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고사성어 35
지만계영(持滿戒盈)
김현임(수필가)
한가위로 향하는 달이 나날이 살쪄간다. ‘자신이 먹는 양의 팔 할 이하로 유지해라’는 이는 다이어트의 최우선 준칙이다. 결코 배가 만족하도록 먹지 말라, 할 수만 있다면 배고픔을 달랠 정도에 수저 놓기를 충고한다. ‘덜 채워라’는 날씬한 몸매를 갖고 싶어 하는 여성 군(群)에 한정되는 충고가 아니다.
노나라 환공(桓公)의 의자 곁에는 ‘유좌지기(宥坐之器)’라는 그릇이 좌우에 한 개씩 놓여 있었다. 계영배(戒盈盃)다. 가득 차 넘침을 경계하는 지만계영(持滿戒盈)의 그릇이다. 그릇에 담긴 물은 어느 정도 차오르면 반드시 엎어져 바닥으로 쏟아졌다. 대다수 사람들은 가득 차 넘치기 직전인데도 욕심 사납게 그릇에 퍼 담기를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가 한 순간에 뒤집어져 몰락의 길을 걷는다.
호남 출신의 이름 난 트로트 가수, 그는 갖은 고생 끝에 성공을 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가사의, 그가 부르는 신나는 노래도 좋았지만 연로한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남도의 토종 음식을 직접 빚어 내놓는, 화면 속에 흐르는 모자(母子)의 효심 넘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보기 좋았다. 며칠 전의 가요무대를 보면서 나는 가슴이 아팠다. 그가 출연해 신나게 노래를 불러도 예전처럼 흥이 나지 않았다. 제 가슴은 타들어가는 지경에 이르러서도 남에게 경쾌한 가사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그것도 자못 경쾌한 표정으로 불러 재껴야 하는 그런 비참함, 누구나 선망해 마지않는 가수라는 직업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얼마 전 뉴스를 장식한 그의 부도 소식이다. 늙은 어머니가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던 집은 물론이요, 몇 십억 호가하는 빌딩을 처분해도 역부족이라는 부채, 이 모두가 그의 아내가 벌인 투기성 짙은 건설사업 때문이란다.
惜福修行(석복수행)이라는 말이 스친다. 자신의 복을 좀 덜어내어 마음 수행을 하는, 자신에게 복이 넘치게 다가온대도 제 분복량(分福量)에 만족하고 덜어 내칠 줄 아는 자세를 이른다. 제 분에 넘치는 과도한 복은 과감히 버리라는 말이다. 자신의 복을 덜어내는 것을 넘어 현재 누리고 있는 작은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자세 낮추어 매사 겸손하고 검소하게 겸양하는 태도를 말함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큰 포기가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건 애시 당초 내 몫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마음먹기가 결코 쉽지 않다.
높아지면 내려오고 가득 차면 비우고
부유하면 검약하고 귀해지면 낮추라
지혜로워도 어리석은 듯이 굴고
용감하나 겁먹은 듯이 하라
말을 잘해도 어눌한 듯 하고
많이 알더라도 조금 밖에 모르는 듯
무릇 이를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지덕(至德)을 갖춘 사람이다.
명부(冥府)를 오독(誤讀)한 저승사자의 실수다. 잘못 호명(呼名)되어 아직 남은 이승의 삶에도 불구하고 저승에 붙잡혀 왔다. 뒤늦게 제 잘못을 깨달은 저승사자가 사과의 뜻으로 지상으로 되돌아가 누릴 그 사람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남에게 꾸러 가지 않을 정도의 재력과 벗이 오면 술과 안주를 마련해 조촐하나마 대접하고 누군가 내게 돈을 빌리러 왔을 때 훗날 되받을 것을 염두에 두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가 서운치 않을 정도의 돈을 쥐어 보내는 정도....”
여기까지 듣던 저승사자가 버럭 소리를 지르더란다.
“야, 이놈아! 그런 청복(淸福)이 지상에 있다면 내가 이 골치 아픈 짓거리 그만 두고 당장 내려가겠다.”
귀를 기울이는 자는 세상을 얻는다. 은밀하게 들려오는 저 소리. 네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다. 그것이 네 소유가 되어야 한다. 네 속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는 마침내 풍요를 이룬다. 밝은 이치에 귀를 기울여라. 사람의 이치를 알고 더 나아가 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마침내 또한 신의 이치를 알게 된다. 인생의 성공자는 이렇듯 자신과 신의 목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자다. 청빈(淸貧)과 안분지족(安分知足)이 그래서 어렵다.
욕심으로 간밤을 지새운 입에서는 비린내가 진동한다. 입 안의 비린내야 양치질로 헹구면 말끔해진다. 하지만 저 속 깊은 마음에 절여진 비린내는 무엇으로 지우랴. 지금 닥친 시련은 대개 욕심의 산물이다. 지금 욕심이라는 밥그릇 앞에서 수저를 들고 그대는 여전히 망설이는가. 인생에 더 가치가 있는 더 큰 무엇을 알려주는 귀한 시간이다.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곱게 나려
두북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이중섭 시 ‘소의 말’ 전문
이미 우리의 복록을 계량(計量)하고 계신 어떤 손길이 욕심이라는 되를 들고 우리를 시험하고 계신 건 아닐까. 빈 곳 없이 꽉 찬 저 대보름달! 그 누가 저 휘영청 밝은 달을 향해 넘치는 복록의 발원(發願)을 하는가. 달도 틈나는 대로 차고 비우기를 반복한다.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그동안 열심히 거머쥐려 했던 제 것 아닌 것들을 훌훌 털어내 버리자. 그것이 생의 더 큰 재물인 ‘편안한 마음’이라는 재기(再起)의 쌈지, 그 귀한 보화를 얻는 비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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