 있다. 아무래도 청미사 간판보다는 시대에 맞는 간판으로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버지 시대에는 거의 수작업으로 하던 간판 업이 새로운 기계와 기술의 도입으로 점차 광고업계에도 빠르게 많은 변화가 왔다.

예전에는 글씨를 작업대 위에서 시트지를 놓고 밑 도안을 한 후 칼질을 하여 일일이 따낸 다음 그대로 갖다 부치는 작업이었다. 간판 역시 후렉스라는 천을 씌우고 그 위에 시트지를 입힌 후 도안지를 붙여서 칼질을 하여 글씨를 만들어 시공했으며, 차재훈씨가 광고마을을 따로 오픈할 때만 해도 도안지를 썼다. 당시 컴퓨터를 통한 편리한 작업이 큰 도시에서는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지방에는 2000년대 중후반 즈음에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컴퓨터의 등장으로 광고업계에는 글씨와 그림선택 등에서 매우 편리해진 것은 사실이다. 간판을 시공하는데 있어서는 예전에는 줄타기나 옥상에서 끌어올리는 방법으로 했지만, 지금은 크레인작업을 하게 됐다. 이처럼 예전에 비해 디자인 작업과 시공이 편리해진 반면, 업계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강진 내 광고업이 13개나 되기 때문이다. 또한 광고가 다양해지고 포괄적으로 변화됐으며,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진 것도 그 이유가 된다. 소비자들이 단가를 미리 알고 있을 정도로 오픈되어 있는 업종이어서 운영에 애로점이 있다.

“사실, 오픈된 가격은 대량업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격대이어서 소규모 업자들이 맞출 수가 없는 현실입니다”라고 말하는 차재훈씨는 “대신 시공에서 A/S까지 철저히 하는 곳이 소규모 광고업자다”고 덧붙인다.

도시의 업자들과 같이 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투자를 해야 하지만, 그 투자를 한다는 것도 수요가 적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다. 지역 여건상 몇 천만 원짜리 기계 설비를 들여놓는다 해도 그만한 수요자가 없다는 게 한계점이다.

차재훈씨는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 간판업을 하면서도 많은 갈등을 했다고 한다. “틈만 나면 도시로 가고 싶어집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하는 차재훈씨다. 그 첫 번째 이유가 수입 면이다. 수입이 불규칙한 업종이다 보니 일정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찾아가고 싶게 한다. 특히, 초등학생에서 고3까지 1녀3남의 자녀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장으로서의 어깨에 자꾸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고향이란 곳은 역시 따뜻함을 주는 곳이어서 좋다고 차재훈씨는 말했다. 아는 사람들이 많아 일거리를 주는 분들이 많고, 대인관계를 즐겁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오는 단점도 있다.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일을 하고도 적정 가격을 받기 힘들 때가 많은 것이다. 또 외상거래가 대부분인데 30%를 못 받게 된다. 실컷 시공을 했으나, 벌어서 준다거나 또는 돈을 받기도 전에 폐업을 하기도 하고, 아무도 모르게 야밤도주 하는 업주도 있는가하면, 외상을 나몰라라 하는 얌체족도 있다. 대부분의 광고업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일을 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 다리 건너면 알 만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여건상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차재훈씨는 “이제 오래 하다보니 성실성과 깔끔한 일처리를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며 “아버지의 뒤를 이어가는 자부심으로 친절을 첫째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아버지가 청미사를 운영 할 때 정성을 다해 글씨를 손질하던 모습이 생생하다”며 “그러한 정성된 맘으로 고객을 맞이하겠다”고 말했다. 차재훈씨는 가족으로 임수정(44)씨와 1녀3남을 두고 있으며 강진고총동문회 홍보국장, 강진읍방범대 부대장, 강진군방범연합회 사무국장 등을 맡아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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